기업이 일하는 방식은 특별하다
기업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창의력과 아이디어보다, 그 창의력과 아이디어를 조직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세상을 바꿔내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기 때문이다. 혼자서 해낼 수는 없다. 누구나 조직의 힘을 빌리는 수준이 아니라, 조직에 속해 역할을 맡아서 일을 한다. 그런데 조직에서는 [개인의 창의성과 아이디어]는 본질적으로 무시된다. 기업의 존재이유가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기업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는 백종원의 더본코리아다. 더본코리아는 어떻게 조직이 작동하는지 너무 명백히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백종원은 요리사가 아니라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가이며, 그가 하는 사업은 어떤 의미에서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다.
'백주부’ 백종원은 현재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인물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TV프로그램을 통해 친숙하게 다가온 그는 수많은 레시피를 대중들에게 소개하며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레시피를 만들고 배포하며 그에 걸맞는 요리 실력도 갖추고 있지만, 요리사는 아니다. 백종원은 기업을 경영하는 사업가다.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조직의 장이다.
백종원의 사업가적 본질은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정확히 드러난다. ‘골목식당’은 침체된 상권의 요식업자들을 백종원이 직접 만나 솔루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백종원은 여타 예능 프로에서 음식의 맛과 가정에서 조리 시의 편의성에 대해서만 말했다. 그런데 '골목식당’의 백종원은 다르다. 물론 재료의 신선함과 맛을 증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하지만, 일관되게 주장하는 그의 의견은 ‘메뉴의 간소화와 싼 가격’이다. 중심이 요리에 있지 않다. 메뉴가 단순하면 재고 관리가 용이하고 전문화되어 회전율이 올라가며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즉, 백종원은 요리 자체보다는 요리의 생산 효율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언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골목식당 주인의 [창의성과 개성]은 반만 존중된다.
기업의 본질은 백종원이 요리사가 아니라 사업가인 이유와 같다고 생각한다. “메뉴를 단순화해 신선한 재료를 유지하고 숙련되어서 회전율을 높이고 가격을 낮춰라”라는 당연한 말에 식당이 기업인 이유가 들어있다.
서울대학교 배종훈 교수는 내가 들었던 수업 “조직구조론”에서 기업을 비슷하게 정의했다. 교수님은 수업에서 효율적인 직무규정, 즉 [일하는 방식]이 기업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프레드릭 테일러의 경영학, 베버의 관료제는 일관적으로 업무의 사전적 설계와 그 효율성이 기업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즉, 전문화와 분업으로 인한 이익의 구현을 위해 기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법인은 우리 사회의 한 축이다. 역사는 회사에 인격을 부여했으며, 그 인격에 호응해 기업은 수많은 일을 했다. 하지만, 법인은 말그대로 법적인 인간이며, 실질적으로 근로자의 연합체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법인, 기업은 [근로자를 통제]하기 때문에 동작한다. 즉, 기업의 태생은 근로자의 통제다.
다시 말하자면, 여러 사람이 모여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려면, 일관된 규칙과 그 규칙에 효율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서울대입구역 골목에서 운영하는 작은 식당의 경영자를 상상해 보면 더 명확하다. 식당주인은 서울대입구역 소비자를 분석하고 메뉴를 개발하고, 효과적인 원자재를 찾아내는 것에 시장의 기능을 이용해 최적의 생산물을 제공할 만한 능력이 없다. 시장은 완벽하지만, 시장을 이용하는 것에는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소비자 분석에도, 효과적인 원자재를 찾고 시장에 방문하는 것도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거래비용]이라고 한다. 즉, 작은 식당의 경영자는 높은 거래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따라서 많은 지역에서 성공했던 백종원이 제공하는 원자재, 레시피, 식당 구조, 동선, 메뉴판,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온다. 백종원이 경영하는 더본코리아의 명령에 그대로 따르는 일을 선택한다. 이게 기업의 본질이고, 백종원의 기업이 근본적으로 하는 일이다. 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는 국정감사에서 “자칫하면 갑질로 비칠 만큼 간섭한다”고 말했다. 더본코리아는 가맹점들이 타 음식점에 비해 효율적인 아웃풋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기업이다. 생산과정에서 수많은 항목에 간섭하고 명령하는 자칫하면 권위적으로 보이는 방법을 통해 그 목적을 이룬다. 모든 기업의 본질도 시장이 작동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조직화를 통한 생산 효율성에 있다.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기업과 시장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 가격에 의해 [보이지 않는 손]이 조절한다. 하지만 기업은 표준과 규칙으로 작동한다. 또한 사람들에게 이 규칙을 강요하기도 한다. 시장은 가격만 정해지면 알아서 물건을 만들어오지만, 기업은 노동계약이 시장적이었을 때 발생하는 수많은 비용, 즉 거래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물론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 완벽한 인센티브를 누군가 발명해 기업에 적용한다면, 결국엔 기업도 시장처럼 기능할 것이라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선 조직 전체의 성과를 각 구성원들에게 기여도를 정확히 측정해 배분함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수많은 구성원들이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비효율이 발생하기 때문에, R&R이 사전적으로 정의된 관료제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시장경제 속에서, 기업이라는 비시장적 요소가 존재하는 이유다. 배종훈 교수님의 [기업과 시장의 구별짓기], [경영과 불평등]이라는 논문을 보면, 단순 생산이 아닌 창의적인 기업에서조차 결국 사전적 규칙이 기업의 본질임을 논증한다. 물론 복잡한 이론적 배경이 있지만, 결국 기업이 세상을 바꾸는 힘은 규율과 규칙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 그 이상을 원한다면, 조직을 만들거나 조직에 속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조직에서는 불합리하게 보이는 지시를 따라야 하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감정적인 쏟아부음임에도 상사라는 이유만으로 들어야 하기도 하고, 지나친 규율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이유 없는 지시와 요구되는 복종을 나는 제일 싫어한다. 하지만 [조직구조론]이라는 수업을 통해 느낀 것은, 이런 불합리함은 개인의 단순 합 이상의 결과물을 내는 그 원천이라는 깨달음이다. 사전적 설계와 규율이, 기업의 본질인 것처럼 말이다.
즉, 지나쳐 보이는 규율과 불합리해 보이는 지시를 일단 따르는 일은 내가 보는 환경과 시야에서는 화가 날 수 있지만, 조직 전체의 관점에서는 비효율을 절감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일단 하라는 일은 해야 한다. 보통 나보다 많은 책임을 질 수 있고,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보통 지시하는 자리에 있다. 기업 전체의 관점에서, 내게 옳게 판단할 모든 정보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모든 정보가 주어진다고 해서 옳은 판단을 내릴 능력이 내게 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명령을 들어야 한다. 지시의 불합리함과 개선할 아이디어를 개진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행동을 함에 있어 그 행동과 지시의 맥락까지 공유해야 한다. 소통은 당연히 수평적이어야 발전적인 움직임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의사결정은 일단 수직적이어야 하고, 일단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고분고분한 인간이 대세인 시절은 지났다. 우리는 명령만 잘 듣는 인간을 수동적이라고 한다. 말 잘 듣는 인간은 도구라고, 반항하고 따지는 인간을 창의성의 원천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해적다움은 단순히 반항하는 꼴통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조직 전체의 효율을 유지하는 선에서 발전적인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더 큰 아웃풋을 내기 위한 당연한 일이다. 큰 일은 혼자 할 수 없다. 따라서 큰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우선 조직적이어야 한다. 그 다음이 창의성이다. 단순한 우열이지만, 때로는 핵심이다.
창의적인 인간이라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이란, 대개 조직에서 발생한다. 그런 뜻에서, [창의적이다]와 [조직적이다]는 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건설적인 창의성은 조직을 이해하는 창의성이다. 나는 [조직적인 인간]과 [창의적인 인간]을 동시에 해내고 싶다. 조직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내 역할을 극대화하고 싶다. [창의적인 조직]을 만들어 변화를 만들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