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리 Oct 31. 2023

10월의 마지막 날

나의 사주 이야기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매 달 마지막 날이 있지만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 때문인지 10월의 마지막날은 다른 달 보다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문득 매달 마지막 날마다 나만의 의식을, 루틴을 정해서 실천하면 어떨까. 그래서 매년 내가 사유하고 성찰한 것들을 기록하는 날로 정했다. 10월의 마지막 날. 


작년은 물리적으로 몰아친 바쁜 한 해였다면, 올해는 마음만 분주하여 끊임없이 이너피스를 갈구한 해였다.

올 초 퇴사를 하고 한국으로 귀국해 다시 서울에 자리 잡기까지 마음이 끝없이 요동쳤다. 실업과 실연, 정착할 주거가 없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밀려오는 참으로 오랜만에 겪는 방황기였다. 아주 다행히 천천히 마음의 중심을 되찾아갔다. 서울에 다시 주거지를 구하고 단기성 업무를 시작해 참으로 오랜만에 출퇴근 서울 지옥철을 경험하고 있다. 주거와 업무가 임시일지라도 당장 살 곳과 할 일이 생기니 사람 마음에 여유가 조금씩 생겨났다. 

그러면서 주변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많이 보냈다. 초중고, 대학, 학원, 대학원, 여행, 프리랜서, 전 직장 등등  인생에 단계마다 머물던 곳에서 스쳐간 값진 인연들이 내 곁에 있어주어 쉬는 시간 동안 그들을 만나며 풍요로운 인생 얘기를 나눴다. 2023년은 그리하여 소속은 없었으나 존재를 인식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2021~2022년이 워낙 바쁘고 이동이 많아서였는지 2023년 퇴사와 함께 나는 매우 불안하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한창 일할 나이인데 쉬어도 될까 하는 마음이 쉬어도 쉬는 게 아닌 상태로 나를 몰아갔다. 작년에는 바쁘면 올해도 바빠야 하는데 왜 올해는 안 바쁠까, 이대로 멈추면 어쩌지라는 마음에 흔들렸다. 허나 이 또한 시간이 흐르고 내가 쌓아온 경험치가 더 많아지면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 더 쉬었어야 하는데! 하며.

그저 달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 나를 힘들게 한다는 걸 깨닫고 나니 마음에 점차 평화를 찾아갔다. 


재밌는 얘긴데 나는 이렇게 마음이 붕 뜰 때? 아마도 5년에 한 번씩 이럴 때마다 주변 친구들에게 추천을 받아 사주를 보러 간다. 5년 전 대학원 휴학기에도 여러 군데에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올해가 다시 그런 주기가 왔다. 나는 사주를 잘 활용하면 매우 좋은 한국식 심리 상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는 미래를 맞추러 가는 게 아니라 상담을 하러 가는 날이다. 사실 목표가 분명하고 의지가 확고하면 점을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말 힘들거나 정말 좋을 땐 사주를 보러 가지 않고, 지금처럼 약간 애매한 상태에서는 더 사주를 찾게 된다. 여러 군데를 보면서 느낀 건, 사주라는 게 완전히 무시할 것도 아니지만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도출한다. 사실 주변에서 모두 할 수 있는 말인데 친한 사람들에게 하기엔 뼈아픈 조언이거나 그렇다고 너무 응원해 주면 오히려 날 응원하려고 하는가 보다 하고 잘 듣지 않는 말들을 내가 직접 돈까지 내밀며 '들으려고' 찾아가는 행위인지라 더 잘 듣게 되고 믿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지인이 "너무 조급해하지 마"하는 것과 역술가가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고 하는 게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게다가 결국 내가 만나서 조언과 대화를 하는 인간관계도 나와 같은 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니 객관성을 덜 부여하게 되고, 역술가들에게 찾아오는 사람은 모두 천차만별이라 내가 좀 더 객관성을 부여해서 믿게 되는 경향이 아닐까. 


하루에 10명 한 달 꼬박하면 300명, 1년이면 약 3500여 명. 가지각색 인간 군상을 만나 서로 다른 인생사를 듣는 직군이다 보니 역술가의 직업도 참 힘들겠지만 매력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돈을 받고 듣는 타인의 삶. 결국 잘 들어주고 잘 위로해 주는 일에 대한 값이다.


10월의 마지막 날 사주가 주제가 되었지만 결국 인생에 대한 나의 생각 정리가 마무리를 한다. 인생은 4계절 같다. 한 해 내에서도 꽃이 피고 녹음이 푸르르다 낙엽 떨어지고 눈이 내리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다. 다만 사람마다 이 주기가 10년이 될 수 있고 더 쪼개질 수도 있고 더 길어질 수도 있을 뿐 변함없는 것은 누구에게나 4계절의 주기가 온다는 것이다. 씨앗을 잘 뿌리면 언젠간 농번기가 온다. 그리고 모든 열매를 거두고 나면 반드시 휴식기가 온다. 땅도 쉬어야 다시 씨앗을 뿌리는 것처럼 자연의 이치가 결국 삶의 형태라는 것,, 쉼 덕분에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작가의 이전글 외국어와 사랑, 그 평행이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