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단계가 있나요 그렇다면 외국어도
중급.
초급이라고 하긴 아쉽고 고급이라고 말하기엔 민망한, 어려운 어찌 보면 애매한 단계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 학원을 등록하거나 교재를 사거나 하물며 이력서에 외국어 수준을 기재할 때에도 나의 언어 수준은 정확히 삼등분으로만 존재한다. 초급 중급 고급
외국어 시험에선 고득점인데 실제 생활에선 입도 뻥긋 못하는 상태를 고급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외국어 점수는 낮은데 어느 외국인을 만나도 쫄지 않고 유창한 회화 수준을 뽐내는 사람을 초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훌륭한 교육자들은 상대의 수준을 보고 상태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 테지만 세상사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눠지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점점 깨달아 가고 있다.
서두가 길었지만 오늘 글을 쓰는 이유는 중급이라는 단계에 대한 단상을 적고 싶어서다. 나는 제2외국어를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면 수강생들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한다. 이유인즉슨 제2외국어는 영어처럼 태어날 때부터 배우는, 세계 공용어가 아니다. 따라서 공급만큼 수요가 넘치는 영어가 아닌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가 발생하기 쉬운, 시기와 상황을 타는 영역이라 그 수요까지 공급해 주는 것이 제2외국어 강사의 숙명인 셈이다. 영어의 경우 수강생들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도처에 널린 수많은 능력자와 치열한 업계 속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제2외국어는 '그래서 이 언어를 더 끌고 갈 것인지 말 것인지' 수험생 의지, 자신과의 싸움인 것이다. 제2 외국어는 배워두면 좋은, 언젠가 쓸모 있는, 그야말로 플러스 알파인 선택 영역이라서.
따라서 초급은 아닌데 고급도 아닌, 적당히 알 것 만 같은데 완전히 알지 못하는 중급이라는 단계의 범위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정하고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파고드는 강의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설명을 해야 하나 고심하다가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중급은 외국어와 결별하는 단계다. 호기심과 흥미를 넘어 슬슬 고통이 수반되는 이 단계를 넘지 못하면 영영 이별하거나 혹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의지를 갖고 이 단계를 지나면 평생 나와 함께할 동반자가 된다.
고비를 지난 이 동반자는 나의 세계를 확장하고 내가 꿈꿔왔던 기회나 기쁨을 줄 것이나 관계가 깊어진 다는 것은 어찌 보면 평생 애증관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애증관계는 '애'와 '증'이 맞물려 결코 놓을 수도 놓지 못하는 아주 무서운 사이다. '애'가 다가와 붕붕 뜨기 시작하면 '증'이 슬슬 파고든다. 한번 욱하게 되어 이제야 놓아야겠다 결심하면 또다시 '애'가 다가와 나를 한번 더 살게 하고 구름 위로 날려버린다. 그래서 '고락'의 사이클을 몇 번 겪고 나면 결국 이제는 헤어질 수 없음을 인정하고, '증'이 지나가기를, '애'가 다시 오기를 하나의 흐름처럼 기다린다. 이치를 깨달은 것이다. 우리의 인연처럼, 자연의 사계절처럼. 그런데 만약 이 고비를 넘지 못하고 고통을 참을 수 없다면 그대로 쿨하게 떠나도 좋다. 또 다른 제2외국어에게로.
호기심이 생겨서, 이제 막 알아가는 단계로 슬슬 재미도 있고 점점 궁금해진다. 텍스트 속에서 '좋아한다'는단어를 찾을 수 있다.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좀 더 파고들자니 더 이상 나랑 맞지 않을 것 같고 뭔가 내키지 않는 부분이 생겼다. 어려워 보이는데 그 와중에 다른 흥밋거리에 눈이 돌아간다. 초급이다.
난항이 예상된다. 그런데 좀 더 알고 싶다. 고비만 지나면 내 것이 될 것만 같다. 그래도 나름 초급은 지났으니 여기서 놓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왜 좋아하고 왜 싫어하는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급한 건 아니다. 시간 여유가 되면 조금 쉬다가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 머리 아프니까 조금 쉬자. 그렇게 영영... 중급이다.
이제는 놓을 수 없다. 좋고 싫음에 이유가 있었나. 한편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는데 고작 며칠만 놓는다고 머릿속에서 증발되어 너무 분하다. 분하고 또 분하다. 그래도 여태까지 걸어온 여정에 생채기가 남아 나름 끄집어내면 기억이 살아난다. 덕분에 많은 기회를 얻었다. 나를 여러 존재로, 호칭으로 불리게 해주었다. 주변에서 멋지다는 얘기도 곧잘 들으며 산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시행착오를 알려주고 싶다. 흠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혹 사랑을 다르게 표현해볼까. 고급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외국어 등급 단계를, 점수나 평가가 아닌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