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의미
평화로운 주말 와이파이 연결이 끊겼다. 요즘 세상에 가장 빨리 정전을 확인하는 길이 아닐까.
오피스텔 복도로 나가보니 엘리베이터는 작동한다. 그렇다면 우리 집이 문젠데.. 방재실의 도움으로 곧 두꺼비집 차단기를 다시 올렸다. 평화롭고 태평하게 낮잠을 잤다.
토요일 저녁 7시 낮잠에서 깨 냉장고를 여니 여전히 꺼져있다. 필요와 생체리듬으로 확인하는 현대인의 정전.
방재실에서 다시 와주셨고 원인은 누전으로, 결국 차단기는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 당장 냉장고 안 음식물과 추위가 문제니 일요일 오전 급하게 전기업체를 불렀다. 이리저리 거실에 연결된 모든 콘센트를 뜯어서 전선을 연결했다 말다 하다 결국 에어컨 결로로 원인이 나왔다. 이 집에 이사 온 지 이제 4개월인데 집안 곳곳 다양한 곳에 콘센트가 있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두꺼비 집도 열어보고 와이파이가 끊겨 인터넷 단자함도 열어보았다. 이제야 나는 내가 매일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이 집에 대해서, 이 집의 속사정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된 것이다.
20살 대학으로 서울에 올라온 나는 그 이후 10년 간 환경과 선호에 따라 집을 골랐다. 20대 초반엔 친인척 근처에서 근근이 살다가 오롯이 혼자 살게 된 건 대학원준비를 하면서였다. 한참 공부해야 할 시기에 당시 살고 있던 집에 문제가 생겼고 다시 고향에 내려가면 수험생활에 지장을 줄 것 같아 당시 나는 친구의 소개로 고시원에 들어갔다. 시험에 떨어지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을 위해, 수험생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1~2평 남짓한 곳에서 반년을 보냈다. 다행히 통번역대학원 시험에 합격해 바로 학교 근처 빌라 원룸으로 이사를 했다. 그 집의 장점은 학교가 코앞이라는 것과 집주인부부가 건물에 상주하고 있어서 관리에 안심이 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2년을 보내다 좁은 원룸에 갑갑함을 느낄 찰나에 슬슬 집에 대한 욕망이 생긴 나는 즉 더 이상 '대학교 근처 자취생'이 아닌 '독립과 주거'라는 타이틀은 갖고 싶던 나는 졸업시험을 앞두고 이사를 했다. 공덕이었다.
공덕으로 가면서 대로변 오피스텔로 집이 나름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고 각종 관공서가 있어 치안은 물론 교통면에서는 100점짜리였다. 코로나 3년을 공덕에서 보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집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만약 대학원 근처 작은 원룸에서 그 시간을 견뎌야 했다면 나는 말라버렸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3년 내내 공덕이라는 동네를 참 좋아했다. 봄여름 대로변에 울창한 키 큰 나무속으로 걸어갈 때마다 참 행복했다. 거의 매일 경의선 숲길에서 산책을 했다. 집 근처 요가원에서 심신을 단련하고 주변에 단골 베이커리에서 파는 모든 빵을 먹는 것을 목표로 삼을 만큼 맛있는 동네였다. 좌우로 걸어가면 이태원 또는 홍대, 한강을 건너가면 여의도가 나오고 위쪽으로 걸어가면 광화문인 동네를 항상 예찬했다(그래서 공덕사는(살던) 이 모 씨 즉 '공리'가 된 것이다). 하나 모든 것엔 이별이 있는 법 게다가 신기하게도 모든 이동과 이별엔 이유가 생긴다. 이번엔 다행히 좋은 이유로 이동을 한다. 해외취업이었다. 물론 정말 신기한 건 집을 이동하게 될 때는 자의든 타의든 반드시 이동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의면 다행이지만 타의면 꼭 집에 문제가 생겼다. 공덕에서 해외로의 이동은 취업으로 인한 표면상 이유였지만 그 대로변 오피스텔은 하자공사로 유명했고 내가 살던 집도 배수 문제에 이어 결국 윗집, 우리 집 모두 누수가 발생했다. 그렇게 나는 물에 의해 집에 대한 고단함이 쌓일 무렵 물을 건너 남미로 갈 결심을 한 것이다.
남미에서의 집은 혼자 살기엔 과분한, 나무가 울창한 동네에 큰 아파트였다. 연식은 오래됐지만 평수가 넓고 무엇보다 경비아저씨께서는 정원을 정리하다 떨어진 장미꽃을 물에 담가 보관해 가끔 내가 퇴근한 후 전해주셨다. 낭만 있는 집이었다. 해외생활의 설움을 어쩌면 나는 그 장미로 달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국인이 급하게 구한 집이고 연식도 오래되니 집에 잔고장이 많았고 결국 그 집에서도 보일러 문제가 생겼다. 몇 개월이 지나서 결국 집주인은 보일러를 교체했고 그렇게 나는 해외에서도 집에 대한 고단함이 쌓여갈 때쯤 퇴사를 결정하게 되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게 올해였다. 그리고 지금 서울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았다.
중심부에서 벗어난 만큼 어딜 가도 한 시간의 이동시간은 기본이지만 그게 이 집을 고른 이유이기도 하다. 중심에서 멀어져 오롯이 쉴 수 있는 집이 필요했다. 소음과 빛으로부터 조금은 떨어져 안락한 나만의 공간을 추구하게 되었고 특히 창문을 열었을 때 확 트인 정경을 위해서라면 도심은 불가능한 것이였다(물론 예산대비).
이제야 그렇게 푹 쉬나, 모든 집 문제가 끝났을까 싶을 찰나에 누전이라니. 그것도 한겨울 에어컨으로 인한 누전이라니. 다시 피곤함이 밀려왔다. 아무 문제도 없는 집은 정녕 없는 것인가. 물론 이 문제의 원인에는 나의 의지와 내 의지 밖에 요소가 작용한다. 몇 년 살고 이동하는 월세를 구하다 보니 오랜 시간을 두고 꼼꼼하게 집을 고르지 않는다는 것과 결국 한 집에 여러 사람이 거쳐가는 시스템이다 보니 그만큼 집 관리 자체에 철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생각에 잠겼다. 모든 일은 동전의 양면이니까.
덕분에 나는 집에 대해 알게 되었다. 차단기는 어떻게 되어있어야 하고 전기배선은 어떻게 생겼으며 문제가 발생 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집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마주한 수많은 기술자들에게 나는 짤막한 정보와 상식을 얻게 된 것이다. 공덕에서 배수 문제로 오신 분은 요새 아파트 날림공사가 얼마나 심한지 알려주셨다. 칠레에서 만난 보일러 수리기사 또한 보일러가 어떻게 작동하고 또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걸 알려주었다. 최근 전기업체를 통해 나는 어떤 집이 배선 공사가 제대로 된 것인지 배우게 되었다. 고단함과 생활의 불편함을 조금 인내하면서 그렇게 집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 것이다.
사람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겉모습이 좋고 어느 정도 괜찮겠다 이 정도면 됐다 싶어서 누군가를 선택하고 관계에 들어가면 결국 시간이 지나 인생에서 반드시, 예외 없이 필연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비로소 서로의 속을 알게 되는 때가 된 것이다. 그저 좋고 좋고 한 게 과연 정말 좋은 건지 이젠 잘 모르겠다.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서 누군과와의 관계를 보다 견고하고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수많은 갈등이 발생하는 게 아닐까. 그걸 극복하고 합심해 같이 앞으로 더 나아갈지 혹 거기서 멈춰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갈지 선택의 상황이 발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갈등이 발생해야만 서로를 더 알게 되고, 비로소 알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인생의 모순을 한겨울 누전에서 나는 배웠다. 그나저나 다음 집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