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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리 Feb 15. 2024

Try again

always on you side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쓰고 다시 영어책을 펼쳤다.


어디 가서 통역사라고 하면 가끔 과찬을 듣곤 하는데 사실 외국어 학습은 미친듯한 반복과 절대적 시간투자가 뒷받침한다. 시간을 투자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에 널린 게 외국어콘텐츠니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한 번 잘해두면 생각지 못한 기회도 인생에 많이 온다.


제2외국어로 통번역하지만 종종 영어도 가능하냐는 의뢰도 들어온다. 한때는 영어로 거침없이 싸울 만큼 두려울 게 없었는데 영어 공부에 손을 놓은 지 10년이 지나가니 단어도 문법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올해는 다시 다시 영어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미 굳어가는 머리를 붙잡고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은 고역이다. 시간도 안 가고 그저 스마트폰만 들락 거리게 된다. 요즘 세상에 태어나는 아가들은 공부하기 참 쉬우면서도 어려울 것 같다. 정보가 너무 쉽게 넘쳐나니 스스로 찾아서 노력해서 공부하는 투지가 아무래도 부족하지 않을까.


내가 좀 더 어렸을 때는, 그러니까 20대까지는 세상만사 매일매일이 이벤트인 줄 알았다. 매일 특별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고 즐거워야 하고 다채롭고 그것만이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학원 졸업을 하고 프리랜서로 활동을 시작하며 강사에서 해외 주재 대사관 근무까지 지내오면서, 그리고  다시 면접을 보고 있는 요즘 나의 오랜 과거를 자주 반추하게 된다. 무탈하게 여기까지 온 게 너무나도 감사하며 이 지난한 과정을 지나온 나를 안아주고 싶고 오늘까지 나와 함께해 준, 나에게 마음 써준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느낀다.


살면서 굴곡이 없던 건 아니다. 그리고 모든 굴곡은 상실에서 왔다. 특히 인간관계 상실은 상상 이상의 고통을 수반했다. 내 의지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즉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더 애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실에서 깨달음은 시작된다. 모두가 내 맘 같지 않고, 그때는 나 또한 완벽하지 않았으며, 인간관계도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매일 하는 일들이 가끔은 지겹기도 하다. 출퇴근하고 밥 해 먹고 매일 청소하고 쓰레기를 버려야 하며, 특히 외국어를 업으로 살아가려면 매일매일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매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나태하고 다 놓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매일 일상을, 내가 해야 할 일이 쌓여 미래의 나를 만든다는 것 또한 이제는 안다. 생에 이벤트는 찰나이며 결국 일상을 묵묵하게 잘 보내야만이 함께 지치지 않고 멀리 갈 수 있다.


세상물정을 몰랐을 때는 '남들이 보기에' 좋은 직장을 갖고, 좋은 동네에 살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인생인 줄 알았는데, 좋은 직장과 좋은 동네 좋은 사람과 어울리는 사람들도 인생에 고통을 겪고 모두가 희로애락을 통감한다. 감정에는 빈부도 없다. 인생은 계절의 순환으로 흘러간다. 인생은 정말 한 치 앞을 모른다. 내일 누구를 만날지 어디에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9 to 6'가 아닌 일자리가, 영역이 더 많다는 걸 세상에 나와 깨쳤다. 그저 오늘 하루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이제는 존중한다.


22살에 스페인에 갔다. 연수 겸 여행이 목적이었는데 그곳 어학원에서 어느 부자 아저씨를 만났다. 미국에서 온 그는 개인 비행기도 있는, 미국에서 금융업에 종사하고 은퇴한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었다. 그날 tener(have) 동사 공부를 하는 날이었는데, 아직도 생생하다. 선생님은 그 학생이 가진 걸 부럽다고 말하니 아저씨는 그럼에도 "지금 내가 가진 것을 당신(선생님)의 나이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날 나는 수업 직후 그렇게 인생 첫 타투를 했다. 'to make each day count'


타투를 새긴 지는 10년이 지났지만 살다 보면 자꾸 메시지를 잊곤 한다. 그러다 며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어느 우아한 올드레이디께서 늙으면 버튼조차 잘 안 보인다며 내게 지금 하고 싶은걸 다 하고 살라고 하셨다. 다시 한번 울림이 왔다.


오늘 저녁을 먹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이 가수 소수빈이 부른 'try again'으로 데려다주었다. 밥을 먹다 목이 메었다. 무언가를 다시 계속 꾸준히 하는 힘은 그 어떠한 것보다도 강하다. 이제야 깨닫는다. 다시 하는 건 어리석은 게 아니다. 다시 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면서도 다시 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며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실패를 해본 자가 문제점을 가장 잘 알듯이 경력 단절자(보유자)가 더 능숙하듯이.


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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