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죽을 때까지 배우는 인생
금요일이 바빠졌다.
오직 배움으로 가득 찬 금요일. 나는 아침 일찍 신촌으로 간다. 새 학기 대학가 주변 학생들은 한창 싱그럽고 나 또한 무언가 배우러 가는 길에 설렘이 가득하다. 얼마 전 발급받은 '내일배움카드'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배우고 싶었던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통번역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들어와 기초부터 배우는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다. 특히 첫 수업을 마친 날 긴장을 한 나머지 집에 오는 길에 모든 진이 다 빠져 저녁 차릴 힘도 없어 고구마 하나를 먹고 내내 누워있었다. 오랜만에 하얀 책상에 앉아 새 책으로 배움을 접하는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얼마나 디지털에 중독되었는지 그 심각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눈앞에서 넘어가는 PPT를 10초 앞으로 넘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유튜브로 모든 걸 배울 수 있는 세상에서 오프라인 수업은 빨리 감기가 되지 않는다. 천천히 흘러가는 순간에 약간 답답한 느낌이 드는 내 모습이 낯설고 겁이 났다. 원래 내가 살던 세상은 이렇게 천천히 흘러가는 세상이었는데 이제는 너무나도 온라인화되어 흘러가는 순간순간을 놓치고 살고 있었다. 결국 빨리 감기나 쇼츠로 보는 세상은 단편적인 기억만 남는 버려지는 시간이 된 셈이었다. 그래서 배움 이상으로 그저 천천히 흘러가는 순간을 음미하고 선생님에 경청하고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며 원래 내가 살던 세상에 다시 적응하고 있는 내가 마치 대학생 시절로 돌아온 것 같았다.
언어를 가르치는 강사로서의 삶도 좋지만 때로는 나도 누군가에게 학생이 되어 배우는 행위 자체를 즐긴다. 나도 배움을 통해 만나는 선생님들로부터 '가르침'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한편으로 학생들의 입장을 더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0년 전 처음 배운 현대무용과 코로나 때 시작한 요가 수업에서 만난 선생님들에게는 근육의 쓰임을 넘어 삶에 대한 태도를 배웠다. 최근 다시 시작한 금요일 밤 수영강습에서는 선생님의 인내에 매시간 박수를 보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배움을 전달하고 습득하는 과정은 인간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거창한 수업이 아니라도 좋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무료 강좌든 값비싼 사교육이든 교육과 배움 속에서 인간은 성장할 수 있다. 따라서 가르치는 행위에는 기술을 전달하는 것 이상에 책임감이 부여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르치는 행위에 엄청난 압박과 부담감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며, 온전하게 준비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수업 자체를 맡지 않는 것은 내 최소한의 책임감이자 자부심이다.
배움은 주로 돈이 오고 가는 관계에서 이루어지지만, 때론 대가 없는 인간관계에서도 배울 수 있다. 그야말로 인생의 기술을 배우는 셈이다. 작년 퇴사 귀국 등 나의 환경에 많은 변화를 겪었다. 마음이 흔들리고 힘든 시기에 나와 주기적으로 만나 한잔씩 기울이며 인생얘기를 들어주고 들려준 나의 모든 지인들에게 감사하다. 삶 속에서 받은 상처나 불안감 또는 시련은 인간에서 대부분 비롯되나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치유받는 인생의 역설. 온라인 세상이 오프라인 일상을 잠식하지 않도록 밖으로 나와 대면으로 사람을 만나는 이 배움의 순간순간은 참으로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