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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리 Aug 18. 2024

2024년 8월 18일

마음에 걸리는 게 없는 상태

요즘 나의 생활은 단조롭다.


평일 오전에는 가급적 6시 15분에 일어나서 샤워할 겸 수영장에 간다.  20~30분 정도 가볍게 물속에서 몸을 풀고 정신을 깨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요새는 향이 좋은 바디제품이나 샴푸를 사용해 나의 기분을 좋게 한다.


집으로 돌아와 수영 용품을 정리하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다. 보통 시리얼, 그릭요거트, 포도 복숭아 블루베리 등 풍요로운 여름 과일. 가끔은 전날 먹은 남은 밥이나 빵을 먹고 그렇게 출근을 한다. 출근길에는 꼭 재활용쓰레기를 버리고 간다. 더 이상 쌓아두고 모아서 버리지 않는다. 그때그때 전날 생긴 쓰레기는 반드시 아침에 하나둘 버리고 간다. 후련하다.


도어 투 도어로 사무실까지는 50분쯤 소요된다. 이미 지하철에서 하루 에너지 반을 쓰는 기분이다. 사무실로 가기 전 기분에 따라 커피를 사 먹는다. 주로 아이스라떼 혹은 커피빈 아이스바닐라라떼를 먹으며 오늘 하루를 위해 심호흡 한번 하고 출근길에 빨린 기를 충전한다.


사무실 도착 후 먼저 손을 씻고 모니터를 켠다. 오전에 마실 물이나 요거트 등 간식을 고르고 책상에 앉는다. 동료들과 아침인사를 하고 지난밤 쌓인 메일을 확인한다. 보고할 내용을 정리하고 나면 10시. 그렇게 오전 근무가 휘리릭 지나간다.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왔다. 주로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거나 근처 백화점 푸트코트 음식점을 이용한다. 옆자리 동료와 같이 먹거나 혼자 먹거나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 같이 먹기도 한다. 가끔 점심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내며 오늘도 잘 먹고 잘 사는 딸의 안부를 전한다.


오후 근무에는 오전에 처리해야 할 남은 일을 모두 정리하고 동료들과 커피타임을 보낸다.

드디어 퇴근이다. 다시 사람 가득 찬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동네에 내리면 대형마트에서 간단하게 장을 본다. 혹은 퇴근 후 친구들을 만나 저녁을 먹고 하하 호호 웃으며 오늘도 우리 잘살았네~ 하고 기분 좋게 헤어진다.


집에 오면 먼저 아이패드로 아침에 듣다 출근한 노래를 빵빵하게 틀어놓고 곧장 샤워한다. 온몸이 개운하게 씻겨야 밖에서 쌓인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나만의 의식이다. 샤워하고 선풍기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며 폼롤러로 뭉친 종아리 근육을 풀고 무얼 먹나 잠시 생각한다. 곧 계시가 떨어지면 행동으로 옮긴다. 사 먹거나 해 먹거나 배달하거나.


퇴근하고 운동하거나 공부하거나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은 내 스스로가 기특하나,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아무 의미 없이 보내는 쓸모없는 시간이다. 즉 그냥 본능적으로 먹고 싶은 저녁을 먹고 불필요한 sns를 보며 히히덕거리는 시간은 보기엔 쓸데없지만 실은 너무너무 귀하다. 이렇게 시간을 막 써도 되다니. 나름의 잉여 시간이기도 한데 오늘의 안정을 위해 매일매일 고민하고 노력하며 살아온 내가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 시간이다.


퇴근 후 보내는 시간은 항상 난제인데 이번에 이직을 하면서 나름 루틴이 생겼다. 우선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의 날에는 혼자 영화를 본다. 주로 제 돈 주고 보기 아까운 상업영화를 본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무조건 퇴근 이후로 잡고 주말은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주 1회 정도는 공부를 하려고 노력해 카페에 가서 한두 시간 겨우 채우거나 근처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게 책을 대출한다.  주중 하루정도는 직접 저녁을 해 먹으려고 노력한다. 다른 하루는 마트에 들러 과일과 아침에 먹을 간식을 산다. 금요일 저녁은 무조건 수영 강습에 간다. 아, 요새 또 다른 하루는 코노에 간다. 연예인사주라고 하던데,, 근데 이제 관노비이다 보니 나만의 타협으로 끼는 노래방에서 풀기로 했다.  


주말 아침에는 항상 일찍 일어나 집 근처 스타벅스로 가서 모닝커피, 샌드위치를 먹고 아이패드로 놀거나 책을 보려고 한다. 요새 읽는 책은 ‘흐르는 강물처럼’. 흡입력이 좋아 긴 페이지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말 완독했다. 그리고 나서 보통 10~11시가 되면 오늘 주말 무얼 할지 생각한다. 지난주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주말 내내 ‘도시남녀의 사랑법‘을 넷플릭스에서 봤고, 이번 주는 스타필드에 가서 1년 내내 고민하던 사무실용 키보드와 폼롤러, 모닝빵을 사서 집으로 돌아와 낮잠을 잤다.


일어나 보니 5년 전 길상사 불교수업에서 처음 만난 보살님께서 카톡을 주셨다. “오늘 절에 왔나요 그리고 결혼은 했습니까 무척 보곺아요”… 아마도 나와 40살 정도 차이나는 어머님인데 절에 가시면 가끔 이렇게 안부연락을 주신다. 감사한 일이다.


끝내주는 낮잠을 자고 나면 주로 양념치킨반반으로 주말을 마무리하는데 오늘은 낮에 사 온 모닝빵을 먹고 동네산책을 나갔다. 천천히 빨리 걷다 보면 6000 보정도 소요된다. 시원하게 땀 흘리고 돌아오는 길에 음료수와 돌얼음을 사고 집으로 온다. 샤워하고 향 좋은 보습제를 바르고 아이패드로 음악을 다시 틀고 밤하늘에 보름달을 보며 멍 때린다. 그리고 12시가 되면 내일 별자리 운세를 보고 잠에 든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출퇴근 등 사회인으로 해야 할 의무를 다하고 퇴근 후 친구 또는 혼자 시간을 보내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요즘 나의 하루는 단조롭고 잔잔하게 흘러간다.  가끔 내가 두고 온 것들을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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