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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창숙 Nov 26. 2022

"다음 주에 엄마가..?"

살아온 날의 단상

오늘 아침 10시경 전화벨이 울렸다.

아들이었다.

이 시간이면 회사에 출근해서 한창 일할 시간인데..


내가 아들에게 전화할 때도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전화를 하지만, 간혹 시간 개념 없이 전화를 하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따 전화드릴게요." 아니면 전화를 얼른 끊고 문자가 온다. "회의 중이에요."


그런데 오늘 아침엔 아주 씩씩하고, 즐겁고, 크고, 낭랑하고, 부드럽지만  힘찬  목소리로 나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오잉?~무슨 일이지?


"아들~지금 어디야~회사 아니야?" 회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네. 회사 아니에요. 엄마! 오늘 연차를 냈어요."

"연차? 그랬구나~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니?"


평일에는 시계추처럼 회사와 집을 오가며 야근한다고 하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또 공부를 하느라 자신의 시간을 못 가진 아들의 목소리가 늘 피곤해 보이고 힘들어 보였는데, 오늘은 무슨 신나는 일이 있는 것 같은 목소리여서 조금은 의아했다.


"아니요.~ 병원에 왔어요. 수술하고  한 달 돼서 검진 왔는데 아주 괜찮데요. 그래서 오늘 하루 쉬면서 하고 싶은 것 하고, 친구도 만나 얘기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려고 하루 연차 냈어요." 

"아고~잘했다. 잘했어." 나는 아들의 수술이 잘 됐다는 이야기에 안도하였고 하루의 쉼에 정말 잘했다고 좋아했다. 


지금까지 평상시 연차는 본가나 처갓집에 행사 있을 때 쓰기 위해 남겨 놓는 아주 귀한 날로 곶감 빼먹는 것처럼 손으로 날짜를 세면서 사용했는데, 결혼 10년 만에 처음으로 자기 자신만을 위해 연차를 쓴 다는 사실에 나는 무척이나 놀랐으면서도 아들의 용기에 고마웠고 좋았다. 그리고 내 숨구멍이 트인 것처럼  신이 났고 즐거웠다. 


"그려~잘했다. 고맙구나! 오늘 하루 잘 보내거라. 엄마도 신난다." 

아들이 즐겁고 신나 하는 목소리에  내가 연차를 쓴 것 같은 착각에 내 목소리는 한 옥타브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아들~

다음 주말에 엄마 결혼하는 거 알고 있지?" 

"엄마 결혼해?ㅋㅋㅋㅋ  정말?~ㅋㅋㅋㅋ~~~ㅋㅋ~~~~

엄마 결혼하면 내게는 또 아부지가 생기는 거니까 그분의 신상을 좀 알려주세요.ㅋㅋ" 


아니, '결혼'이란 말이 왜? 뜬금없이 나왔지? 도대체 어디서 '결혼'이란 생각지도 못한 말이 후다닥 튀어나왔는지 나도 놀라며

"그게~그게~" 하며 아니라는 말을 하려는데 아들은 키득키득 웃으며 

"엄마~괜찮아~괜찮아~결혼해도 . 이왕이면 후보를 한 명에서 서너 명으로 넓혀서 자식들이 후보자를 투표하는 건 또 어때?ㅋㅋㅋㅋ"

"아고~그게 아니라~ㅋㅋㅋ" 나는 아들이 보고 있는 것처럼 손사래를 쳤지만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아들의 웃음소리는 키득키득 배꼽 빠지게 웃는 소리만 들렸고, 나도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웃음보가 터진 것이다.


 "엄마~ㅋㅋㅋ~결혼하셔~ㅋㅋㅋ"  아들의 웃음소리와  말도 안 나오며 버벅거리는 나의 웃음소리만 전화에서 들렸다.

"낄낄낄낄~~"

"ㅋㅋㅋㅋ~~"


"아고!ㅋㅋㅋ 그게 아녀~ㅋㅋㅋ

결혼이 아니고ㅋㅋㅋ~~ 김장을 한다고~~ㅋㅋㅋ"

"엄마~결혼도 괜찮고~ㅋㅋㅋ" 아들은 뒤로 넘어갈 듯 웃으며 "김장도 괜찮고~ㅋㅋㅋ"

배꼽이 빠지고 눈물이 날 정도의 웃음으로 둘은 웃고 있었다.


김장이 결혼으로???

ㅋㅋ~마음속으로 바라던 얘기가 튀어나온 건~~

아고~결단코 아녀~

46년 동안 결혼 생활해봤으니 결코..,!


"아들~ 아부지에겐  비밀이여~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아들은 웃음을 참지 못해 나는 아들의  비밀유지 약속의 대답을 지 못했다.


아~

다음 주엔 '결혼'보다 백만 배 쉬운 '김장'이나 해야겠다.


   2022년 11월 25일 금요일에 있었던 황당한 말실수


                오늘의 내 웃는 모습이 이랬을 것이다.

                    2021년의 김장하던 날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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