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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창숙 Mar 01. 2024

게 새엑끼가.....

황당함의 극치


큰딸이 태국으로 발령을 받게 되어

근무한 지가 7개월이 넘었다.


겨울에 놀러 오라고 하였지만

계절을 맞출 수가 없어 기회만 엿보고 있던 참이었다.


그렇게 기회만 엿보고 있던 어느 날

큰딸이 4박 5일의 비행기표와 숙소를 제공한

통 큰 여행초대장이 

우리 집의 여자들 한테만 제공되어

작은딸과 며느리와 함께 태국여행을 하게 되었다.


초대장을 받고 모두 "랄라룰루~" 어찌나 좋던지

여행을 가기 한 달 전부터 들떠있었다.

........

각자의 아이들은 각자의 배우자들에게 맡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수속을 마치고

기다리던 면세점 안으로 들어가니,

세상에서 살다가

조금 하늘 위로 붕 뜬 세상 위의 나라로

올라간 기분이었다.


세상 살아감에는 모두 통 큰 여자들이지만

자기들의 물건을 살 때는 졸보들이라

눈으로만 사고 지갑은 열지 않았다.


며늘아기는 여동생이 면세점에 가서

사달라는 루즈를 골라놓고는,

판매원이 이것저것 다른 색깔의 루즈를

작은딸과 며늘아기의 손등에 칠하며

열심히 설명을 해도 귀로 듣고 눈으로만 볼 뿐

요지부동이었다.


얼굴이 하해서(아이들 육아로 햇빛 보는 시간이 없어서)

또 고아서(이제 40을 갓 넘겼으니  당연 곱지.)

세련되서(아고~12년 만의 여행을 하며 꾸미고 나왔으니까)

어느 색깔의 루즈든지 다 어울린다고 

2개 사면 20% 할인이 된다며 적극 권하고 있었다.


며늘아기와 작은딸은

집에  루즈가 서너 개씩 있다며

미니얼리즘을 강조하며 사기를 망설였다.


나 역시 루즈가 내가 산 것은 하나도 없는데

여기저기서 선물 받은 묵은 루즈가  7~8개 있어 (실은 다 사용하지도 않고 오래됐지만 아까워 버리지 못한 것까지 합치면...) 당연 안 사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판매원은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또 늙그수레 한 내게는 신제품을 권하지 않았다.


나는 며늘아기와 작은딸에게

손등 위에 발라놓은 루즈 색깔을 입술에 발라 보라고 하니, 두 아이들은 입술에 발라보았다.


이뻤다. 나는 아이 둘이 안 사겠다고 해도

사줄 생각으로 인자하고 가진 자의 여유스러운 미소와 함께 우아하게


나ㅡ"게 새엑끼(색깔) 곱네.. "

두아이ㅡ"엄마? 엄니?"

판매원ㅡ말은 안 하고 두 눈의 동공이 지진으로 흔들리고..


내 앞에 있는 세 사람은 놀라서 작은 눈이 커질 데로 커지고,

나의 우아함은 사라지고,

황당함에 어처구니가 없어진 모습으로,

루즈 하나에 욕하는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돼버렸다.


나ㅡ "아고!아녀~아녀~루즈 색깔이 이쁘다고!!!

           그래서 느그들 루즈 하나씩 다 사주겠다고!"


아이ㅡ"게 새엑끼알 곱네요. 엄마~고마워요.ㅎㅎ"

며늘아이ㅡ "엄니~엄니 마음으로 받을게요.~ㅎㅎㅎ"


루즈 3개를 포장하며 나는 나의 입술을 꽉 닫았다.

여행 첫날부터 "이러면 안 지!"를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일찍 도착한 첫날 오후에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다. 

잠시 쉬며 수영장 주변 건물 위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ㅡ"어머나~이럴 수가~~

          'C~~~~~8' 이라고라.

            이건 아니지~~~"

         

이들ㅡ큰딸 "엄마~CPall (씨 피 올)"

                작은딸 "엄마~CPall ( 피 올)"

                 며느리 "엄니~ ㅎㅎ~C ㅡ8이네요."


 모두 ㅡ "오마니 ~"

                 

차라리 영어를 못 읽었어야 했다.




                            2023년 4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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