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창숙 Sep 14. 2023

Well Dying이란

살아온 날의 단상

Well dying이란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단어였다.


한 마디로 잘 죽는다는 것인데,

어떻게 잘 죽을 수 있을까?


어떻게 죽는 시점을 알고 준비할 것인가!

이 죽음의 준비는 나이 많은 노인만의 문제인가!


죽음은

생의 끝인가?

새로운 시작인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죽음은,

둘이 아닌 하나로

삶과 죽음은 항상 같이 가는 것으로

생과 사는 갈림길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죽음에 대해 알고 있고

생각하며 살았는가!


죽음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 모두의 일이고,

바로 나의 일인 것인데...


그래서 죽음의 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젊었을 때 well Dying을 강의한 친구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마지막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친구는

"죽음에 대한 의식이 없는 삶이 문제야.

죽음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죽음이

맞이하는 죽음으로 축복이 될 수도 있고

당하는 죽음이 될 수도 있어.


우리는 알고 있잖아. 죽음에 대해

누구나 죽는다는 것,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는다는 것,

누구와 같이 죽을 수 없다는 거.


우리들이 모르는 것도 있어.

언제 죽을지 모르고,

어디서 죽을지 모르고,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거야.


내가 강의하며 어르신들에게 소원을 말씀하시라고 하면,

'이 나이에 무슨 소원이 있겠나!

그저 사는 동안 험한 꼴 안 보고,

고통 없이,

자는 듯 갔으면 하는 게 소원이지.'라고 대부분 말씀하셨어.


내가 well dying을 강의하며 보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다는 것도 축복인 거 같아.


어르신들은 모두

자식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을 원하고 있었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다가오면

가족이나 의미 있는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눈이라도 맞춰보고 다음 세상을 맞이하고 싶어 하셨어.

그래서 아름다운 죽음이란 이런 죽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어르신들의 또 한 가지 바래움은 본인이 죽은 후에 자녀들이 화목하게 지내기를 원하고 원하셨어.


그래서 존엄한 죽음이란

육체적 고통 없이

오해와 미움을 서로 풀고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의 순간을 맞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


친구와의 이야기는 내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평소에 나도 자녀들에게

연명치료 즉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곤 했었다. 내가 스스로 호흡할 수 있을 때까지만 살겠다고...


~어쩌면 산다는 것은 말이야

지금을 추억과 맞바꾸는 일


오늘이 멀어지는 소리

계절이 흐르는 소리~


노래의 가사처럼 오늘이 멀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잘 죽기 위해선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며

커피 한 잔에 삶과 죽음을 담아보았다.


Well Dying=Well Living

Well Living=Well Dying


                   2023년 9월13일 비오는 날에





매거진의 이전글 부여 박물관 연꽃무늬에 반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