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묶인듯한 몸, 한시도 쉴 수 없는 긴장된 몸, 수치심을 숨기려 과도하게 펴진 어깨와 억지로 치켜든 목, 만성적 편두통에 시달리는 몸, 어딘가에 갇힌 듯 답답한 가슴, 만성적 변비에 시달리는 몸, 발진과 가려움에 시달리는 몸, 여름에도 손발이 시린 몸, 정기적으로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는 몸...
그리고 이 모든 것들(신념, 감정, 몸)은 나의 자아정체성이 되고 운명이 되었다.
나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불행하게 살다 갈 것이다.
나는 엄마처럼 살다 갈 것이다.
나는 재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다.
나는 이해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나의 몸과 마음은 과거에 갇혀 있었다. 과거의 불행에 익숙해져서 행복이 낯설었고,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서 행복을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긴장과 혼란과 불행이 익숙해지면 이완과 평온과 행복은 낯설어진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어려운 이유는 낯선 것을 선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나의 불행한 운명은 절정을 치달았다. 착한 딸로 사느라 감추고 눌러두었던 온갖 부정적 신념과 감정과 감각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와 혼란, 견디기 힘든 삶의 막막함과 절망 때문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나 스스로 나를 죽이거나 삶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정신줄을 놓고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상할 것은 없었다. 나는 원래 그렇게 될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21년이 흘렀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과거는 바꿀 수 없으니 나에게 일어났던 사건들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과거에 묶여 있지 않다. 나는 과거로부터 걸어 나왔고 나의 신념과 감정과 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전에 몰랐던 것을 안다.
나는 누구보다 작지도 않고 누구보다 크지도 않다.
나는 사랑받아도 완전한 존재이고 사랑받지 못해도 완전한 존재이다.
나는 사랑받기에도 충분한 존재이고 사랑을 주기에도 충분한 존재이다.
나는 이제 감정을 부정하지도 회피하지도 않는다
초라함도 혼란스러움도 온 몸으로 뛰어들어 그것이 된다.
온 몸으로 웃고 온 몸으로 운다.
감정의 힘을 알고 감정의 풍요로움을 누린다.
나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몸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묶여있거나 갇혀있는 몸이 아니다.
나는 쉬고 싶을 때 온전히 쉴 수 있는 몸이다.
나는 만성적 변비와 편두통에서 해방된 몸이다.
나는 수축과 이완 사이를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오가는 열린 몸이다.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춤추는 몸이다.
나는 사랑을 여한 없이 표현할 수 있는 몸이다.
나는 내 운명을 한탄했고 신을 원망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간절하게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를 탐구하고 탐구하고 탐구했다.
왜 나는 이렇게 고통받는가. 왜 하필 이것이 내 운명인가. 왜 하필 이 여자가 내 엄마인가.
고통에 찌들어 네 발로 기다시피 상담실을 찾아갔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내 이야기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경험을 시작으로 나의 기나긴 여정은 시작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의 사건들로 인해 만들어진 나의 정체성들을 하나씩 파고들어 지나간 과거가 왜 나의 일상에 여전히 고통을 주는지를 탐구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을 하나씩 나로부터 분리해 나갔다.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신념들을 탐구하여 깨부수고, 부정하고 억압했던 감정들을 온 몸으로 느껴 해방시키고, 몸의 기억을 찾아 재경험하고 몸의 느낌을 재정렬하였다.
부정하고 지우고 싶었던 엄마를 되찾아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다. 바닥을 뒹굴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엄마가 겪었던 고통과 슬픔을 해방시키고, 엄마를 잃은 아이의 분노와 슬픔을 온몸으로 관통하고, 세상 끝까지 엄마를 찾아다니며 잃어버린 그녀의 서사를 찾아 나의 이야기와 이었다.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 감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끝나지 않는 욕구의 좌절을 견디기 힘들었던 나는 욕구를 차단했고 욕구에 뒤따르는 온갖 감정들도 포기했었다. 내 삶에는 즐거움도 분노도 슬픔도 없었다. 그야말로 무채색의 삶이었다. 의지와 노력과 인내로만 살아가는, 몸은 없고 머리만 있는 존재처럼 살았다.
나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감정과 욕구를 되찾아야만 했다. 죽어있던 몸을 깨우고, 나의 욕구와 감정을 집요하게 찾아내고, 그것들을 안전하게 표현하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내 감정과 욕구에 공감하고 스스로 채워주는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내 친구는 나의 작업들을 강박적이라고 표현했었다. 나의 치열한 '진정한 나 회복하기' 작업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나는 좋아한다. '강박적'이라는 말은 나에게 '간절한, 섬세한, 멈추지 않는, 용감한'이라는 뜻이다.
어린 시절 나에게 일어났던 운명 같은 사건들이 만든 '나'는 진짜 내가 아니었다.
'상처'라고 부르고 '운명'이라고 믿었던 그것들은 가짜였고 거짓이었다. 나는 완전히 속고 있었다.
나를 고통 속에 내몰았던 가짜와 거짓을 벗겨내자 한 번도 훼손되거나 오염된 적 없는 내가 있었다.
그것은 우연히 나에게 일어났던 사건이었을 뿐 내 본연의 존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사건들로 인해 형성된 신념도 내가 아니었고 감정도 내가 아니었고 몸의 느낌도 내가 아니었다.
나는 10여 년의 세월 동안 나의 잃어버린 서사를 찾고, 상처의 구조를 탐구하고, 상처가 된 경험을 온몸으로 재경 험해서 뇌에 새로운 회로를 만들고, 생각과 감정을 나로부터 분리해서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고통과 속박과 불행보다 평안과 자유와 행복이 익숙해지도록 새로운 선택과 경험을 매일매일 내 몸에 쌓아갔다.
어린 시절의 경험들로 인해 만들어진 나, 기억의 합으로 만들어진 나는 진짜 내가 아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어떤 사건과 경험으로도 오염되거나 훼손되지 않는 진짜 내가 있다.
이 근원적 존재는 나만의 별난 경험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인정받아왔던 우리 모두의 내면에 살아있는 진정한 자아이다.
우리는 모두 생생하고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내면의 부분을 갖고 태어났다. 칼 융은 이를 '신성한 아이'라고 불렀고 심리치료의 권위자인 앨리스 밀러와 정신분석가이자 소아과 의사인 도널드 위니코트는 '참 자아'라고 불렀다.
'경이로운 아이'나 '내재아(The Child Within)라고도 불리는 우리의 이 내면적 부분은 생생한 생명력과 자유와 창조성을 주는 우리의 '진정한 나'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경험한 사건들과 무의식적으로 받은 부모와 사회의 영향에 의해 이 근원적 자아를 부정하고 억압하며 가짜 나로 살게 된 것이다.
과거로 인해 형성된 나는 진짜가 아니다. 그것들은 과거의 껍질이고 억압된 에너지이며 거짓이고 착각일 뿐이다. 과거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발견하고 이전과는 다른 나로 살고 싶다면, 나라고 생각했던 가짜 나를 깊이 들여다보고, 그 구조를 탐구하고, 그 껍질들을 하나씩 벗기고 부수고 깨뜨리고 깨어나면 된다.
이 길은 착한 나가 되려고 애쓰는 길이 아니다. 훌륭한 나가 되려고 노력하는 여정도 아니다.
우리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며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나'로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이 길은 여태 해왔던 애씀과 노력을 멈추고 이 전에 없던 시선으로 나 자신을 깊이 천천히 바라보는 길이다.익숙한 것들 속에 감춰져 있던 낯설지만 진짜인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길이다.
나의 지금 여기를 뒤흔드는 과거의 찌꺼기들을 하나씩 태워버리고 나면 진짜는 저절로 드러난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고유한 껍질이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고유한 서사와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치열하게 나만의 껍질들을 내 손으로 벗기고 태우며, 내가 부정하고 억압했던 진짜 나를 찾아가고 있는 내면의 순례자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삼십 대 중반에 죽지 않고 미치지 않기 위해 내 안에 깊이 숨겨 두었던 판도라의 상자를 처음 열었을 때 나는 상처 투성이의 서사와 감정과 감각에 압도되었었다. 압력솥의 김이 빠지듯 억압했던 상처의 에너지들이 수 년동안 내 몸을 빠져나갔다. 뚜벅뚜벅 20년을 멈추지 않고 걸어와서 이제는 치열했던 그 시간들을 지긋이 바라보고 글로 쓸 수 있을 만큼의 거리가 생겼다.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행자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여행기가 있을 것이다.
온 몸으로 걸어온 나의 여정에서 발견한 구조와 방법들을 하나씩 정리해서 글로 기록해보려고 한다.
이것은 내가 탐구하고 발견한 나의 길이며 나의 가장 아프고 약한 부분이 나의 가장 큰 힘으로 만들 수 있었던 나의 방법과 경험이다.
나는 크고 위대한 양탄자의 한 매듭이다. 모든 매듭은 각자 고유하면서 서로 닮아 있다. 한 사람의 이야기는 모든 이의 이야기이도 하다.
지금 고통스럽고 초라하고 절망스럽다 해도 괜찮다.
나의 과거가 만든 고통스럽고 초라하고 죄 많은 '나'는 진짜가 아니다.
빛나고 완전한 진짜 나는 나의 내면에 언제나 살아있었고 여전히 살아 있다.
진정한 나는 내가 겪은 일과 나의 신념과 감정과 감각 때문에 오염되거나 훼손되지 않는다.
진짜 나는 나는 언제나 온전하고 완전하고 부족함 없는 존재이다.
진짜 나를 찾아 한번쯤은 자유롭게 살다 가고 싶다면, 나의 '경이로운 아이'를 덮고 있는 가짜와 거짓을 하나씩 벗기고 태우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