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 법대로 한다 Apr 03. 2020

4월 1일 거짓말이길 바랬다.

‘글 참 잘 써’     


작가가 된 지 7년 만이었다. 순도 100%의 인정을 받은 건.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는 녹록지 않다. 정말 실력적으로 월등해도 주로 위에서 아래에서 그걸 찍어 누르려 바쁘지. 방송계 유독 더 심한데 잘하는 작가가 들어오면 선배들은 견제하기 바쁘고 회사 대표는 깍아내리기 분주하다. 잘한다고 인정하는 순간 페이 더 줘야 하니깐.


이런 너덜 머리 나는 방송계에서 7년 만에 아무 의도 없이 순수한 칭찬을 받았다. 것도 회사 대표님한테. 회사에 수많은 작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쓰는 언어를 유독 사랑했다. 내 글을 타인이 그렇게 좋아한 건 처음이었다.


내 글을 유독 사랑했던 그는, 내게 날개를 달아주려 부단히 애썼다. 멀게만 느껴져 엄두도 내지 못한 드라마에 내가 도전하게 해 줬고, 내 작품이 빚을 볼 수 있게 참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런 대표님 밑에서 난 그저 글만 쓰면 되는 꽤나 호사스러운 작가였다.


대표님이 하도 잘한다 잘한다 하니 난 정말 좀 쓰는 작가가 됐다. 처음엔 정말 틀도 안 잡혀있던 신인 티 팍팍 나는 대본이 회의에 회의를 거쳐 꽤나 그럴싸한 형태를 갖췄고, 외부에서도 어느 정도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그 입질에 신이 나, 그와 난 카페에서 커피 한잔에 핑크빛 미래를 곧 잘 그리곤 했다. 주연은 누구로 하지? 김우빈 어때요? 여주는 김지원? 좋다. 보조작가는 몇 명 세팅하지? 해외 판권은? 아직 먼 미래인걸 알지만, 그와 함께하는 달콤한 상상은 고단한 레이스를 버티게 해 줬다.


드라마 한 편을 메이드 하기 위해 그와 난 삼 년 내내 커피 한 잔을 놓고 수만 개의 언어를 주고받았고, 우리의 길을 완성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3년 내내. 그렇게 힘들게 함께해오다 결국 우리는 작년에 서로의 길을 가기로 합의했다.


회사의 재정적인 문제로 월급이 밀리고 편성까지 지장을 받는 상황에 난 결국 포기를 선언하고 회사를 나왔다. 그렇게 회사를 나온 지 6개월 만에 오늘 당신의 부고 문자를 받았다. 빚에 몰려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셨다고.


나와 마지막 통화를 한 지 정확히 6개월 만에. 강한 분이라 버틸 줄 알았는데. 내가 드라마만 메이드 했어도 버티셨을 텐데. 당신께 전하지 못한 수많은 말들이 입속에 맴돌아 여기에 옮긴다. 내 글을 좋아했던 당신이라면 분명 이 글을 보고 갈 걸 알기에.


대표님, 우리 마지막 통화 기억하세요? 월급이 안 나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단 말에 작가가 글을 써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먹먹해하시던 목소리가 귀에 선해요. 그리고 결국 마지막까지 빚을 내서 제 월급은 챙겨 주셨죠,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대표님이 이토록 힘든 상황인 줄 몰랐던 게 참 죄송스러워요. 아니요 정확히 말하면 알고 있었죠 근데 항상 강한 분이시니깐 버티실 줄 알았어요. 회사를 나오고 나서야 깨달았어요.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구나. 나 정말 큰 사랑받았구나란걸


이상하게 회사를 나온 지 6개월이나 지났지만 작품을 하나밖에 못 썼어요. 원래 제 속도라면 두 편은 털었어야 하는데 이상하죠? 예전엔 참 미친 듯이 썼는데 요샌 그게 안돼요.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 하는 대표님이 옆에 없어서 대본이 재미가 없어요. 참 그때는 순수하게 드라마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때의 열정이 많이 없어졌어요. 근데도 써야겠지요. 아니요 더 열심히 써야 할 거 같아요. 대표님 꿈이셨잖아요. 제가 드라마 작가상 탈 때 대표님 이름 호명하는 거. 늦었지만 꼭 이룰게요.  제 글을 인정해주셔서,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함께 만든 두 작품 꼭 메이드 할게요. 내년 4월 1일엔 대본 책 가지고, 소주 한 병들고 갈게요. 기다려주세요. 그곳에선 가장 빛나는 별이 되시길. 부디 영면하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꽃길을 건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