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을 먹어야 오래 살아’
‘오래 살기 싫은데’
생일날 냉면을 주며 건네는 엄마의 말에 나의 뇌는 필터링 없이 생명의 끝을 생각했다. 그동안 너무 꽁꽁 누르고 산 탓일까. 요즘 내 감정이 많이 이상하다. 원래부터 우울감이 있었다만 왜 하필 이 시점에 이러냐 말이다.
그렇게 2년 내내 힘들게 했던 문제가 끝나고 난 참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감정이 진짜 주체 할 수 없이 이상해졌다. 단순히 연인과 헤어져서. 아니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냥 가족들이 같이 타고 가는 차에서 아무 일도, 아무 생각도 안 했는데 눈물이 펑펑 났다.
회사에서도 짜증 나고 초조해서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고 조퇴를 하고, 아 나 정말 왜 이러는 걸까. 결국에 참다못해 병원과 심리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한결 나아지는 거 같긴 하다.
하지만 단순히 한 사건으로 시작된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축척된 문제라서 평정심을 찾으려면 당분간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 그동안 난 내 감정을 왜 이렇게 외면했을까. 아마 나 말고도 많은 30대가 그럴 것이다. 정신없이 졸업하고 일을 하고 10년이 됐다. 누군가는 성공을 했고, 누군가는 허무함이 덮쳐오겠지. 난 사실 그 감정이 20대 후반부터 시작됐는데 외면했다. 왜냐 나는 강하니깐.
병원을 가는 건 심리적으로 많이 약한 사람들이나 가는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집안의 장녀인 난 내가 괜히 그런 곳에 가면 우울증 코스프레한다면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을 거란 불안감이 있었다.
그래서 난 강한 여자라고 계속 주입을 시키고, 주변에서도 날 보고 밝다고 인지를 시킨 탓일까. 내 우울증은 마치 독감처럼 확 몰려왔다.
도저히 내 감정이 주체가 안 돼 친한 지인들과 엄마한테 병원에 다닌다고 그간의 힘들었던 일들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그런데를 왜 가냐고 타박할 줄 알았던 엄마가 의외로 날 감싸줬다.
근데 감동은 딱 거기까지. 엄마는 내게 옳은 말만 하길 시작했다. 하다못해 친구하고 싸운 얘기를 해도, 엄마는 중립의 편에 섰다. 알아 나도 내 친구 마음은 조금은 알 거 같아. 엄마 근데 지금은 엄마 딸이 아파 죽겠다고 내 편을 들어달라고.
답정너 같은 거 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한 내 편이 필요했다. 누군가 옳고 그름을 판단해주기보다, 네가 괜찮아질 때까지 나는 내 편이야란 말을 엄마가 해주길 바랬다. 끝까지 편든 거 아니라고 말하는 엄마가 야속하고 미웠다. 그리고 상담센터 가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그동안 버티느라 고생했어요’란 말에 폭풍처럼 울었다, 그래 이 말을 듣고 싶었다. 그냥 따뜻한 위로. 내 편.
어리광인 거 안다. 근데 어쩌겠느냐. 내가 살고 싶은데. 내가 방법은 이것뿐인데. 하지만 정신 차리고 돌아보니 카페에서 이유 없이 펑펑 우는 딸을 보는 우리 엄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지금 난 나를 위해서 비싼 심리치료까지 받고 있지만.
엄마는 갱년기 우울증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그때 우리 집에 돈도 없었을 때인데. 여러 가지 생각이 복받쳐 올라 또 감정이 울컥 올라온다. 그래 이것도 불효다. 난 정말 왜 이 모양일까. 사실 이 글을 쓰기 가지도 망설여졌다. 독자들한테는 항상 밝고 좋은 얘기만 전하고 싶은 욕심에.
하지만 여기는 인스타가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지질하려고 시작한 브런치이기에 또 감정을 쏟아부었다. 브런치라는 글이라는 소통구가 없었으면 난 어땠을까 싶다. 오늘도 난 관종이기에, 독자들이 내 글을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글을 올린다. 아니, 살기 위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