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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법대로 한다 Apr 27. 2021

우울증 걸린 딸을 보는 엄마의 심정

‘면을 먹어야 오래 살아’

‘오래 살기 싫은데’


생일날 냉면을 주며 건네는 엄마의 말에 나의 뇌는 필터링 없이 생명의 끝을 생각했다. 그동안 너무 꽁꽁 누르고 산 탓일까. 요즘 내 감정이 많이 이상하다. 원래부터 우울감이 있었다만 왜 하필 이 시점에 이러냐 말이다.


그렇게 2년 내내 힘들게 했던 문제가 끝나고 난 참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감정이 진짜 주체 할 수 없이 이상해졌다. 단순히 연인과 헤어져서. 아니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냥 가족들이 같이 타고 가는 차에서 아무 일도, 아무 생각도 안 했는데 눈물이 펑펑 났다.


회사에서도 짜증 나고 초조해서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고 조퇴를 하고, 아 나 정말 왜 이러는 걸까. 결국에 참다못해 병원과 심리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한결 나아지는 거 같긴 하다.


하지만 단순히 한 사건으로 시작된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축척된 문제라서 평정심을 찾으려면 당분간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 그동안 난 내 감정을 왜 이렇게 외면했을까. 아마 나 말고도 많은 30대가 그럴 것이다. 정신없이 졸업하고 일을 하고 10년이 됐다. 누군가는 성공을 했고, 누군가는 허무함이 덮쳐오겠지. 난 사실 그 감정이 20대 후반부터 시작됐는데 외면했다. 왜냐 나는 강하니깐.


병원을 가는 건 심리적으로 많이 약한 사람들이나 가는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집안의 장녀인 난 내가 괜히 그런 곳에 가면 우울증 코스프레한다면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을 거란 불안감이 있었다.


그래서 난 강한 여자라고 계속 주입을 시키고, 주변에서도 날 보고 밝다고 인지를 시킨 탓일까. 내 우울증은 마치 독감처럼 확 몰려왔다.


도저히 내 감정이 주체가 안 돼 친한 지인들과 엄마한테 병원에 다닌다고 그간의 힘들었던 일들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그런데를 왜 가냐고 타박할 줄 알았던 엄마가 의외로 날 감싸줬다.


근데 감동은 딱 거기까지. 엄마는 내게 옳은 말만 하길 시작했다. 하다못해 친구하고 싸운 얘기를 해도, 엄마는 중립의 편에 섰다. 알아 나도 내 친구 마음은 조금은 알 거 같아. 엄마 근데 지금은 엄마 딸이 아파 죽겠다고 내 편을 들어달라고.


답정너 같은 거 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한 내 편이 필요했다. 누군가 옳고 그름을 판단해주기보다, 네가 괜찮아질 때까지 나는 내 편이야란 말을 엄마가 해주길 바랬다. 끝까지 편든 거 아니라고 말하는 엄마가 야속하고 미웠다. 그리고 상담센터 가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그동안 버티느라 고생했어요’란 말에 폭풍처럼 울었다, 그래 이 말을 듣고 싶었다. 그냥 따뜻한 위로. 내 편.


어리광인 거 안다. 근데 어쩌겠느냐. 내가 살고 싶은데. 내가 방법은 이것뿐인데. 하지만 정신 차리고 돌아보니 카페에서 이유 없이 펑펑 우는 딸을 보는 우리 엄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지금 난 나를 위해서 비싼 심리치료까지 받고 있지만.


엄마는 갱년기 우울증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그때 우리 집에 돈도 없었을 때인데. 여러 가지 생각이 복받쳐 올라 또 감정이 울컥 올라온다. 그래 이것도 불효다. 난 정말 왜 이 모양일까. 사실 이 글을 쓰기 가지도 망설여졌다. 독자들한테는 항상 밝고 좋은 얘기만 전하고 싶은 욕심에.


하지만 여기는 인스타가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지질하려고 시작한 브런치이기에 또 감정을 쏟아부었다. 브런치라는 글이라는 소통구가 없었으면 난 어땠을까 싶다. 오늘도 난 관종이기에, 독자들이 내 글을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글을 올린다. 아니, 살기 위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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