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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숲 Sep 29. 2021

원래 그런 사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함께 일했던 동갑내기 여자 PD가 있었다. 목소리가 굉장히 큰 사람으로 작은 일에도 손뼉을 치며 호들갑을 떠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쨍쨍거리는 하이톤의 목소리로 하루 종일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존재감 확실한 사람. 아무 때고 자기 할 말은 꼭 하고 마는 그런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스스로 뒤끝이 없고 매우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주로 전화로 섭외를 하고, 인터뷰를 하고, 구성안을 짜고, 원고를 써야 하는 작가 입장에선 매우 신경을 건드리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조용히 해줄 것을 부탁했다가 돌아온 답변에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있다.


“나 원래 목소리 큰 거 몰라? 우하하하!”


나 원래 그런 사람이야. 그러니까 니들이 알아서 맞춰, 뭐 이런 말쯤으로 들렸다. 타인에 대한 배려 1도 없는 그 말에 그나마 살짝 열어뒀던 마음의 문이 쾅! 닫혔더랬다. 덕분에 “나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폭력적인지 알게 됐다. 그날 이후 ‘원래 그런 사람‘이란 말을 썩 좋아하지 않게 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동안 우울감에 젖어 무기력하게 지낼 때 제일 많이 한 생각이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지?’였다. 특히 코로나19로 갑작스럽게 달라져버린 일상 속에서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자 안간힘을 썼거나, 쓰는 중이다.


“빨리 코로나 이전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잃어버린 나를 찾고 싶어. 원래의 나!”


나 역시 그랬던 시간이 있었다.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책을 읽고 좋다는 건 다 해봤다. 그러다 나만의 취향이 사라진 걸 알게 됐고 그 취향을 다시 찾으면 그곳에 내가 있겠거니 했다. 그래서 예전에 좋아했던 노래도 일부러 찾아 듣고, 좋아했던 장소도 찾아가 봤다. 그런데 감회만 새로울 뿐 예전처럼 심장이 뛰지 않았다. 그곳에 나는 없었다. 그리고 알았다.


취향이 사라진 게 아니라 내가 변한 거구나!



내가 달라져 있었다. 원래의 나는 과거일 뿐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 삶은 계속 ing 진행 중이니까, 원래의 나는 원래부터 없었던 건 아닐까?  어제의 강물이 오늘의 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마침 유튜브 채널에서 우연히 어느 사회학자의 말을 들었다.


코로나가 종식돼도 절대로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삶이 그런 거잖아요.
과거로 돌아갈 순 없죠.
달라진 일상에 적응해야 합니다.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철학자 보부아르도 그 비슷한 말을 했다.


더 이상 스스로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 말 것. 스스로를 그려나가기 시작할 것.


과거의 내 모습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의 내 모습에 집중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라는 그 말이 참 좋았다. 과거의 내 모습에 얽매이지 않고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적인 기운이랄까. 마음이 살짝 예열됐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그럼에도 계속하는 거라던 어느 스포츠 선수의 말처럼,  나는 오늘도 사부작사부작 움직인다. 지금 행동하는 내가 바로 나니까. 그렇게 오늘치의 나를 그려간다.  이적의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 를 자꾸 흥얼거리게 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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