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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나나 Sep 11. 2020

티비 소리가 없으면 책을 못 읽는다는 건 핑계가 아니다

우울함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 정적이란?

정적이 좋다. 그런데 정작 조용하게 앉아 있다 보면 적막 속에서 스멀스멀 불안이 생긴다. 집중해보려고 노력하다가 결국엔 티비와 아이패드까지 영상을 틀어놓고는 폰으로 게임을 켠다. 눈은 폰을 보면서 왁자지껄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영상들의 소리가 중첩되어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지만 시끄러움 속에서 마음이 안정이 된다. 마음속에 일말의 우울이 찾아 들어오지 못하도록 최대한 시끌벅적한 영상들로 골라 소리를 키워놓고는 현란한 게임 화면에 눈을 박고 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생각이 너무 많다. 그래서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정말로 내 심정은 그렇다. 종종 뇌가 이러다가 폭발하는 게 아닐까 싶다. 머릿속을 떠다니는 대부분의 말들이 다 부정적인 것들인 탓이다. 어릴 때부터 축적되어온 내 안의 마이너스 에너지가 몸집을 부풀리더니 기어코 터져버렸나 보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내적 데미지가 큽니다. 도움이 필요한 상태! 메이데이, 메이데이! 우울함과 함께 걸어온 나날은 길지만,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멀고 너무 힘들다고 느껴진다. 우울한 생각들은 너무 무겁다. 머리를 가눌 수가 없다.


그렇다. 머릿속의 부정적인 생각들은 대체로 우울함과 무기력함에서 나온다. 우울은 수용성이라 물로 씻어낼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인터넷에서 대충 본 말인데, 여기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확실히 샤워하면 좀 나아지는데 대체로 우울은 나에게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를 완전히 앗아갔다. 그러니까 머릿속에는 새로운 (대체로 부정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한데 손가락이 도무지 움직이지를 않는 것이다. 샤워하면 나아질 것이란 것도 알고 있지만 머리가 너무 무겁다. 이럴 때는 정말 미칠 노릇이다. 상념들을 떨쳐내기 위해서 설거지를 하고 방을 치우고 샤워를 하는 계획을 세워본다. 정확히 30분이 되면 하기로 결심한다.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고 늦은 점심쯤에 세워진 계획은 깜깜한 밤까지 리스트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그저 누워만 있는 몸뚱이가 야속하기만 하다. 눈은 유튜브에 박혀 있다. 정말 도저히 움직이질 않는다.


창문 밖이 어두컴컴해지고 하루가 낭비된 후에는 지독한 죄책감과 현타가 파도처럼 밀려들어온다. 새벽녘에 되면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킬 수가 있다. 곧장 샤워실로 들어간다.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는 내일 처리하기로 한다. 무색무취의 우울이 비누 거품과 함께 흘려내려간다. 하지만 내일 눈을 뜨면 다시 가슴속에 시커멓게 자리할 것을 알고 있다.


이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다고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했던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생각을 너무 길게 하지 말라고 조언했었다. 일어나서 무언가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그것 자체만으로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일어나야지라는 생각을 하기 전 몸을 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그때는 그게 잘되지 않는다고 버럭 화부터 냈었다. 근데 사실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사소한 움직임에도 계획을 잡자 그것을 행하려는 것에도 의지가 필요했다. 우울은 의지력을 앗아가는데, 행동에 이름을 붙이자 죄책감이 더해졌다.


우울함에서 나오는 방법에는 어느 정도 강제성이 필요하다.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물어본다면, 나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완전히 우울함을 없앴냐고 묻는 다면 절대 그럴 수는 없을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그저 정신없이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강제적으로 규칙적인 삶을 살기 시작하자 우울한 상념에 빠져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퇴근 후 무기력감에 빠져들기도 했지만, 너무 바쁘고 혹독한 사회생활에 집에 돌아오면 자기 바빠지는 날이 많아지자 점차 우울함이 걷혀갔다. 사라졌다기보단 마음속 한편에 작은 박스에 우울을 고이 접어 넣어둔 것 같다. 여러 서적들에서도 우울증 치료에는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처럼 회사 생활이 그렇게 스트레스를 주지만 않았어도 어느 정도는 우울함을 많이 완화시킬 수는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앞서 계획 세우는 것이 내 우울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했지만 규칙적인 생활은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에 웬 모순인가 싶을 수도 있다. 단순히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계획을 세우는 것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을 해서 업무를 쳐내야 하는 규칙적인 삶을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생각해보면 학생일 시절에는 이런 감정이 나를 크게 좌지우지하지 못했던 것이 매일매일 내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시간표가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도 지금과 크게 감정선이 다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울함과 무기력함에 엎어져 있지 않았던 것은 나를 강제로 교실 책상에 앉히게 하는 규칙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직장 생활을 얼마 전 그만두고 백수 생활을 시작했다. 내 우울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을 방지하려면 난 계획적이어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래간만에 고등학생 때처럼 시간대별로 스케줄을 적었다. 오전엔 포토샵 공부를, 오후엔 중국어와 번역 알바를, 저녁 후에는 웹코딩 공부를 하기로 했다. 50분 공부 후 10분 휴식. 아이패드로 알람을 꼼꼼히 맞췄다. 우울함을 담아놓은 상자는 다행히 아직 쏟아지지 않았다. 일단 그렇게 계속 유지할 예정이다. 상자를 저 멀리 떠나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쏟아지지 않게 넓고 평평한 곳에 놓아두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당신의 우울도 잘 밀봉하여 햇빛 아래에 말려 놓을 방법을 잘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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