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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나나 Sep 22. 2020

더는 더러워서 못해먹겠으니 퇴사하겠습니다.

소심한 직장인이 퇴사를 선택하게된 이유

그렇다. 현 직장에서 퇴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드디어 내렸다. 조금은 짧은 시간일 수 있지만 2년 넘게 몸을 담은 이 첫 정규직의 직장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세상에 역병이 돌아 직장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시절인데, 안정적인 내 밥벌이를 걷어차고 나온다는 것이 누가 봤을 때는 정신이 빙글 돌아버린 것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불현듯 떠날 때를 느꼈고, 그래서 퇴사하겠다! 선언을 던졌다. 끈질기게 붙잡아대는 팀장님과 사장님을 떼어내느라 고생은 했지만 어떻게 설득을 시켰다. 휴! 정말 만나서 더러웠고 다신 보지맙시다!


안정과 성장, 그 사이에서의 기로


사실 이 회사는 안정적이다. 코로나가 덥쳤을 때도 조금 삐걱 거리다가 금새 제자리로 돌아왔다. 물론 어느 정도의 매출 감소는 있었지만, 전체 매출의 90프로를 해외 수출에서 가져오는 회사 치고는 놀라운 일이다. 인터넷에서는 여기저기 권고사직을 당했다거나, 회사가 폐업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많은데 이 회사는 계속해서 사람을 구하고, 공장을 인수하고 새로운 사업을 늘리는 중이다. 이게 언제 어떻게 변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아무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내가 안정을 버리고 나왔다는 거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안함'을 싫어한다. 정신상담 선생님에게도 말했다. '불안한 기분이 드는 것이 너무 싫어요.'라고. 가만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마음을 놓고 지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나는 늘 불안했고 늘 무언가에 쫓겨 살았다.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불안, 친구들과 두루 사이 좋게 지내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함, 평생 패배자가 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함, 지금의 즐겁고 편안한 상태가 끝나버리면 어떡하지라는 불안함. 즐거운 상태든 슬픈 상태든 언제나 불안함을 안고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 나를 똑바른 길로 인도해 준 하나의 매개체로 이런 긴장이 작용을 한 것도 같지만, 또 나를 그 때 그 상태 그대로 잡아 당기고 있기도 한 듯하다. 이러한 문제들이 엉켜서 나는 '익숙해지는 것'을 갈망하고 '도전' 그리고 '첫 시작'에 대해 과도하게 불안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평온했으면 좋겠다고 늘 바랬다.


근데도 왜 안정을 버리고 나왔는 지 상담 선생님이 물었다. 공부해보고 싶은게 있어서, 라고 대답했지만 반 쯤은 맞고 반 쯤은 틀리다. 아직 무엇을 하고 싶은 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렇게 일을 해서는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지금 당장 나가더라도 내 후임이 충분히 할 수있는 업무를 계속 하고 있다. (슬프게도 지금 후임이 아주 고생 중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 할 수는 있는 업무라는 것이다.) 새로운 일은 윗 단계에서 다 쓸어가버리고 잡일만 시키니 성장할 구멍이 없었다. 똑같은 업무, 지루한 일, 쉬운 작업 하지만 잡일은 양이 많아서 야근은 밥먹듯이 했다. 길게도 아니고 2시간 정도의 야근. 어차피 야근 수당도 안주는 회사인데, 더 길게 했다간 홧병이 났을 거다.


이렇게 되자 내 첫 회사가 자꾸 생각이 났다. 나의 첫 회사는 온라인 마케팅 대행사였다. 패기롭게 입사했고, 3개월만에 울면서 퇴사했다. 3개월 동안 한 번도 편하게 잠이 든 적도 없었고, 사수에게 괴롭힘 당했으며 새벽까지 야근하고 새벽같이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3개월 동안 배웠던 능력을 회사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끔 친구들에게 지금이라면 그런 회사에 들어간대도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사실 진심은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사람에게 성장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퇴사 의사를 밝힐 때 나는 팀장님에게 정말 처음으로 마음 속 깊히 숨겨놓았던 말을 꺼냈다. '팀장님, 저 여기서 이룬 게 하나도 없어요.' 


언제나 사람. 사람이 이유다.


위에서 언급한 마케팅 대행사에서도 사람만 괜찮았으면 더 있었을 지도 모른다. 대행사에서 일을 빡세게 굴리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 몇 년 다니다 더 괜찮은 곳으로 이직하는 사람이 수두룩 하다. 이직을 위해 공고를 찾다보면, 대행사 출신을 선호한다고 적어놓은 곳들도 많다. 내가 꼴랑 3개월 동안 그 회사에서 배운 업무 능력을 가지고 지금까지 사용하는 것을 봐서는, 확실히 힘들게 배운 업무 능력이 오래가나보다라는 생각도 가끔 든다.


그런데도 퇴근하면서 매일 울었던 것은, 자꾸 업무를 가지고 트집을 잡고 사람 마음에 상처주는 말을 하던 사수 때문이었고 뒤에서 뭐만 하면 수근거리며 다들리게 신입들을 욕하던 동료 직원들 때문이었다. 매일마다 리포트를 전달하면 다시 해오라고 화를 내고, 뒤에서는 수근 거리고. 나는 내 멘탈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나름 혼자서 유학도 다녀오고, 배낭 여행도 다녀보고 이런 저런 활동들을 많이 해보면서 사람에 대한 면역력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부딪힌 사회 생활은 잽만 겨우 막아내던 나에게 훅 바디 로우킥 하이킥으로 연달아 공격해댔고 다음 날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훌쩍거리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여러 회사를 거쳤지만 다행스럽게도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에 위촉되는 사람들이 있는 경험을 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감사한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렇게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하다가 이 회사에 들어왔는데 나는 처음으로 사내 정치 싸움이 무엇인 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두 팀 사이에서 이리 저리 끌려다니다 강제로 부서 이동도 되었고 양 쪽 부서의 업무를 모두 맡아서 해야 했다. 점심은 부서 이동 전의 팀과 계속 함께 먹었다. 하지만 업무는 이동된 팀과 해야했다. 두 팀 사이에서 휩쓸리다 한 부서가 통째로 퇴사하며 이 피튀기는 싸움이 끝났다. 


업무가 과다한 것은 견딜만 했다. 내가 시간을 열심히 쪼개고 손 빠르게 일하면 해결되는 부분이니까, 정말 열심히 일했다. 다만 이제 사내 권력을 잡은 (혹은 계속해서 잡으려는) 팀장님 밑에서 잡다한 업무를 더욱 많이 하게 되었다. 중간에 들어온 경력직 대리가 말했다. "팀장님은 업무를 알려주지 않아요." 그 후로 여러 명이 퇴사하고 난 후에 내가 끌려들어갔다. 나는 이 것을 깨닫고 나갈 용기가 생기는게 그 경력직 대리보다 조금 늦었다.


Long story short, 우리의 팀장님은 나에게 커피를 정말 수도 없이 사줬지만, 중요한 업무는 주지 않았다. 걸핏하면 다른 팀과 분위기가 나빠지게 이끌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잡일만 끌어 앉고 있다가 드디어 손을 털고 나온 것이다. 더 있다가는 고인 물이 썩은 물되겠다고 절실하게 느꼈다. 할 줄 아는게 많은데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너무 고통이다.


'팀장님, 저 여기서 이룬 게 하나도 없어요.'라고 하자 팀장님은 내 눈을 보지 못했다.


뭐, 팀장님이 나빴다기보단 나에게 알려주려 하지 않았고 나도 밑에서 배운 것이 없었고 아마도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았다. 똑같은 바이어를 상대로 몇 년간 거의 동일한 업무를 하는데 여기서 매출이 얼만큼 성장을 하든 나에게 다른 업무가 주어질 것 같진 않았다. 뭐가 어찌되었든,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한치의 부끄럼없이 말할 수 있다. 정말 열심히 일했고 그래서 2년 넘는 시간동안 이룬 것이 없다는 것이 더 허무하다.


마지막 날에 몇몇 친한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며 수고했다는 소리를 듣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더 힘든 회사도 많을 것이고 회사 밖의 생활이 더욱 힘들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후련섭섭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다. 백수 생활 동안 여러 가지 공부를 해보려고 한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시간으로 만들 생각이다. 내가 나에 대해 잘 알았던가? 앞으로의 긴 삶을 위해 좀 더 나를 닦아봐야겠다. 그러니 됐다. 


이만 퇴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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