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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태윤 May 04. 2021

삶은 예고 없이 흘러간다.

예고 없이 일어나는 삶의 이벤트들과 사람

"엄마가 죽었어"


 결혼식 한 달 전, 어느 날의 새벽 5시, 예비 신랑의 전화가 시작이었다. 


 지난 주가 상견례였다. 당시 핫한 과일인 샤인 머스켓 두 박스를 사서 서울에서 세종시로 내려가 예비 시댁분들을 모시고 화기애애한 식사를 했다. 이미 결혼을 한 결혼 선배들의 조언과 경험담을 듣고 혹여나 상견례에서 얼굴 붉힐 일이 생길까 걱정한 게 무색할 만큼 매우 좋은 분위기로 즐거운 자리였다. 


 운 좋게 청약이 당첨되어 원래의 계획보다 결혼을 조금 앞 당겨서 서둘러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다행히 시부모님도 부모님도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렴'하며 전적으로 우리의 뜻을 따라주셔서 예단 예물도 생략하고 혼수도 간소히, 결혼식도 스몰웨딩으로 준비 중이었다. 단지 한 가지 걱정거리는 시외조부님이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신 거였다. 상견례에서 시어머님은 요양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고 시외조부님 언급을 하며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애들 결혼식은 예정대로 치르자는 얘기를 하셨다. 

 

 몇 번이나 읽었던 책의 가장 좋아하던 챕터를 다시 읽고 기분 좋게 잠이 들었는데 요란히 울리는 벨소리에 깨며 처음에는 알람이 울린 줄 알았다. 휴대폰에 뜨는 남편 이름에 '아 외조부님이 돌아가셨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눈을 비비며 전화를 받았다. 숨이 넘어갈 듯 꺽꺽대며 '죽었어' '죽었어... 어떻게 갑자기! 엄마가' 뜨문뜨문하는 말에 처음에는 내가 잘 못 들은 줄 알았지만 돌아가신 건 시외조부님이 아니라 시어머님이었다. 딱히 중병을 앓으시던 분도 아니고 지난주에 멀쩡히 웃고 함께 식사를 했던 건강했던 시어머님이. 


 주무시고 계신 부모님을 깨워서 세종시로 내려가면서 나도 부모님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계속 '이게 무슨 일이야', '이게 무슨 일이야' 그 말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나를 보자마자 울며 꽉 끌어안는 남편을 같이 안으며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전날 밤 시부모님은 지인을 만나 새우구이를 드시며 술을 마셨고 집으로 와서 주무시던 시어머님이 너무 아프다고 숨을 못 쉬겠다고 119를 불러 달라고 하시다가 의식을 잃으셨다고. 그리고 병원을 갔는 데 이미 늦었다고. 장출혈성 쇼크사라고 하는데 출혈 원인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그 날 남편의 세계도 나의 세계도 무너졌다. 


 그리고 얼마 뒤 시외조부님이 돌아가시고, 1년이 채 안돼서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또, 13년을 넘게 키웠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모두 평범한 하루에 일어난 일이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유리컵이 깨진다던지 날씨가 흐려지던지 불안한 예감이 든다던지 무언가 안 좋은 징조를 보이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 나도 그런 식으로 사고가 나는 거라 생각했다. 사고가 난 그날 밤, 그날 새벽 나는 아무런 징조도 예감도 없었고 평소와 같았다.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삶을 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기분 좋게 잠을 자고 있었다. 하지만 사건은 일어났다. 아무런 예고 없이.


 뉴스를 보면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이 나와는 먼 이야기 먼 세상 일이었는데 나의 세계에서 일어난 게 믿기지 않았고 모든 게 무서워졌다. 왜냐면 아무런 예고가 없었으니까. 이렇게 예고도 없이 일어나는 사고가 나쁜 일이 나에게 또 생길까 봐 모든 것이 무서워졌다. 밤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고 바깥을 나가는 게 무서워졌다. 삶을 사는 게 두려워졌다.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혹은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잘못될까 무서웠다.


 시간이 흘러 지금, 삶이란 원래 예고 없이 흘러간다는 걸 이해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예고 없이 일어난다. 나에게는 안 일어나는 일도 없고,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도 없다. 좋은 일이 일어나면 기쁘 듯, 슬픈 일이 일어나면 슬픈 것이고. 계획과 다르게 예측과 다르게 생각지도 못하게 흘러가는 게 삶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삶을 소중히 여기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이벤트가 발생하더라도 그 또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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