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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태윤 Jan 25. 2022

가능성 남기기

실패하는 용기 대신 가능성을 남기는 비겁함에 대해

 내가 고등학생 때 새로 온 미술 선생님은 좀 특이한 분이었다. 소위 예술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걸맞은 그런 분으로 예술가로 나름 이름이 알려진 분이었던 것 같다. 여하튼 그분은 이론 위주의 수업이 아닌 실기 위주의 수업을 하셨는데, 수업시간에 그린 내 그림을 보고 예술 감각이 있다며 엄청 칭찬을 하셨다. 미술을 배운 적 있는지, 배울 생각은 없는지, 색채의 표현이 어떻고 저떻고 예술가 선생님의 칭찬에 꽤 으쓱했던 기억이 있다. 이 선생님 이전에도 중학교 때도 미술 선생님이 나에게 미술을 배워보라고 추천하기도 했고 내가 생각해도 나는 다른 학생들보다는 확실히 그림을 좀 그리긴 했다. 


 나는 끄적끄적 글을 적는 것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중학교 때는 교내 사생대회에서 썼던 시가 입상을 몇 번했었고, 고등학교 때는 논술을 잘한다고 칭찬을 받고 1등으로 뽑힌 적도 있다. 그런 학창 시절을 지나서 대학생 때는 인터넷 플랫폼에 소설을 연재했고 소소한 반응을 얻기도 했으나 오래가지 못해 미완으로 연재를 종료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전문적으로 혹은 취미로도 그림을 그리지도 글을 쓰지도 않는 그러나 '그림 좀 잘 그리는', '글 좀 잘 쓰는' 사람이 되었다. 


 가끔 조카와 놀아주며 그림을 그릴 때가 있다. 그러면 엄마는 '이모가 그림을 잘 그려'라고 말하면서 슬쩍 내 눈치를 보신다. 어릴 때 가정 사정으로 그림에 재능 있다는 딸을 미술 학원에 못 보내준 엄마는 시간이 지나서 내가 대학생 때 '그림 지금이라도 배울래?'라고 권하셨지만 나는 관심 없다고 거절했다. 엄마는 은근히 속상하고 미안해하셨다. 엄마는 안쓰러워하셨지만 사실 나는 아마 학창 시절로 돌아가도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그냥 용기가 없는 것이다. 실패할 용기.


 주변에서 잘한다 잘한다 해주던 나의 그림 실력은 사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운 친구들, 그리고 정말 소질 있는 애들에 비하면 미천한 실력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소설 나름 인기 있었는데 왜 연중 했어? 내가 처음으로 연재했던 소설은 내 기대보다 조회수도 안 나오고 댓글도 적었다. 내 기대에 못 미치는 인기였고 이런 건 완결이 나도 출간을 하거나 그러진 못 할 거라고 스스로 판단했다. 


 내가 정말 그림을 배우고 그림 쪽으로 진로를 잡았는데 실패하면? 너의 재능은 그 정도이다! 사실 별거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는 게 무서웠다. 내가 글을 계속 썼는데 그냥 유야무야 흔한 글이 되면? 인기도 못 얻고 출간도 못한 그냥 그저 그런 글이 되면? 나는 그럼 더 이상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도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니게 되는 거라고.


 '각 잡고 하면 잘할 것 같은 나'로 있는 동안 나는 상처받을 거도 없고 당당할 수 있지만, '막상 해보니 사실 그저 그런 나'가 되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실패자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용기가 없어서 비겁하지만 '잘 될 가능성' 뒤에 숨고 싶었다.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 하나가 인터넷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둘 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나와 달리 친구는 딱히 상을 받거나 한 적은 없었다. 글을 연재하는 사이트를 알려주며 들어와서 댓글을 달아달라고 요청해서 들어가 보니 조회수도 높지 않고 댓글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친구는 꾸준히 연재를 하고 있었고 내가 전에 몇 번 봤던 어설픈 글이 아니라 다듬어지고 재미있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동안 배우고 싶었다며 취미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다른 친구 하나는 어느새 SNS에 자기가 그린 그림들을 꾸준히 올리고 있었다. 


 어이없게도 그 친구들이 딱히 글로 그림으로 '성공'한 것도 아니지만 부러워졌다. 나는 이런 걸 '실패'라고 규정짓고 시도조차 안 했는데 그런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졌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이고 재능도 써먹어야 재능이다. 그리고 그 재능이라는 것이 꼭 '성공'을 해야 재능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브런치는 그런 의미로 나에게 처음으로 내보는 용기이다. 내 브런치는 그동안 고이 간직만 해 온 나의 '가능성'을 깨부수는 공간이다. 나는 이제 '글을 잘 쓸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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