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10년 전의 나야.
나는 10년 후의 너야.
지금 너는 한창 두 연년생 아이를 옆에 끼고, 내려놓지도 그렇다고 번쩍 안아 들지도 못하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야. 지금 나에게 10년 전의 너로 돌아가라고 하면 눈앞이 다시 캄캄해질 정도야. 얼마나 네가 힘든지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때의 나는 매일매일이 원망스러웠던 것 같아. 누구에게 화가 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매일 화가 났었어. 왜 이렇게 아이는 자꾸만 우는 건지, 왜 아이들이 종일 나만 찾는 건지, 왜 이 무게를 나 혼자 다 지고 있는 건지, 나는 왜 덜컥 두 아이나 낳아버린 건지, 남편은 왜 이런 나를 두고 곁에 없는 건지. 하나하나 따져보면 아이는 우는 게 당연하고, 엄마를 찾는 게 당연하고, 남편은 일하러 가는 게 당연한 건데, 나는 그저 너무도 모든 상황이 원망스러웠어. 아마 가장 원망스럽고 미운건 나 자신이었던 것 같아. 나의 선택을 자책하고, 버거워하고 있는 나에게 자괴감이 들고, 예민해져서 짜증을 수시로 내고 있는 나에게 실망하곤 했지.
매일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삶이라니. 얼마나 구슬프고 애통하니.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는 네가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 지금의 내가 되었어. 나는 네가 너무 고마워. 짜증을 내었던 제대로 못해내었건 아이의 성장이 조금 느리건 집이 매일 어질러져있었건 간에, 그 모든 시간들을 견뎌준 너에게 고마워. 너의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어.
나는 말이지. 지금 되게 나은 사람이 되었어. 더 어른이 되었고, 더 넓은 세상을 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 그래서 나는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지금도 네가 울고 있다면, 10년 후의 내가, 20년 후의 내가, 그리고 더 먼 미래의 내가 너를 안아주고 있다는 걸 기억해 줘.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겠지만, 기억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보이지 않는 손으로 너를 어루만지고 토닥여주고 있는 내가 있다는 걸 기억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울고 또 서럽겠지만, 나는 너무도 잘 알아. 너는 너무도 훌륭한 일을 해냈어. 너는 너무도 자랑스러운 두 아이의 엄마야.
지금 우리 아이들은 벌써 초등학생 고학년이 되었어. 얼마나 대견하니. 너는 아이를 이만큼이나 길러낼 수많은 날 중의 하루를 보내는 중이야. 매일 ‘내가 이 꼴로 아이를 대하는데 애들이 잘 크겠어? 내가 너무 버겁고 힘든데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나는 결국 엄마로서도 낙제점이고, 아이들을 훌륭히 키워내는 것에도 실패할지 몰라’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이들은 너무도 훌륭하고 바르게 컸고, 나에게 고마워하고 있고, 엄마를 깊이 사랑하고 있어. 이제는 내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준다기보다, 아이들이 나를 위해 해주는 것들이 많아. 내가 아플 때 푹 쉬라고, 집청소도 알아서 해놓고, 밥도 알아서 챙겨 먹고, 심지어 나를 간호해 줘. 공부도 스스로 잘하고, 성실히 지내기 위해 노력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 우리 가족은 행복하고 화목해. 집안에서는 늘 웃음소리가 들리고, 맛있는 밥냄새가 나. 너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행복은 없었을지도 몰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초보엄마로서 하나하나가 모두 불안했던 것 같아.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다 쓸데없는 기우였어. 너는 그냥 엄마로서 건강하게 버텨주기만 하면 돼. 아이들이 바라는 것도 그것뿐일 거야. 너무 무겁게 혼자 짐을 다 지고 있지 마. 아이의 울음소리에도 조금 느긋해도 되고, 아이가 밥을 안 먹으면 그냥 모른척해버려. 억지로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다 폭발하고 죄책감 느끼고 하던 그때가 참 후회돼.
“그냥 좀 대충 해도 돼.”라고 했던 주변인들의 말에, “뭐? 그게 아이한테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데 왜 다들 나만큼 신경 쓰지 않는 거야? 왜 나를 유난으로 모는 거야? 육아서에도 그렇게 나와있고 의사들도 그렇게 말하고 있단 말이야.”하고 뾰족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돼. 지나 보니까 대충 해도 되는 일이더라. 옛날에 아이를 ‘생존’을 위해서만 키우던 어른들의 말도 다 맞고, 지금의 정보들로 정확하게 ‘더 잘’ 키워주려는 네 생각도 맞지만, 너를 위해서는 아이를 그저 키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어.
10년 뒤의 나는 되게 담담하게 멋지게, 가여운 너를 위로해주고 있는 것 같겠지만, 사실은 나 지금 이 편지를 너에게 띄우며 굉장히 많이 울고 있어. 괜찮아. 잘했어.라고 말해주고 있지만, 실은 나 그때 괜찮지가 않았어. 그 괜찮지 않음이 가슴속에 쌓여 한으로 남은 것 같아. 육아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번아웃이라는 게 와. 내 자신을 모두 태워버리고 재만 남은 상태인거지. 나는 꽤 힘들었어. 그래서 너는 괜찮았으면 좋겠어. 네가 괜찮아지면 나도 괜찮아질 것 같아.
너를 안아주는 것이 곧 지금의 나를 안아주는 것임을 깨닫고 나는 너에게 긴 글을 써 보내려 해.
부디 네가 조금은 편해지고, 크게 숨을 쉬었다 갈 수 있기를 바라.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게 있어. 나는 그때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아. 너무 힘들어서 ‘빨리 자라라’하고 주문만 외고 있었던 그때의 내가 후회돼. 그런데 지금에서야 그때의 사진을 보며 후회하고 있어. ‘이렇게 귀여웠는데 왜 그땐 몰랐을까..’
금세 사라질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기쁘게 만끽하길 바라. 아가의 살냄새, 분유냄새, 솜털 같은 머리카락, 오동통한 살집들, 나를 꼭 쥐는 자그마한 손가락, 옹알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져만 갈 거야. 다시 아이를 키우는 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지만, 그때의 모습을 다시 못 본다는 건 너무 아쉬워.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우리 아가들에게 코를 파묻고 냄새를 맡고 올 수만 있다면, 다시 돌아가서 그때의 귀여운 아이를 만지고, 안고, 함께 웃을 수 있다면, 억만금을 다 주고 싶은 마음이야. (물론 지금 초등학생이 된 모습도 사랑스럽지만 말이야!)
너에게 글을 쓰면서 또 한 번 깨닫는다. 금세 자라 버릴 지금의 우리 아이들의 모습도 기쁘게 만끽해야겠구나 하고 말이야!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이 없어 심심할 때가 곧 와. 애들 굶기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내려놓고,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임하길 바라. 물론 그때의 나는 그런 말들이 들리지 않았지만, 정말로 간절하게 가닿았으면 좋겠어. 너의 건투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빌게.
2025년 2월의 어느 날
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10년 후의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