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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무 Nov 11. 2022

나를 닮지 않은 딸

딸아이를 낳은 지가 삼심여년이 다되어 간다.

그날이 아마 일요일이었지.

진통이 올 때마다 엄마와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떡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 먹던 쑥개떡이랑 집에서 만든 인절미랑 그밖에 많은 식구들 틈에 먹을 것에 경쟁이 붙어 슬금슬금 몰래 먹던 떡 이야기...

드디어 진통의 주기가 빨라지고 더 이상 아픔을 소리로 내기 힘든 상황이 오자 분만실로 향했다.

그래도 둘째 아이라 첫 번째보다는 쉽게 아이를 낳았다.

물론 힘이 들어 아기를 자세히 보지 못한 채 입원실로 옮기는 중에 또렷이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고, 형님 얘가 시어머니 미워했나? 애기가 지네 할머니를 빼다 박았어요'

그 한 줄의 대사는 나를 서글프게 했다.

무서운 시어머니, 나를 이뻐하지 않았던 시어머니를 빼닥 박다니...

엄마가 아기를 안아 보여주려고 하자 갑자기 서러웠다.

분만을 하고 정신도 차리기 전에 들어야 했던 시어머니를 빼다 박았다는 생각에 그저 서러웠다.

하지만 아기를 보자 이전에 했던 생각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아기가 대견했다.

내 안에서 잘 자라 새까만 머리카락까지 박고 나온 것이 끔찍하게 고마웠다.

그 아기가 자라서 성인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 인정받는 사회인이 되었다.

딸아이는 나를 닮지 않았다.

그 아이는 자존감이 강해서, 내가 감히 생각하기 힘든 행동을 구상하고 해냈다.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어서 주변에 사람들이 들끓었다.

음치임을 알면서도 크게 소리 내며 마이크를 잡을 때면, 엄마가 하시는 말이 생각난다.

'니 딸이 너 안 닮아서 참 좋다. 얼마나 자신감 있니? 어디 가서도 기죽지 않고...'

그 이야기 중에는 늘 자존감이 낮아 나서지 못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답답해하는 엄마의 마음이 있었으리라.

사실 첫째 아이는 어려서 잘생겼다고 소문이 났다.

아파트 단지 앞에 있던 은행 직원들이 아기 보고 싶다고 은행에 오라고 전화할 정도였다.

반면 딸아이는 다른 아기들에 비해 이쁜 아기가 아니었다.

아이들 어렸을 적, 딸아이를 유모차 태우고 큰 아이를 손잡고 나가면 놀이터 사람들이 아들 잘 생겼다고 칭찬을 마구 해대다가 유모 차속 딸아이를 보면 하는 말이 있다.

'얘는 누구 닮았어요?'

'이런 애가 크면 예뻐요'

이런 애가 크면 이쁘다니,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친정엄마한테 전화해서 울었다. 이런 애라니, 이런 애가 어떤 애냐고 서러워했다. 철없는 딸이었다.

그게 뭐 그리 서러웠는지 전화해서 울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다.

내가 딸아이의 생김새에 예민하게 굴었다고 생각해서인지, 어느 날 친정엄마가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양 말씀하셨다

'얘야 니 딸 입술 봐라, 대통령하고 입술 모양이 똑같다. 이 애는 분명 크게 된다 대통령이 말할 때랑 이 아이 웃을 때랑 봐봐라... 입술 모양이 똑같지 않냐?'

참으로 어이없는 친정엄마의 발견이 위로가 되었다는 것이 더 의아하다.

그렇게 내게 서러움이 되고 기쁨이 되었던 딸아이가 엄마 말대로 나를 닮지 않아서 참 좋다.

나를 닮지 않은 딸이 말한다.

'엄마 뭐든지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엄마는 다 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오늘 전화를 했다.

'엄마 패러 그라이딩 타러 가자, 그런 거 해보고 싶어 했잖아'

나이가 들면서 자신감은 더 떨어져서 그것이 가능할지 겁이 난다.

예전에 사십 대가 지나기 전 번지점프를 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루지 못하고 사십 대가 지났다.

이제는 자신이 없다.

그런데 패러 그라이딩을 탈 수 있을까? 오십 대가 얼마 안 남았는데 오십 대가 가기 전에 해보라고 이끌어주는 나를 닮지 않은 딸이 너무 좋아 미치겠다.


#모녀여행 #패러그라이딩 #자존감 #자랑스런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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