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딸내미 Dec 19. 2023

날 일으키는 부모님의 말

내 회복탄력성의 비결

장점을 말할 기회가 있을 때 난 늘 나의 '회복탄력성'을 자랑하곤 한다. 회복탄력성이란 어떤 상황이나 어려움을 겪은 후에 빠르게 회복하고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능력이다. 발달심리학 연구자인 에밀리 워너(Emmy E.Werner)가 적응 유연성(Resilience)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소개하면서 회복탄력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워너(Werner)는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기질적 특성과 양육 환경으로 구분하였다. 이는 회복탄력성이 선천적이면서 양육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변화될 수 있는 특성임을 나타낸다.


평소 맷집이 좋다는 생각은 했다. 같은 매를 맞아도 덜 아팠다. 혼이 나고 우울해도 자고 일어나거나 바람만 좀 쐬면 금방 기분이 풀린다. 비록 불량한 식습관과 교대 근무로 인해 육체적인 맷집은 약해지고 있지만 마음의 맷집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상처를 내야 강해지는 근육처럼 크고 작은 역경으로 마음의 근력을 키다. 그리고 부모님의 말을 발판 삼아 다시 일어난다. 사용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용기와 꿈은 다정하고 튼튼한 부모님의 발판에서 안전하게 튀어 오른다.



네 숨소리만 들어도 든든해.

거실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통화 소리에 코가 시큰했다. "큰딸이 방에 들어가 있어도 딸 숨소리가 들려. 난 그 숨소리만 들어도 든든해." 나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기쁨과 사랑이 된다는 사실은 벅차고 아름다웠다. 엄마의 속도 모르고 기분대로 행동했던 못난 모습들이 지나갔다. 우리 자매를 낳은 것이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자랑하는 우리 엄마. 자식의 존재만으로 안정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엄마의 행동과 말은 내가 나이기에 소중하다는 생각의 바탕이 되었다. 안정적이고 든든한 엄마의 사랑 안에서 태어난 나는 실패와 좌절을 여전히 두려워하지만 언젠가 치유될 것이고 극복할 수 있다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있다.


네가 오죽하면 그랬겠니.

가족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라고 배웠지만 연장선은 아니었다. 직장을 다니고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그제야 세상 사람들이 우리 가족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이 어렵고 무서워지는 순간이 생겼다. 사람이 두려워지니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난 세 번째 이직한 직장에서 3일 만에 그만두었다.

무겁고 날카로운 조직의 분위기와 체계가 잡히지 않은 업무 환경에 '도망'이라는 두 글자만 머리에 동동 떠다녔다. 결국 출근 3일째 되는 날 면담을 진행했고 "너 이러고 다니는 거 부모님이 아시니?"라는 상급자의 말에 입꼬리가 떨렸다. 살면서 부모님을 이용해 모욕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 당황했지만 '우리 부모님은 절 이해하실걸요.'라는 굳은 믿음으로 빠르게 사물함을 정리했다. 곧장 집으로 달려가 부모님께 3일간의 모든 일들을 쏟아냈고 결국 짐을 싸고 나오는 것이 최선이었다고 고백했다. 부모님의 첫 마디는 "네가 오죽하면 그랬겠니."였다. 3일 만에 퀭해진 내 얼굴에 금세 혈색이 돌았다. 경직된 몸은 물이 닿은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았다.

한바탕 자고 나서 다시 구직활동을 시작했으며 일주일 만에 마음에 드는 직장에 합격했고 지금까지도 잘 다니고 있다.


넌 어딜가나 성실하구나?

체육관에서 복싱을 배운 지 8개월이 다 되어간다. 난 관장님이 비밀리에 진행한 체력 시험에서 여자 중에 1등을 차지했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늘 아등바등 진도를 따라가느라 진이 빠졌던 초반 3개월이 스쳐지나갔다. 0에서 시작한 체력이라 큰 기대없이 꾸준히 한 것 뿐이었는데 평생 바라지 않던 체력 1등이라는 목표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부모님에게 떵떵거리며 자랑했다. 아빠는 밥을 먹느라 대충 들었지만 엄마는 "넌 어딜가나 성실하구나?"라며 나의 태도에 초점을 맞췄다. 엄마는 함께 기뻐해주는 것을 넘어 좋은 결과를 일궈낸 나의 자세와 노력을 칭찬한다. 엄마의 말을 듣고 성실함과 책임감이라는 필살기를 양 손에 쥔 내가 다시 보였다.


널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만나.

부모님께 연애사를 종종 공유하는데 아빠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늘 진지한 표정으로 널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만나야된다는 말로 마침표를 찍는다. 처음에는 그 말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귀하다.'라는 말을 평소에 잘 쓰지도 않을뿐더러 매력으로 느낄 수 있는 흥미롭고 멋진 조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아빠의 말을 곱씹을수록 내가 연애에서 상처받았던 경험과 이별을 선택한 이유가 이해되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부모님의 사랑을 닮았다. 결국 아빠의 말은 본인처럼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는 뜻이었다. 갈등이 생기더라도 서로를 귀중하게 여기는 태도를 잃지 않는 사람이 이상형 목록에 추가되었다. 다음 연애의 시작이 더 아득해졌지만 부모님의 소중한 딸로서 한층 더 성숙한 로맨스가 펼쳐지길 기대한다.



   

스트레스가 몸과 마음을 위협하여 혼자 감당할 수 없을 때 본능적으로 부모님을 찾는다. 5분, 10분이 지나면 바위 같은 걱정거리가 태산 같은 부모님의 말에 콩 박혀 힘을 못 쓰게 된다. 내 회복탄력성의 비결이다.

작가의 이전글 다음 생에도 내가 언니할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