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팔 일기 with 자미 : 2. 나와 인연이 있는 책
여전히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책 2권을 소개하려고 해. 이 두 권의 책은 모두 추천을 받고 선물을 받은 것들이야. 나는 이렇게 누군가의 우연한 추천이나 선물로 마주한 책을 손에 쥐게 되면 꼭 소개팅을 하는 느낌이 들어. 책 표지가 마음에 드는지, 페이지 수는 얼마나 되는지, 작가는 누구인지, 제목은 무엇인지 빠르게 훑어보는데 꼭 소개팅 첫 만남에 상대방을 쳐다보는 내 모습같아. 느끼하고 궁금증이 가득한 눈빛은 필수야.
독서를 취미라고 말할 만큼 직접 고르고 읽은 지 한참 지났으니 나에게도 책 취향이라는 게 존재해. 독서 모임을 다니며 여러 분야의 책을 읽는 것에 장벽은 낮아 졌지만 아무래도 읽게 되는 것만 보게 되더라고. 그래서 누군가의 책 추천이나 선물이 흥미로우면서도 과연 나와 잘 맞을까라는 의문이 앞서기도 해. 근데 여전히 내가 사랑하고 자꾸 보게 되는 책이 남들의 손에서 찾아왔어. 소개팅에 성공한 거야! 그 책들이 날 마음에 들어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난 여전히 짝사랑하고 있어.
1. '자기 결정' (페터 비에리)
이 책은 너와 내가 모두 가지고 있는 책이지. 우리 둘이 한 독서모임 회원의 결혼식 축가를 하고 답례로 받은 책이잖아. 난 이때부터 페터 비에리의 열렬한 팬이 되었어. 페터 비에리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쓴 작가로 유명하지. 소설 외에도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자유의 기술>, <삶의 격> 등의 책을 출간한 철학가야.
나는 행복하고 편안한 인생을 위해 스스로를 돌보는 것에 늘 관심이 있어. 이런 삶을 유지하려면 나와 어울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인생의 큰 기쁨이라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자주 고민하곤 해. 이런 나에게 108페이지의 짧고 강렬한 내용으로 눈을 번뜩이게 만들어준 책이 바로 '자기 결정'이야.
이 책의 제목처럼 내가 결정하는 삶은 어떤 모습이며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냉철한 자기 인식이 필요한지, 나만의 정체성을 가꾸기 위해서는 어떤 활동이 필요한지 담고 있어. 페이지를 넘길수록 마음만 먹고 모호하게 계획했던 나의 삶이 뚜렷해지는 것 같아 천천히 아껴 읽었어. 내 인생에 대한 기대감이 이 책의 마지막 장과 함께 사라질까 전전긍긍했던 거야.
페터 비에리는 내가 어떤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어떤 취향과 정체성을 가지고 행동할 것인지 고민하는 삶에서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해. 나는 이 책을 펼칠 때마다 내 삶의 당당한 주인으로 서게 돼. 내가 좋아하는 인생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 늘 곁에 두고 사랑할 거야.
2.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
시집을 좋아하는 나를 아는 너의 예상이 맞았네! 내 인연이 된 두 권의 책 중 한 권이 바로 이 시집이야. 너무 유명해서 언제든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서점에서도 늘 뒷전이었는데 평소 생각이 비슷한 친한 언니의 강력한 추천으로 도서관에서 처음 읽게 됐어. 그날 이후로 1년에 한 번씩 철새처럼 이 시집을 찾아가게 되었어.
이 시집에는 류시화 시인이 생각하는 좋은 시들이 담겨 있어. 주제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랑, 극복, 위로, 외로움 등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과 경험들이야. 사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내 삶의 마음가짐을 통째로 옮겨놓은 것 같아 신기했어. 왜 여지까지 안 읽고 버텼는지 후회가 되더라니까. 이상한 고집으로 남들이 다 좋다는 책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됐어. 많은 사람들이 오래 사랑하는 책에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나 봐. 참 이상한 심보야.
결국 첫 번째로 수록된 시인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의 <초대>가 내 인생 최고의 시가 되었어. 참 웃기지 않아? 안 읽겠다고 버틴 시집을 펼치고 단 한방에 K.O.(knockout)를 당한 셈이지. 이 시는 남의 시선보다 나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용기와 좌절과 희망 속에서도 기꺼이 일어나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어. 평소 내가 바라던 삶을 살고 있느냐 끊임없이 질문하는 이 시가 나에게 그 어떤 남자보다 박력 넘치게 다가왔고, 스스로 극복하고 존재하는 삶이 내가 사랑하는 삶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에 오늘과 내일이 기다려지는 마법이 펼쳐지는 것 같았어.
이 시집은 일부러 구매하지 않았는데 1년에 한 번 저절로 찾아가는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야. 갑자기 이 시집을 찾게 되는 순간이 있어. 분명한 건 이 시집에 담긴 다양한 주제처럼 항상 같은 마음으로 펼쳐보진 않았던 것 같아. 올해는 너와 글을 쓰게 되면서 펼쳐 보게 되었네. 이렇게 이 시집과는 묘한 인연이 있어.
앞으로 읽을 책에 대한 너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나는 올해가 가기 전에 앞서 소개한 페터 비에리 작가의 <삶의 격>이란 철학서를 다시 읽을 거야. 그냥 이 책이 좋아서! 이것만큼 확실한 이유는 없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