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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내미 Oct 17. 2024

일, 일, 일. 평생 재밌고 지겨운 일.

펜팔 일기 with 자미: 3. 일에 대하여

직장인 11년 차의 고개를 간신히 넘은 이 시점에서 요즘 가장 강렬하게 드는 생각은 더 이상 명령대로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야. 정말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해. 동종업계에서만 쭉 일했으니 이직해도 곧 적응을 하고 새로운 일도 어렵지 않게 배우는 정도에 이르렀기 때문이지. 특히 경력이 쌓이다 보니까 내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더 큰 책임과 결정을 내리고 싶은 욕구가 더 커지고 있어.


난 항상 내 일과 마음이 잔잔할 때 스스로 파도를 만드는 경향이 있어. 근데 또 겁은 많아서 단숨에 파도를 타진 않아. 한 발짝씩 떼보기도 하고 물장구도 쳐보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때도 있어. 근데 30대 중반이 갈수록 파도가 더 높이 자주 오는데 어쩜 좋니?  


기존의 일이 조금만 익숙해지면 살랑살랑 새바람이 불어와. 안정적으로 직장에 다니는 꼴을 스스로가 볼 수 없나 봐. 그동안 내가 업으로 삼고 싶었던 재미있는 일들을 모두 끌어와 차르륵 펼쳐놔. 그때부터 일이 두 가지로 나뉘어. 현재 안정적으로 하고 있지만 지겨운 일, 언젠가 직업으로 삼고 싶은 재미있는 일.


20대보다는 무모한 용기와 몽상으로 보낸 시간이 줄어들긴 했어. 안정적인 일에 발을 붙이고 상체만 허우적  거리는 내 모습이 더 이상 재밌지도 않게 됐지. 방황하는 내 자신이 우스워서 웃음으로 넘긴 꿈만 몇십 개야.

이제는 확실히 선택하려고 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수명도 정해놨어. 딱 40살까지만 직장에 다니고 외부의 명령에서 독립할 거야.


그래, 난 작가가 될 거야.


첫 한 줄 쓰는 것이 여전히 버거운 글쓰기이지만 너무 재미있어. 마침표를 찍은 한 편의 글은 솔솔 잠이 오게 해. 내가 읽어도 '훗!' 미소가 나오는 문장은 넉넉하고 맛있게 먹은 한 끼 식사와 같아. 든든하고 기분이 좋아져. 아직 한 권의 책도 출간하지 않은 예비 작가이지만 작가는 작가잖아. 이렇게 차근차근 너의 도움을 받고 나의 열정을 담아 모두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줄 거야. 세상이 좋든 싫든 그렇게 난 말하는 사람이 될 거야.


매년 너에게 꼭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지. 어떻게 한 직장에 평생 머무를 생각을 할 수 있냐고. 그때마다 넌 안정과 감사를 말해. 지금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탄탄한 직장에서 너만의 일상을 꾸리고 그 안에서 감사한 일들을 발견하는 너의 모습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돼. 넌 안정이 주는 감사를 당연히 느끼면서도 그 안에서 발전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욕구도 강한 편이지. 이 점이 너와 내가 20년지기 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추억에만 머무르지 않고 여전히 나아가는 관계로 걸어가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아.


근데 작가가 내 마지막 직업이자 꿈이라고는 말 못 해. 언젠가 작가도 지겨워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또 다른 재미있는 일이 업으로 삼는 것이 어떠냐며 유혹하지 않을까? 근데 난 또 흔들리려고. 거봐 난 이렇다니까. 아직 책 한 권도 내지 못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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