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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내미 Dec 19. 2023

장녀의 독립

나이스빌에서 훼미리하우스로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거주한 빌라의 이름은 '나이스빌' 난 30살을 맞이한 생일에 나이스빌에서 독립했다.

가수는 노래 제목 따라가고 사람은 이름 따라 산다더니 우리 가족은 나이스빌에서 꽤 나이스하게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길게 쉬는 방법을 모르는 아빠와 휴식이 늘 필요한 엄마. 매일 일하는 것 같은 나와 집순이 동생. 조화를 상상할 수 없는 조합이지만 이 네 사람은 '가족'으로 만나 네 식구가 됐다.


난 30년의 장녀 경력 치고는 장녀 노릇에 장인 정신이 늘지 않았다. 물론 부모님 화해시키기, 가족의 경사 챙기기와 같은 영역에서는 높은 수준의 공감 능력과 적극성을 발휘하지만, 사건이 종결되면 곧장 발을 빼고 방으로 들어가 꼭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더 이상 12년 전 여고생이 고른 연두색 벽지의 방은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 내 나이 계란 한 판.
서른 살과 어울리는 벽지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로 결심하다.


비장한 다짐에 비해 가족의 지원과 은행의 도움으로 22평의 신축 빌라를 분양받았다. 이름하여 '훼미리하우스' 훼미리하우스는 영어로 Family House이며 한국말로는 '가족 집'이다. 부모님 집에서 고작 두 블록 앞에 위치한 곳으로 '그래봤자 넌 가족 품 안이야.'라는 뜻일까? 1인 가구의 탄생이 시작됐다는 의미일까? 사실 해석은 중요하지 않다.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나의 집'이 생겼다는 사실!


높은 금리에도 삶의 질 높아졌다. 자유롭게 거실을 활보하며 홀딱 벗고 체중계에 올랐다. 시간을 따지지 않고 배달을 시키며 반주를 즐겼다. 3교대 근무로 인해 예민해진 수면 상태가 개선되었다. 독립 후 3년이 지난 지금은 음식 배달과 음주를 가계와 건강의 위협 요인으로 판단하여 한 달에 2회로 줄였다.


여전히 내 끼니를 걱정하는 부모님은 '나이스빌'로 올라와 함께 밥을 먹자고 말한다. 무인택배함에 반찬과 생필품을 넣어 주고 엄마는 계절마다 내 이불을 교체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부모님은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나간 딸내미에게 섭섭함과 걱정을 감추고 적당한 관심과 넘치는 사랑을 준다. 가끔은 두둑한 용돈까지. 이런 나이스하고 훌륭한 부모님에게 태어났다면 평생 그 복(福)을 누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가족으로부터 정신적, 경제적 독립은 최대한 미룰 예정이다.
나는야 조건적 캥거루족. 기회주의적 캥거루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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