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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 May 18. 2020

이러다가는 진짜 요절할 것 같아서

직장인 유도 입문기


  입사 3개월 차,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23살에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과장 없이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출퇴근 길에 오르는 지하철 계단 몇 칸에 숨이 턱턱 막히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말도 안 되게 힘들어짐과 동시에 체중은 불어 역대 최고 몸무게를 기록하고 있었다(눈물을 머금으며 바지를 몇 장 새로 산 것은 당연한 절차였다). 나 그래도 아직 20살인데! 몰아치는 위기감에 어느 날 퇴근길에 요가 매트 하나를 샀다.


  매트를 산 다음날부터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요가 비디오를 10분씩 따라 하며 몸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그게 조금 익숙해질 즈음에는 건강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 더 덜어내 보고자 출근길에 실내 사이클을 구매했다. 무릎이 좋지 않아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대신에 사이클만 주구장창 타던 기억 때문이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기에 결제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유도장에 등록까지 일사천리였다(한 친구는 우스갯소리로 디자이너 때려치우고 체육인이 될 거냐 물었다). 친한 친구가 다니기 시작한 곳이었고, 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운동이었기에 더욱이 고민은 없었다. 등록 당일 저녁에 바로 첫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평소 로망으로 묻어두던 흰색 유도복을 입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생각보다 빳빳하고 무거운 도복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다.


  준비 운동과 마무리 운동.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앞구르기에 뒷구르기에 기타 등등 준비 운동으로 열심히 구르고 나니 벌써 체력이 바닥났다. 심지어는 동작을 제대로 할 줄도 몰라 헤매기 일쑤. 수업이 끝난 뒤 하는 마무리 운동까지도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유도를 처음 배우면 낙법을 가장 먼저 배운다. 워낙에 겁이 없는 편이라 바닥에 떨어지고 구르고 다치는 것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겁이 없다고 해서 힘들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수업이 끝나고서는 후들거리는 다리와 팔로 넝마 한 조각이 되어 도장을 빠져나왔다.


  첫 수업 다음날(다행히 토요일이었다)에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근육통을 체험했다. 문자 그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한참을 누워있다가 오후쯤에서야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3일이면 지나가겠지라는 안일한 생각과는 다르게 일주일은 상상도 못 한 근육통에 시달리면서 도장에 나갔다.


  학교를 다닐 적에는 체육이 너무 싫었다. 비가 오거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실내 수업을 하게 되는 날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을 정도로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고, 스스로 운동에 재능도 없고 흥미도 없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평가와 점수를 위한 운동이 싫었던 것뿐이다.


  생전 처음 느끼는 근육통을 달고, 팔꿈치가 까져서 흰 도복에 피가 묻고(내심 훈장처럼 남아있길 바랐는데 세탁하니 말끔히 지워지더라), 퇴근 후 운동까지 하느라 골골대면서 다음날 출근이 힘들어도 도장에 나가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게 재밌고 몸을 움직이는 게 즐겁다.


  수업은 오후 8시 30분에서 9시 30분. 나는 대개 7시가 넘어서 퇴근하기 때문에 도장에 도착하면 항상 지각생이다. 그렇지만 늦더라도 3-40분만이라도 수업을 받고 나오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특히 처음 업어치기를 배운 날의 짜릿함은 말로 못 다 표현한다(소질 있다는 칭찬을 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요절하기 싫어 시작한 유도는 어쩌다보니 내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는 새로운 세계를 하나 열어주었다. 물론 여러 이유(늦은 퇴근 등의)로 그 속도가 꽤나 더디기는 하지만 앞으로 꾸준히 유도를 배워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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