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마음의 표현. 낙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아침. 친동생의 예비군 훈련장을 데려다 주기 위해 차에 몸을 싣는다.
적지 않은 나이의 동생이 혼자 가길 바라지만, 그의 불쌍한 눈빛을 거절할 용기는 없다.
동생은 내게 말한다.
'형.. 대중교통 타면 내려서 40분 걸어가야 하는데 데려다줄 수 있나..?'
면허가 없는 동생이 한편으로 아쉽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동생인걸.
추운 아침 옷을 껴입고 동생과 함께 목적지로 향한다.
동생은 내심 미안했는지 평소에는 잘하지 않던 질문들을 하기 시작한다.
'결국 하기로 한 거야?'
'전 직장은 어땠는데?'
귀여운 모습이다.
평소 동생은 내게 질문을 많이 하지 않는다. 주로 내가 질문하고 듣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리고 이내 생각한다.
'나에게로 향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걸?'
이런저런 혼자만의 생각을 마치고 동생을 바래다준 후 다시 나는 집으로 향한다.
올 땐 둘이었지만 갈 땐 혼자임을 깨닫는다. 북적임은 사라졌고 아쉬움이 남는다.
말동무 한 명이 사라지니 적막함은 더 차가운 바람과 함께 내 몸을 때린다.
꽤 춥다.
출발한 지 10분이 지났나?
정적이 싫었던 나는 애꿎은 라디오를 틀기 시작한다. 운전할 때 거의 틀지 않는 라디오를 말이다.
남자 성우의 목소리가 잔잔히 흘러나온다. 차가운 차 안 공기가 금세 따뜻함으로 채워진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내용을 유추하게 만든다. 나의 귀는 라디오에 집중한다. 주제가 공개된다.
낙서다.
낙서와 관련된 산문이다.
낙서를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낙서의 본질 혹은 그 저변의 것.
저자는 말한다.
낙서는 '나를 순수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꽤나 흥미로운 주제에 몸과 뇌가 반응하고 운전을 하는 리듬이 곧 경쾌해지기 시작한다.
나의 '생각 스위치'가 켜진 것이다.
낙서는 무엇일까? 낙서가 내게 주는 것이 뭘까? 나는 평소에 낙서를 어떻게 대했나? 등 생각의 갈래는 그 걸음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다시 집중한다.
1. 내가 정의한 낙서는 무엇일까?
집중력을 감소시키는 방해물 / 뇌가 산만함의 가시화 / 불안함 / 본질의 집중하지 못한 결과물 등
2. 낙서가 내게 주는 것이 뭘까?
전화 통화 시 궤변, 이상한 논점을 잊게 해주는 도구 / 무의식의 행동을 깨닫게 해주는 것
3. 낙서를 어떻게 대했나?
딱히 조명하지 않음 / 하면 하고 말면 마는 것 / 중요한 것이 절대 아님
아무리 생각해도 순수성을 연결할 수 없다.
나의 주관이 흐트러지기 쉽지 않다. 마음을 열고 낙서의 순수함을 받아들이려 노력하지만 좀처럼 열리지 않는 나의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말한 순수함이 도대체 무엇일까 다시 한번 더 곱씹어본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자 호기심이 발동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며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의 낙서. 어머니의 공책.
유년시절 어머니의 공책에는 수많은 그림과 단어들로 채워진 낙서장이 있었다. 나는 호기심에 어머니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 이 그림은 뭐야? 이건 무슨 말이야?'
어머니는 대답한다.
'몰라~ 그냥 즐거운 거야~'
동네 아주머님과 1-2시간을 통화하며 어찌나 그렇게 즐거워 보이시 던 지.
항상 통화가 마친 후의 어머니의 공책은 춤추고 있었다.
하얀 빙판 위에서 검은색 옷을 입은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다채로운 자태를 뽐낸 것만 같이.
나는 곧장 어머니의 마음을 깊이 생각하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낙서는 1-2시간의 통화 속에서 즐거움을 표현한 순수한 수단이었다는 걸.
상대방은 대화를 통해 어머니의 상기된 말투, 호기심 있는 호흡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그 마음은 하얀 노트 위에 자신을 향한 순수함으로도 표현한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웃음과 함께 자연스럽게 펜을 잡으셨던 것이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내면의 즐거움을 표현한 순수 결정체였다.
낙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어들과 쉽사리 매칭되지 않는다. 그린 그림들은 무엇을 표현하는지 당최 알 수 없다. 그저 무의식적인 즐거움과 순수함인 것이다. 의미를 해석하고자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 낙서는 날 것 그 자체다.
더할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는 내 감정을 오롯이 드러낸 상태.
그리고 나만이 알 수 있는 암호와 같은 표현의 산물.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기보다 단지 나를 오롯이 맡길 수 있는 매개체다.
나를 나대로 바라보고 내 감정을 가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귀한 수단이 낙서인 것이다.
낙서를 하는 순간, 깊은 생각이 사라지고 텅 빈 공간 홀로 있는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느낌이 든다.
어둠에 방해받지 않는 고귀한 나의 행동인 것이다.
자유로워진 내 상태에 선명히 그어진 검은색 볼펜 자국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달리 이야기하면 내 몸을 맡긴 채 온전히 통화에 집중하고 계셨던 것이다. 집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매몰을 방해하는 수단이 아니라 나를 더욱더 또렷이 드러내기 위한 작업이었을 뿐이다.
낙서도 순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부정적인 시선을 비틀어 생각하면 우리의 순수성을 부각하는 매개체이다.
어머니를 통한 배움, 낙서를 향한 시선의 변화가 그리 어색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나의 순수성이 어떻게 드러날지 앞으로가 기대된다.
낙서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여러분에게 낙서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