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Dec 19. 2023

누가 발리가 천국이래?

나는 발리가 싫어

내 여행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누굴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그 사람과 어떤 마음을 나눴는지가 행복한 여행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였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발리 여행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나는 여행을 시작하면 걷는 걸 좋아한다. 사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걷는 게 내 여행 방식이다.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기에 걸으면서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발리에서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잘 없었다.

바이크를 타면 900원 정도로 원하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는 데다가 날씨가 너무 덥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 현지인들 눈에는 내가 참 독특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자전거도 바이크도 없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뚜벅뚜벅 걷는 동양인 여자.


그래서일까 그렇게 혼자 걷다 보면 택시나 오토바이 운전수들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았다. “하이, 니하오, 안녕, 카와이.” 정말 1분에 5번씩 나를 차지하기 위한 드라이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친절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 걸어갈 거야. 택시 없어도 돼.”


그런데 점점 지쳐갔다. 그러다 나중에는 누군가 나에게 말만 걸어도 짜증이 나는 수준에 이르렀다.


분명 발리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길을 걷다가 눈만 마주쳐도 웃어주는 사람들이라고 들었는데 이게 내가 아는 발리가 맞나 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모두가 천국이라고 이야기하는 곳이 나는 왜 좋지 않지? 나는 자꾸만 발리가 싫어졌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바가지를 씌우는 것도, 물어볼 때마다 가격이 자꾸 바뀌는 것도, 지나갈 때마다 물건을 사라고 호객하는 것도 모두 나를 지치게 했다.


그렇게 발리 사람들에 대한 경계가 심해질 무렵 나를 무장 해제 시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1) 쿠킹 클래스 셰프 마티와 마티의 아버지

Amy 님의 제안으로 쿠킹 클래스를 들었다. 쿠킹 클래스는 시장에 들러 재료를 구경하고, 음식을 만드는 순서로 진행됐다. 마티는 우리에게 시장에서 물건들의 시세가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좋은 과일을 고르는지. 이 재료들로 어떤 음식들을 주로 만드는지 하나씩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모두를 챙기면서 농담을 잃지 않는 마티. 자신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소개하던 마티를 보면서 나는 점차 발리 사람에 대한 오해가 풀려갔다.


그리고 도착한 마티네 집에서 요리를 같이 만들 마티의 아빠를 만났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저렇게 해맑고 귀여운 아저씨가 세상에 존재하다니.’ 그는 클래스 내내 12명의 사람들을 홀렸다. 특유의 귀여움과 재치로.


마티네 가족을 보면서 나는 어쩌면 이 사람들이 진정한 발리인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친절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들. 나이에 관계없이 아이 같은 마음을 간직한 사람들.



2) 최애 카페에서 만난 직원 유디

길을 걷다가 우연히 멋진 카페를 찾았다. 에어컨이 있고(중요) 좌석마다 콘텐츠가 있어 오래 작업하기 좋은 곳.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좋고, 분위기도 좋아서 오늘의 일터로 정했다.


그곳에서 유디를 만났다. 유디는 첫 만남부터 아주 다정했다. 여행자처럼 보이는 나에게 어디를 가봤는지 묻더니 자기만 아는 맛집은 어딘지, 조심해야 할 사항은 뭔지 하나하나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항상 여기 있으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와!”


항상 그곳에 있는 유디는 이제 내가 카페에 들어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를 해준다. “굿 모닝, 새봄”



3) 멋쟁이 CEO Amy

인스타그램에 이런 게시물을 올렸다. “혹시 발리에 계신 분이 있나요? 있으시다면 우리 지금 당장 만나요!” 그러고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저 지금 발리 우붓에 있는데 어디에 계세요?”


그렇게 우리는 속전속결로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첫 만남에 같이 쿠킹 클래스를 하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현재 여행 업계 PR 대표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너무나 다정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내 고민을 듣더니 지금 해야 할 일은 뭔지, 그걸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전문가의 시선으로 분석해 주는 멋진 사람. 내 이야기에 경청해 주고, 그것에 대한 진심 어린 말들을 아끼지 않는 사람.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여행에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비율을 차지하는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됐다.




역시 여행은 사람이다.

어쩌면 나 발리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동료의 친구가 자살을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