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메일로 인터뷰 제안이 들어왔다. 공무원 퇴직자들에게 공무원의 현실에 대해 들어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좋은 직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자기 발로 나오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고,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어떤 점이 그런 선택을 하게 하는지 경험자의 생생한 증언을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동영상 인터뷰 촬영 장소로 향하는 길. 예전 나의 직장이지만 너무도 생소한 이곳. 정확히 13년전 중앙일보 편집국에 근무했었다. 그때가 언제예요. 상암시대가 열리기 전 서소문 사옥일때니까ㅋㅋ 틀딱인증.
그땐 종이신문이 막강한 파워로 언론을 주름잡던 시절이었고, 온라인 저널리즘이란 용어도 생소하던, 이제 막 온라인이 씨를 뿌리던 초창기였다.
당시 중앙일보는 한발 앞서 온라인시대를 준비했고 나는 디지털뉴스룸 소속으로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길을 가며 열심히 삽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공무원으로 이직해 어느덧 공무원으로 살아온 세월이 기자로 살아온 세월을 앞질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그때와 지금의 언론환경은 완전히 변화하였고 이제 종이신문은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됐다.
오늘 인터뷰한 곳도 밀레니엄실험실이라는, 중앙일보에서 온라인 전용 콘텐츠를 만드는 팀이었다.
내가 공무원으로 이직한 이유 중 하나가 기자의 워라밸이 똥망이어서 였는데, 요즘 기자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그땐 편집국 시스템이 종이신문 스케줄대로 맞춰서 돌아가다보니 휴일이고 공휴일이고 다 나와 신문을 만들어야 했는데ㅋㅋ
온라인 시대, 온라인 전용 콘텐츠를 만드는 기자들은 굳이 주말에 나올 필요가 없어졌다.
중앙일보 사옥. 간지 폭발. 그런데 왜 이름이 안써있는거죠;; 중앙일보라고 크게 써놔야 찾기 쉬운데 주변을 맴맴돌다 휴대폰을 켜 길찾기 보고 겨우 찾음.
요 스튜디오에서 동영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벌써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대충은 요렇다.
-좋은 직업인 공무원을 그만 둔 이유
육아휴직 후 복귀하니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와는 다르게 이곳도 육아휴직에 대한 불이익, 비정규직 차별이 난무했다. 내 원래 업무와 다른 엉뚱한 자리에 복귀시키고, 근무평가를 조작하는 등 괴롭힘이 지속됐다. 이전 기관장이 뽑은 별정직 직원을 내보내고 싶으나 짜를 방법은 없고. 옳고 그름보다 기관장의 생각대로가 먼저인 현실 앞에 상식도 기본도 모두 무시되고 있었다.
-공무원에 처음 지원한 이유
20대때는 직업을 선택할 때 적성과 관심사 위주로 결정을 했다. 그러나 30대가 되고 결혼, 출산, 육아를 겪어야 하는 입장이 되자 이 사회가 개인의 인생에서 굵직한 이벤트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공무원은 좀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직을 하게 됐다.
-지원했을 때와 그만뒀을 때 기분이나 감정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공무원은 좀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예상했던 대로 빗나갔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진 않았음) 겉으로는 국가 정책을 따르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뼛속까지 여러 제도들을 받아들인건 아니라 (각종 제도를) 쓸 수는 있지만 환영받지 못하고 불이익을 당하는건 똑같았다. 사기업에선 그나마 쓸 수도 없는 곳도 있는데 쓸 수는 있으니까 좀 낫긴 한건가. 여긴 좀 나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은 여기도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절망감으로 바뀌었다.
-공무원에 대한 환상이 있다고 보는지
사기업보다 안정적이고 상식적일 거라는, 그나마 나은 직장일 거이라는 환상. 그러나 공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상명하복의 분위기 속에 불합리한 일을 관행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의 구조상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보는지
윗선에 집중된 권력. 윗선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하고 윗사람의 부당한 지시도 따를 수 밖에 없는 현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왜 그런것 같은지
실제로 여기 계속 있다가는 도태될 것 같다며 사표를 낸 직원이 있었다. 대충 안정된,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 아닌, 진취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직장은 아닌 것 같다.
-더 좋은 근무환경을 위해 필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공정, 상식과 같은 기본만 지켜져도 지금보단 훨씬 나아질 것. 제도를 아무리 만든들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슨 소용. 사람이 변해야지.
대충 이렇게 간단한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돌아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다.
이 조각들을 모아모아 하나의 기사로 엮어야 하는 기자는 기사를 내놓을때까지 연구와 고민을 지속하겠지. 부담되고 힘든 과정이지만 매일 묵묵히 그걸 해내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그 보람은 온전히 자기만의 것이 된다. 인생에 어떻게든 피가되고 살이 될 소중한 경험이 되어줄 것이다.
이젠 독자의 입장에서 읽기만 해도 되는 홀가분함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 온 날이다 ㅎ
완성된 기사는 https://news.v.daum.net/v/20211212090108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