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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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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Jun 30. 2024

딜레마



아침에 베개에서 머리를 드는데 뚝하는 소리가 났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가 반 뼘쯤 빠졌다. 같은 증상으로 치료를 받은 지가 불과 얼마 전인데 지난번보다 좀 덜 빠진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이번엔 저번 정형외과 말고 다른 병원을 찾아갔다. (ㄱㄴㅇ) 의사가 시킨 대로 운동을 열심히 한 결과 이렇게 됐으니 당연하다.


체력이 수명을 다한 배터리처럼 한 번 충전으로 24시간을 버티지 못한 지 꽤 되었다. 하루에 한 가지 이상의 일을 처리한 날은 중간에 두세 번 정도 충전기에 몸을 뉘지 않으면 아예 방전 돼버리고 전원이 꺼지는 수순이 이어진다. 이러다 아예 보조배터리를 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헬스장으로 몸뚱이를 내몰았다. 그런데 결과가 뭐 이러나 말이다.


삶의 질을 올리고 싶어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도통 모르겠다.

운동을 계속할수록 팔과 다리가 퇴화 중이다.  어느새 병뚜껑 따는 것부터 바닥에 머리카락 한 올 줍는 것까지 큰 결심과 기합이 필요한 일이 돼버렸다.  이런 모든 일에 온몸의 근육이 쓰인다는 사실을 통증으로 실감하고 있다.  이러다 팔다리가 영영 흔적 기관으로 남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에 운동을 계속할 필요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든다.

 

운동을 안 하면 관절이 아프고 운동을 하면 근육이 아프다.

삶의 질을 손톱만큼 올리고 싶은 것이 나한테 그렇게 큰 욕심인 건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자발적 전기고문을 받으며 한탄을 하고 있으니 전류가 온몸을 관통하며 새삼 내 몸이 도체임을 저릿저릿 일깨워 주었다.

옆 침대에 누운 숙련된 환자는 고문 강도를 더 더 세게를 외치는 와중에 이 침대에 누운 초짜는 제발 살살을 사정하기 바빴다.


월요일이면 다시 일주일 상하체 번갈아 퇴보의 길에 오른다. 하루키는 근육의 고통으로 운동기능을 상실하는 아픔을 겪어본 게 분명하다. 나 역시 그의 자취를 따라 요즘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내일은 일단 먼저 팔을 잃을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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