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르소에게
뫼르소 씨, 이 편지가 당신에게 닿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거나 소용이 없게 된 이후 일 거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이 편지는 당신에게 어떤 도움이 될 자료로써 다루어지기보다 당신을 최후에 그런 곤경에 처하게 만든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전하는 사죄의 편지가 될 것입니다.
제가 우연히 당신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의사 리외를 찾아 수소문하게 된 것은 재판이 시작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재판이 사건의 본질을 벗어나서 일방적인 흐름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고 기자의 사명감일지, 인간적 양심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행동이든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리외는 오랑시에 창궐한 전염병으로 격리되어 있는 상태라 소식을 직접 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서신으로 사건을 알리고 한참 뒤, 어제서야 답신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정신분석학의 저명한 석학이라 하더라도 상대를 직접 만나보지 않고 글로 설명된 인물을 형상화하고 분석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을 테지만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었던 급박한 재판 상황은 본인이 잘 이해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일에 리외만큼 적임자가 없을 거라는 저의 확신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사실만을 이해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책임감 강한 의사이니까요. 리외가 보내온 정신 감정서를 함께 보내드립니다.
[*피고인 뫼르소의 정신감정서-이하 피고를 환자라 통칭한다.]
1. 환자는 사회성 발달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모가 언어장애가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어릴 적 부모와의 적절한 상호작용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대화에 서툴고 표정으로 감정을 유추하는데 익숙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언어를 통해 직접적으로 사회적 관습을 배우고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미성숙한 면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 환자는 감각적으로 매우 예민하다.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모든 면에서 감각적 민감도가 높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적인 활동 속에서도 남들보다 훨씬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되고 육체적 긴장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자주 잠에 빠져드는 증상을 보인다.
참고 : 1. 환자의 경우 특별히 빛에 아주 높은 민감성을 보인다.
참고 : 2.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이다.
3. 환자는 관찰력이 뛰어나고 그것을 묘사하고 상상하는 능력이 출중하다.
단, 이런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으며 쉽게 피로해지는 특성상 관심사 외의 분야는 대게 귀찮아하며 대충 처리해 버리는 이중적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참고 :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이다.
4. 환자는 특이한 행동 기제를 갖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면 행동으로 옮긴다.’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는 즉흥적인 행동을 유발하며 인간관계에서 (이해타산을 따지는) 일반적인 사회적 기대 행동을 벗어나는 경우로 이어져 사회적 오해를 살 소지가 있어 보인다.
5. 환자는 몇 가지 강박행동을 보인다.
가장 두드러지는 강박행동으로는 정확한 사실만을 말하는 습관이다. 이는 논리의 범주를 벗어나는 감정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사회적 언어 사용으로 오해를 살 여지가 있으며 특히, 고도의 사회적 기술인 거짓말을 구사하는데 원천적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 :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이다.
**최종 소견**
피고는 어릴 적 환경의 영향으로 감정처리에 미숙함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사회적 지각이나 이해도가 부족하지 않아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해내는데 부족할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피고의 몇몇 행동 특징들은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피고도 같은 경우라고 생각된다.
본인 리외는 정신의학 전문의로서 피고 뫼르소가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다고 판단되며 이를 감정한다.
너무 늦어버린 이 감정서를 기사화할지를 한참 고민을 했습니다. 이미 재판이 끝나버린 상황에서 이 글이 티끌만 한 반향이라도 일으킬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희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몸소 재판 과정을 겪어냈으니 잘 아시겠지요. 법적 판결의 오류는 되돌릴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적 판결로 한번 매장당한 사람에게는 일말의 자비도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감정서를 공개한다는 것은 당신을 다시 한번 세상에 끄집어내어 난도질하는 것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현실적 고려에서 기사화하기를 포기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뫼르소 씨, 저는 당신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근원적 공포를 보았다고 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사피엔스의 후예들입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류입니다. 다른 종을 배척하고 다른 사회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믿는 유전자 정보를 가진 종입니다. 돌연변이는 이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적이겠지요.
우리는 사회를 구성하며 이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사회에게 합법적으로 돌연변이를 색출할 임무와 권리를 주었습니다. 우리와 다른 ‘그들’은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요소들이니까요.
이 사회의 안전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누군가와 끊임없이 서로를 향한 증명을 해 보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만약 증명의 방식이 보편적이지 않다면 분명 상대방의 경계를 사게 되겠죠. 한 번 ‘다른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보통 사람’이라는 걸 보여야 합니다.
뫼르소 씨, 이 사회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본능에 충실한 당신은 이 사회에 낯선 사람입니다. 더 많은 사회적 성취를 이루려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당신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심지어 ‘다른 사람’이라는 평가가 내려질지도 모르는 위험한 사람과도 우정을 나눌 수 있다고 믿는 당신은 역시, 위험한 사람입니다.
이 사회는 위험요소를 제거해 온 역사로 점철돼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재판도 불행하게 끝이 난 것이겠지요.
당신에게 죄가 있다면 자신에게 닥친 불행 앞에서 스스로를 위한 변호를 더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칼날을 들고 덤벼드는 삶에 무책임했던 직무유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뫼르소 씨, 공표될 당신의 죄명은 무엇일까요? 무자비한 살인죄일까요? 모친의 장례식에서 눈물 흘리지 않은 정신이상자일까요? 리외의 말대로 자폐스펙트럼이 있다면 그걸 장애라 칭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요?
그런 것은 본질을 가리는 것 일 겁니다. 이 사회가 당신에게 붙인 죄명은 ‘이인’입니다. 거기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수많은 ‘보통 사람’을 대신해 이렇게 당신께 사죄의 편지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