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타루, 시대의 아픔을 시어로 성찰하는 사회운동가”
Q : 먼저 신작 출간을 축하드린다.
A : 감사하다.
Q : 시인이기 전에 사회운동가로 오랫동안 활동을 했다.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A : 아버지가 차장 검사였다. 성품이 정직하고 호인이셨다. 내가 열일곱 살 때, 아버지의 재판을 방청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봤던 죄인의 모습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피고인석에 앉은 빨간 머리에 키가 작은 그 남자는 용의자라는 거창한 수식어에 걸맞지 않게 내 눈에 한갓 겁에 질린 올빼미에 불과해 보였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사회의 이름으로 그 남자의 죽음을 요구하는 모습에서 더 이상 내가 알던 다정한 인간의 면모를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불행한 그 남자에게서 엄청난 친밀감을 느꼈다.
Q :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땠나?
A : 그 일이 있고 일 년 정도 집에 더 머물렀다. 마음이 병든 상태였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가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며 자명종을 가져오라고 하더라. 아버지가 아침 일찍 일어나는 날은 형 집행에 참석하는 날이다. 아버지가 살인 현장에 지금껏 여러 차례 입회해 왔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 밤 집을 나왔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원한은 없고, 단지 마음속에 약간의 슬픔이 남아 있다.
Q : 어릴 적 법정에서 강렬한 경험 때문인지 이후 주로 사법체제에 문제를 제기하고 행동하는 정치활동을 해왔다.
A : 그렇다. 열여덟 살에 집을 나와 먹고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관심을 끈 것은 사형선고에 관한 것이었다. 뜻이 맞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오랫동안 그들과 함께했다. 유럽에 있는 국가 중 내가 투쟁에 참여하지 않은 나라는 하나도 없을 정도이다.
Q : 말씀한 ‘자신이 페스트 환자라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라’는 현대사회운동가들에게 필수불가결한 명문이다. 자신에게 있어 페스트란 무엇인가?
A : 내게 페스트는 그날의 법정이다. 사람들이 살아 있는 한 사람을 죽이려 하는 현장, 아버지의 입에서 우글거리는 말들이 뱀처럼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던 그곳이 우리 사회의 페스트를 처음으로 목도한 장소였다.
그날 나 역시 항상 페스트 환자였다는 사실을 동시에 깨달았다. 간접적으로나마 수천 명의 죽음에 동의했다는 것, 죽음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행위나 원칙을 선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죽음을 부추기기까지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은 최소한 나라도 그 구역질나는 도살 행위를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정당화하는 것은 단연코 거부하겠다고 결심했다.
Q : 사회정의에 눈감는 행위, 인간으로서 양심과 신념을 잃는 행위를 페스트라고 규정하는 걸로 해석이 된다.
A :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내게 있어 붉은 머리 올빼미 남자 문제는 평생에 걸친 화두였다. 그 사건을 해결하고 싶은 의지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법복을 입은 거물급 페스트 환자부터 군소 페스트 환자까지 사회 곳곳에 페스트가 창궐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삼킬 수 없는 것을 삼키게 만들려고 온갖 이유를 내세운다. 하지만 한번 양보하기 시작하면 끝없이 양보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목이 멜 정도로 괴로웠고 외로웠다.
Q : 인간으로서 굳건한 양심과 신념이 사회행동가로 이끈 것인가?
A : 오히려 반대이다. 나는 오랫동안 부끄러워했다. 우리 모두가 페스트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 자신조차 변하지 않는 것에 계속 부끄러웠다. 그러다 어느 날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면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평화를 기대하거나 못해도 떳떳한 죽음을 기대할 수는 있다.
Q : 사회적으로 높은 감수성과 민감한 양심이 자연스레 시인의 길로 이끈 듯 보인다.
A : 인간의 모든 불행은 정확한 언어를 쓰지 않은 데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올바른 길을 걷기 위해 정확하게 말하고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사회적 예민함을 표현하는데 시라는 도구가 가장 적절했다.
Q : 작품 이야기를 해보자. 이번 신작의 주제가 무엇인가?
A : ‘신이 없어도 사람이 성자가 될 수 있는가’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면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다. 그건 엄청나게 피곤한 일이다. 그렇지만 평화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힘든 길을 걸어야만 한다. 그건 성자의 길과 다르지 않다.
Q : 주제에서 인간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삶에의 무거운 책임감이 읽힌다. 마지막으로 이번 시집의 대표작을 낭송 부탁드린다.
A :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Q : 시간을 내 인터뷰에 응해 준데 감사드린다. 이것으로 시대의 아픔을 성찰하는 시인이자 사회운동가인 장 타루와의 대담을 마친다.
A :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