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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스탄트 Jan 27. 2024

쓰기의 감각은 타고난 것일까?

습관을 만들어야 하는 걸까?

나는 말한다. 일단 책상 앞에 앉으라고.  당신은 매일 거의 똑같은 시간에 책상에 앉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당신의 무의식을 창조적으로 작동하도록 길들이는 방법이다. 그러니까 당신은 매일 아침 아홉 시라든가, 매일 밤 열 시에 책상 앞에 앉으면 된다. 타자기에 종이 한 장을 넣든가, 컴퓨터를 켜고 빈 문서를 연 다음, 한 시간가량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약간 안절부절못하다가, 나중에는 덩치 큰 자폐아처럼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천장을 보고 시계를 보다가 하품을 하고는 다시 종이나 화면을 응시하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얹고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조금씩 붙잡게 될 것이다. 장면이라든가, 장소, 인물, 다른 무엇에 관한 이미지이든 괜찮다. 당신은 그 장면이나 인물이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다른 목소리들 속에서 또렷이 분간되어 들릴 수 있도록 마음을 고요하게 진정시키려 애쓸 것이다. 다른 목소리들은 이제 옆집 개가 짖는 소리처럼 무의미해진다. 그것은 걱정과 비판과 심판, 죄책감 같은 목소리들이다. 또한 혹독한 우울증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지금 당장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목록을 적어 완벽하게 행동하기를 촉구하는 목소리일 수도 있다. 지금 당장 냉장고에서 꺼내 두어야 할 음식들, 지금 취소해야 하거나 전화해서 정해야 하는 약속들, 겨드랑이 털을 제거해야 한다든가.... 그러나 당신은 상상의 총을 들어 당신 머리에 대고는 스스로를 책상에 앉아 있도록 위협해야 한다. 목에 희미한 통증이 느껴질 것이다. 뇌막염에 걸린 것 같은 생각이 들것이다. 그런 때 벨이 울리면 성난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고는, 온갖 신성한 의무를 생각해 낸 다음, 예의 바르게 전화를 받은 후 약간 화가 난 듯한 기미를 내비치는 것이다. 전화 건 사람은 일하는 중인지 물어볼 것이고, 당신은 그렇다고 대답하면 된다. 정말 그러니까.


이 모든 방해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글쓰기를 위해 머릿속을 말끔히 비우고, 다른 것들은 모두 잡초 베듯이 베어 버린 다음, 문장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구슬을 꿰듯이 단어들을 한 줄에 엮기 시작하는 것이다. 당신은 필사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교화하거나 즐겁게 해 주고, 격조나 기쁨이나 초월의 순간을 담아내고, 실제 사건이나 상상한 사건을 생생하게 그려 내려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당신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그건 인내와 믿음과 고된 작업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당신은 오로지 계속 전진하고 늘 새로 시작해야만 한다.


-중략-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의 일과를 행하고, 한 가지 일에서 그다음 일로 일상을 계속 이어 가다가, 마침내 아홉 시가 되면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당신이 어제 써둔 페이지들을 멍한 눈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네 번째 페이지에는 모든 종류의 인생 이야기들과 냄새들, 소리들, 음성들, 색깔들, 심지어 대화의 순간들까지 다 담긴 단락이 있어서, 당신은 혼자서 아주 부드럽게 그것을 음미해 본다. 꽤 흡족한 면도 없지 않다. 다시 한번 고개를 들고 창밖을 응시하지만, 이번에는 여유롭게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고 있다.


'앤 라모트' 작가는 마치 내가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들을 샅샅이 지켜본 후 써 내려간 것같이 섬세하게 묘사를 했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너무 웃음이 나와 나도 모르게 웃음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나는 새벽이면 상상의 총을 들어 알람이 울리고 있는 핸드폰을 명중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억지로라도 일찍 일어나서 텅 빈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고 있던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 어떤 날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느릿느릿 이빨을 닦고 물을 한 컵 마시고 커서가 깜박이는 노트북을 마냥 쳐다봤다. 시간은 야속하게 흐르고 나의 의식은 희미하게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쓸 수 없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 무의식의 나날들이 지금도 여전하다. 플롯을 짜고 시놉을 쓰고 캐릭터 설정하는 것을 여전히 하고 있다. 벌써 석 달이 지나고 있다.

왜 진전이 없는지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의식을 일깨우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됐던 '앤 라모트' 같은 글로 먹고사는 작가도 저렇게 창작의 고통을 느끼고 일상을 살고 있는데 내가 느끼는 고통은 뭐라도 될까. 그래도 이런 창작의 고통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뭔가를 쓰고 싶고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나에게 격려를 보낸다. 아직 공모전이니 단행본 투고니 엄두도 못 내고 있지만 조만간 나에게도 계약 하자는 건의가 올 거라 굳게 믿는다. 사람들에게 재미와 희망을 주는 또는 영감을 주는 뭐라도 작게나마 줄 수 있는 글을 쓸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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