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콘스탄트 Sep 11. 2024

멸망한대도 사랑하겠어!

12화

2029년 4월 20일 폐허가 된 도시를 보며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었다. 

소행성 트로이의 잔재들이 전 지구를 유영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답을 찾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수수 떨어지는 운석이나 별똥별은 많았다. 그러나 지구의 기류를 타고 타깃을 하듯 떨어진다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같은 시간 양평의 아침은 떠들썩했다. 맨 처음 눈을 뜬 사람은 손민수였다. 

그는 아무도 깨지 않게 조용히 문을 열고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살렸다. 

그리고 텃밭에서 싱싱한 채소를 수확했다. 

어른아이 모두 좋아할 바질 토마토 토티아 피자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아궁이와 연결된 화덕에서 피자가 노릇하게 구워지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는지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술래잡기를 하는지 아침부터 마당을 뛰어다녔고 어른들은 모닝커피를 마셨다. 

여전히 세상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승미야, 너 정말 음악 그만둘 거야?” 


연수는 그녀의 경력이 너무 아쉬워 진심으로 걱정했다. 그녀는 한때 해외 공연으로 연중 스케줄이 꽉 찬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연수와 승미는 같은 에이젼시에 있으면서 협업으로 해외공연도 많이 했었다. 


“어, 난 살림하는 게 잘 맞는 거 같아. 집에서 우리 아이들 가르치고 취미로 하는 정도로 만족하고 싶어. 

전문적인 음악의 길로 가는 너를 응원할게!”


승미는 커피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난 양평이 좋아. 민수 씨랑 함께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해. 연수야 우리 아이들 생기고 얼마나 힘들었니? 

생각나? 공연 잡히면 또 떨어져 있어야 하고. 내 커리어 때문에 집안일도 엉망이었잖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게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같아. ”


승미는 연수의 손을 잡았다. 


“우리 너무 경쟁하며 치열하게 살았잖아. 너처럼 교수도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때 연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네, 제가 김연수입니다.” 


연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연수야,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승미는 연수 앞으로 더 바짝 다가가 앉았다. 전화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연수의 두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연수야, 무슨 일이야?” 


“승미야, 해성 아빠가…그러니까. 아. 어떡해.” 


구원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핵심인물로 미국 경찰에 구속기소 됐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여보, 연수가 지금 운전하기 힘들어서 당신이 같이 서울까지 가야 할 것 같아.”


“걱정 마요. 내가 잘 모셔드리고 올게요.” 


*


양평에서의 1박 2일은 해성에게 엄청난 사건과도 같았다. 

즐거웠던 기억보다는 아빠의 구속으로 받은 충격이 더 강열했기 때문이다. 


“그날 소행성이 폭발했고, 저희 아버지는 그 폭발을 막으려 했었죠.”


해성은 씁쓸하게 말했다. 면회 때 봤던 구원의 병약한 모습이 생각나 목이 메었다. 


“아버님은 어떠셔?” 승미는 걱정스레 물었다. 


“아프세요. 오늘도 오전에 잠시 면회 다녀왔는데…” 해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 


승미는 해성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런 해성의 모습을 보는 우주는 당장이라도 그 가냘픈 어깨를 감싸주고 싶었다. 다른 가족들도 해성의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될 때까지 함께 아무 말 없이 있어줬다. 


“너무 편안했나 봐요. 주책맞게.” 해성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눈물을 닦았다. 


“아빠 걱정하는 마음인데 주책이라니, 괜찮아.” 승미는 해성의 등을 톡톡 두드려 주었다.


“그럼, 그 ‘러브 칵테일’이 어떻게…”


“조사를 하면서 우리들의 환경조건에 특이 사항이 있었다는 걸 발견했어요. 소행성의 파편이 떨어지던 그 밤 우리들에게만 존재했던 특별함.”


우주의 설명은 이랬다. 미국에서 조사했던 트로이 파편에는 수용성, 지용성 화학 성분이 있었고 그 물질들은 공기와 물을 통해 인체에 빠르게 흡수되었다는 것이다. 

지구상에 이미 있었던 유해 화학물질처럼 인간의 체내로 들어가 간을 손상시키고 인체의 여러 장기들을 녹이기도 했으며 결국 이런 합성 화학 물질들은 뇌에 특이한 도파민들을 강화시키게 된 것이었다.  


“여러 매체에도 이미 나왔던 여러 가설들이 있었는데 당시 저의 가설이 가장 유력한 명제로 인정받았죠. 결국 최초의 탄생 우주에서부터 어떤 명령을 받고 지구로 날아왔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들과 제가 어떤 연관이 있는 거죠?” 의문이 가득한 해성이 말했다.


“저희 부모님 인체에는 러브칵테일이라는 호르몬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고 있으시죠. 이 사실이 세계에 알려지면 우리 부모님은 실험실의 쥐가 될 거예요. 그래서 남동생이 지금껏 보디가드처럼 지키고 있었고요.”


“어. 맞아. 내가 보디가 드지. 그리고 집에서 게임 스토리를 만들고 게임도 만들고 있어요. 백수 아냐. 누나. 나름 여기서 역할이 크다니까.” 


우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와아. 게임을 만드는구나.” 해성은 우진을 쳐다보며 엄지 척을 했다. 


“아마도 해성 씨의 어머님도 남다른 모성애가 있으실 거예요. 물론 아버님에 대한 사랑도 여전하실 거고요. 그날 찜질방에 있었던 7명 모두의 뇌에는 아마도 러브칵테일이 있을 확률이 높아요.” 

우주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엄마가 우리를 자주 보러 오시고 아빠 면회도 자주 가셨구나.’


“맞아요. 저희 엄마의 남다른 애정을 특이하다. 남들과는 다르다. 생각했었어요.”


“해성 씨, 이 자료를 한번 보세요.” 우주는 아이패드의 자료를 보여줬다. 

 

황토흙에 대해 조사한 결과와 실제 황토 찜질방에 누워있는 일곱 명의 사람들과 화학 물질의 보존에 관한 내용이었다. 황토 찜질방이 마치 방어돔처럼 과거 우리들을 지켜줄 수 있었던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내용이었다. 


해성은 그의 자료를 넘기다 부모님의 뇌파 사진과 화학물질 그래프를 보고 너무 놀랐다. 

얼마 전 해성의 뇌 화학물질과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아, 러브 칵테일.”


해성은 너무 혼란스러웠다. 

우주의 행동이 그리고 그를 보면 가슴이 뛰던 해성의 모습까지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끓는 물의 개구리로 있다 보면 모든 생명과 인류는 지구에서 자연 소멸 될 겁니다. 미지의 외계 생명체는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지구를 정복하기로 계획한 거죠. 그런데 그 결과값에서 몇 가지 오류가 발생한 거예요. 저희처럼.”


우주는 손민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러브 칵테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뿐인가요?” 


“아뇨, 전 세계적으로 몇 가구가 더 남아 있어요. 공통점은 각 나라의 오지에서 자급자족 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랑 가끔 게임도 해요.” 우진이 끼어들며 말했다.


우주가 데이터를 만들었고 우진이 그들에게 접근하여 친해진 후 몇 가구에서 부부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해성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해성은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을 하게 되면 그 물질로 백신을 만들 수 있어요.”  우주는 말하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을까요? 전 세계적으로 싱글 라이프는 문화가 됐고 이성에 대해 관심이 없는걸요.” 해성이 말했다. 


“제가 두 분의 유튜브를 만들게요. ‘러브칵테일 만들기 1일 차’부터 이태리 장인 정신으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게.” 우진은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해성아, 당황스럽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거 알아. 우리도 처음에 우주의 말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어. 그런데 온 세상이 변했는걸. 우리만 빼고.” 승미가 말했다. 


“동, 식물이 사라지고 결국 인류가 사라진다면 우리에게 다음은 없는 거야. 이 우주에서 인류가 사라진다 해도 아무도 알 수 없거든.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하지?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해봐야지.” 민수가 말했다. 


“그래요, 할 수 있는 건 해봐야죠. 아빠, 나도 장가가고 싶어!” 우진이 말했다. 


“우리 우진이 짝도 빨리 찾아야지!” 민수가 웃으며 말했다. 


“해성 씨와 제가 먼저 노출되는 건 위험할 수 있어서 우선 저희 부모님의 뇌 화학 물질을 추출해서 백신을 만들어요. 그걸 미리 퍼트려야 사람들이 어느 정도 받아들일 겁니다.”  


*


석건우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내내 업무 책상에서 일을 했고 혼자 잠을 잤다. 

L에게 딱히 어떤 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픈 그녀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기장의 착륙 안내 멘트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올 즘 L은 모든 짐을 정리하고 석건우를 살펴본 후 자리에 앉아 벨트를 맺다. 


공항을 빠져나오니 석건우의 수행비서가 마중 나왔다. 


“부회장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그는 L에게서 짐을 챙겨 트렁크에 넣었다. 


박실장이 뒷자리 문을 열자 석건우는 올라타고 문을 닫았다. 창문을 살짝 내린 후 당황해하는 L에게 말했다. 


“오늘은 집으로 가. 수고했어.” L의 대답도 듣지 않고 창문을 닫았다. 


밖에 서 있는 박실장이 L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부회장님 피곤해 보이시네.” 


“아무 일 없었어요. 안녕히 가세요. 회사에서 뵙겠습니다.” L은 힘없이 말했다. 


*


나성대는 사무실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전화를 기다리는 듯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었다.  


“어, 노팀장, 뭐 좀 알아냈어?” 전화벨이 울리기 무섭게 응답했다.


다급하게 핸드폰을 잡은 나성대는 귀를 쫑긋 세우며 말했다. 


“어, 그래? 어? 그럼 녹음 파일 보내.” 


뭔지 미심쩍은 구해성에게 탐정을 붙였던 나성대는 오늘 하루 종일 해성이 했던 일을 보고 받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큰 것을 건졌다는 듯 신이 나있었다. 


‘파일 업로드 완료.’ 


나성대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빠르게 넘기며 듣고 있었다. 


“어! 그랬구나! 이거 완전 특종인데.” 


나성대는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


해성은 들고 온 의료 장비로 우주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의 혈액을 뽑아 샘플링을 했다.  


“혈액에서 추출하고 러브 칵테일 재료들만 모으는데 시간이 좀 필요해요 아마 5시간은 넘을 것 같아요.” 


해성이 보냉함에 혈액을 넣으며 말했다. 


“내일 출근하면 할 수 없을 테니 지금 갈까요? 괜찮겠어요?” 해성이 우주를 보며 말했다. 


“그렇죠. 전 괜찮아요. 해성 씨랑 함께 할 수 있다면 같이 가야죠.” 우주는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그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보인 해성은 서둘러 떠날 준비를 했다. 


“우주야, 진짜 괜찮은 거니?” 승미는 걱정스레 물었다. 


“네, 괜찮아요. 해성 씨는 언제든 실험실을 쓸 수 있어서 낮보다는 밤이 좋을 것 같아요. 그렇죠? 구박사님?” 


우주가 웃으며 해성을 바라봤다. 


“네, 걱정 마세요. 끝나면 전화드릴게요.” 해성이 다정하게 말했다. 


해성은 우주 식구들을 보며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우주와 해성은 그들의 실험실로 향했다. 


이전 11화 멸망한대도 사랑하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