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아름다운 요가원의 원장, 수
24살의 마지막 날, 요가원에 처음 방문했다. 미리 전화를 하긴 했지만 떨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요가원은 대학교 앞, 안경점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학교를 4년 다니는 동안 그곳에 요가원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안경점의 뒷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요가원의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수가 있었다. 요가원의 사장님이자, 선생님인 그가 나에게 건넨 첫 마디는 이랬다.
"밥은 잘 먹고 다녀요?"
나는 '살인의 추억' 속 박해일은 아니지만 괜히 뜨끔했다. 나의 식습관은 아주 시원찮은 상태였었기 때문이다.다. 그 해에만 5kg은 족히 빠졌다. 여러 일로 맘고생을 겪던 터라, 내 입으로 음식이 들어가는지 눈물이 들어가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 내 몸은 겉으로 보기에도 매우 볼품없어 보였을 것이다.
"아,,음,, 잘 모르겠어요."
대충 얼버무리고 수가 안내하는 대로 요가 매트 위에 앉았다. 거기에는 나 말고도 3-4명의 사람들이 앉아 몸을 풀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 꾸준히 운동한 경험이 없던 나는 이런 분위기가 조금은 낯설었지만 수의 지도에 따라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의 말이 너무 빨라서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었다. 두 손으로 양 발목을 잡고 꼬리뼈를 위로? 어깨를 바닥에 붙이고? 날개뼈를 뒤로 뽑아? 누가 요가를 정적인 운동이라고 했나. 내 몸 하나 겨우 뉘일 수 있는 작은 요가 매트 안에서 나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정신없이 몸을 움직였다. 몸을 사정없이 굴리는 동안, 잠시 내 한심스러운 일상 속에서 벗어나 몸의 움직임에 꽤나 집중할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 기진맥진한채 어쩔줄 몰라하는 나에게 수는 따뜻한 보이차를 내려주었다.
수는 정말 실력 있는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모든 몸의 마디마디를 살아숨쉬듯 느낄 수 있는 사람 같았다. '발'이라는 신체에서도 발가락과 발마루와 발꿈치, 아킬레스건 등을 구분해 감각할 줄 알았다. 그리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몸에 대해 자신이 아는 그 디테일들을 세세하게 설명해내는데 매번 성공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몸으로 느끼는 데에는 종종 실패했다. 그래도 그녀가 말한 감각의 묘사를 듣고 발꼬락을 까딱까딱 거리며 없는 감각이라도 느끼는 척 했다.
수는 몸의 감각 만큼이나 몸에 대한 이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는 요가를 하면 힘이 세질 것이라고 믿었다. 힘이 짱 쎈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수는 무조건 힘만 쓰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숨이라고 했다. 숨을 잘 쉬는 건 모든 것의 기본이고, 그것을 잘 해야만 그 다음을 해낼 수 있다고 했다. '숨 쉬는 것? 그냥 하면 되는 거잖아! '하고 숨을 쉬어 봤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숨 하나 쉬는 게 이리도 어려울 줄이야. 숨은 쉬는 것은 힘을 쓰는 것처럼 무언가를 꽉 쥐어서도 안되고 힘을 탁 빼서도 안되었다. 급하게 해서도 안된다. 몸통에 힘을 주지도, 풀지도 않은 채로 뱉을 수 있는 숨을 최대한 길게, 가능한 오래 쉬어야 했다. 요가에서는 몸을 쓰는 것도, 마음을 쓰는 것도 아닌, 숨 쉬기가 가장 먼저라고 수는 말했다. 살아있음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배우는 연습 같았다.
학생들에게 건네는 무심한 듯 자상한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들에 대한 정성이 느껴졌다. 학생들의 몸을 세심하게 살폈고, 그들의 입장에서 지금 불편한 부위가 어디인지 열심히 물었고 왜 그 곳이 불편한 지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라고 말하지 않아도 다 나 잘되라고 하는 말임을 그냥 느낄 수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다 있는 앞에서 나를 할머니 허리라고 놀려도, 밥을 왜 안먹냐고, 너는 불평할 자격도 없다고 호통쳐도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녀의 말은 왠지 따땃했다. 그녀의 애정어린 불호령을 들으러 매월 수련비를 내고 요가원에 다녔다.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는 토요일, 약간의 늦잠을 자고 요가원으로 향한다. 안경점 계단을 올라 요가원에 가면 수는 커다란 창문 두 개가 나있는 벽면 구석 모퉁이에 앉은 채, 환한 얼굴로 '안녀엉'이라고 말한다. 평일의 치열한 일상을 마치고 무사히 요가원에 온 우리에게 수는 맛있는 커피를 내려준다. 커피콩을 신중히 골라 정확한 양을 맞추어 커피를 갈고, 필터를 곱게 접어 끼운 드리퍼에 뜨거운 물이 담긴 포트를 야무지게 쥔 채 빙글빙글 돌려가며 커피를 내린다. 수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은 일정하게 아름답다. 그 모습 만큼이나 수의 커피는 정말이지 맛있다. 커피에서 이렇게 다양한 향과 맛이 날 수 있다는 걸 수의 커피를 마시며 처음 알았다.
수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서로 나눈다. 거기에는 웃긴 이야기도 있고, 약간 슬픈 이야기도 있다. 대부분은 고민들. 각자의 삶에서 부딪히는 고민들을 그 곳에서 털어놓는다. 수는 우리가 뱉은 두서 없는 말들을 꼭꼭 주워 담아 듣고는 우리에게 필요한 말을 건네준다. 그 무거운 고민들은 왠지 수의 말을 지나면 별 게 아닌 게 되어버린다. 수가 해 준 많은 말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있다.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돼. 그걸 그냥 하면 돼. 하면 돼. 하기로 했으니까, 한 번 해보는 거야." 그렇게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일들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이즈로 바꾸어 버리는 수의 말은 그녀가 내려준 커피만큼이나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몸이든 마음이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는 구나! 왠지 용기가 생긴다.
그렇게 얻은 용기로 몸의 수련을 이어간다. 요추 3번은 앞으로, 날개뼈는 뒤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숨과 힘을 써본다. 신기하게도 요가를 할수록 나는 조금씩, 더 많이, 더 오래 힘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나는 당당하게 "요가해요!"라고 말한 후, 요가를 향한 나의 마음을 있는 힘껏 표현한다. 요가가 얼마나 좋은지. 어떻게 나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었는 지에 대해 찬양을 퍼붓는다. '첨엔 이렇게까지 요가에 진심은 아니었는데..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들었지?' 곰곰히 생각하다보면 떠오르는 한 사람.
수가 있는 요가원에서 오래오래 배우고 싶다. 그녀가 내려주는 커피가 너무너무너무 맛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