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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 the Deer Mar 23. 2024

기분이 좋지 않은 토요일 오후

wiggle your big toe

토요일 오후 아내가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고, 베란다 창문 밖을 내다 보고 있다. 밖에 나갈까말까 고민될 정도로 햇살이 적당히 비치고 있는 거실 탁자에 앉아있다. 평일에 꿈꾸던 바로 그 여유, 그 모먼트였다. 


그런데 나는 왜 지금 기분이 안 좋은가?



일단 몸 컨디션이 좋지 않다. 교통사고로 손목은 계속 아프고, 다른 바쁜 중년들처럼 치료를 받거나 케어 받을 시간이 없다. 통증이 있는데도 마땅히 해결할 시간이 없는게 아쉽다. 게다가 이석증까지 생겼다. 한쪽 발에 체중을 옮기며 걸을때 마다 머리가 지잉하고 어지럽고, 원래 속도로 걸을 수가 없다. 의사선생님은 운전하지 말라고 했다. 주말 오후 야외로 나갈 수 없는게 아쉽다. 아픈거야 어쩔수 없지만, 이런 상황이 짜증을 불러오고 있다. 


마치 거실에 강아지가 배변패드에 응가 했는데, 당장 치울 수가 없어서 괴로워하는 상태라고나 할까? 



직장 때문에 스트레스와 짜증이 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할많하않.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계속 끌어안고 가는 느낌이다. (갑자기 이부분을 생각하니 머리가 어지럽다) 해결을 해야 하는데 아직은 해결을 못하는 이유가 많다. 회사의 사정, 나의 사정, 우리 모두의 사정. 하하하. 옳고 그름과 득실이 갑자기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며 올라온다. 생각의 소용돌이가 마치 비발디 여름의 프레스토 부분같다고나 할까? (사실 지금 듣는 중이다. 제목을 몰라서 유튜브에 제목을 검색해 보았다.) 어지럽다. 그만 생각해야겠다.


마치 내가 거실에 누워있는데,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강아지가 무단으로 응가를 했고, 내가 당장 치울 수가 없어서 고통스러워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냄새가 직방으로 콧 속 깊숙히 파고들고, 강아지는 나 몰라라 거실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때. 실로 고통스럽다. 하지만, 아이들때문에 강아지는 응징은 할 수 없는 상태. 그래, 바로 그 상태다.



비발디 가을의 알레그로로 음악이 바뀌었다. 


음악이 바뀌어서인지, 아니면 글로 나의 감정을 표현해서인지 모르지만, 아까보다 기분이 나아졌다. 언젠가 목사님 설교에서 'let go'라는 표현을 들은 적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복수에 대해서 품지 말고, 놓아주라는 것이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고, 멱살을 놓아줄때 내가 자유케 된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let go.)


나도 나의 문제들을 잠시 놓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 1, 2를 지금 고민한다고 해서 당장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지금 내가 인상 5분 더 쓰고 앉아있는다고 해서, 문제들이 어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라고 말하며 스스로 풀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자명한 말이지만, 지금 내가 그러고 앉아있다. 하하하. '문제가 풀리기 전까지 기분이 좋지 않을테야'라는 메세지를 사방에 풍기면서. ㅎㅎㅎ 생각할수록 더 유치하다.


오히려 지금 당장 가족들과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안방에, 첫째와 둘째는 애들 방에 있다.  내 탓이다. 아빠가 우두커니 인상쓰며 컴퓨터에 앉아있으니 각자 살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래, 나는 지금 시간을 놓치고 있다. 평일에 이 시간을 그토록 목말라 했는데, 막상 이 시간을 과거에 매여 괴로워하고 있다. 이런.. 


그래, 내가 움직여야겠다.  


옛날 영화 킬빌에 보면, 혼수상태인 주인공이 병실에 누워 이렇게 말하는 부분이 있다.

'wiggle your big toe'

그리고 스토리는 진행된다. 아주 재미있게 말이다. 


내가 지금 wiggle your big toe해야할 것 같다.




'Wiggle your big t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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