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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 the Deer May 16. 2024

진짜로 하게 된 13번째 이직

마음의 선택

Intro.


최근 이직을 준비 중에 있다.


이직을 실행해 옮기기까지...정말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우여곡절이 있었다'라고 하기엔 과정이 수동적으로 보여서 '망설임'으로 표현했다. 사실 결정은 내가 하는 거니까.)


1. 이직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


앞서 쓴 글에 고민과 고통이 드러나겠지만, 그런 와중에도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40대 중반.. 이 나이에 무슨 이직이냐..'

'헛된 꿈을 버려라. 어차피 어느 곳이건 똑같다. 그냥 받아들여라'

'이제 지쳤다. 그냥 다 그만두고, 당분간 쉬자' 등등


그중에 가장 나를 망설이게 했던 생각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나..'였다.


열 번도 넘게 한 이직인데, 이게 과연 또 될까 싶었고, 다람쥐 쳇바퀴처럼 새로운 회사에 이직하고 적응하고... 또, 퇴사하고, 이직하고 적응하고 퇴사하고의 반복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계속 머금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낙심이 되어있고, 그 마음은 차츰차츰 더 가라앉아 다음의 문장에 안착하곤 했다.


"단조롭고 따분하고... 너의 삶은 이미 틀렸다. 가망 없는 실패한 삶."


마음 안과 밖의 정황이 위의 문장에 동의가 될 때면 낙심을 넘어 땅속으로 꺼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무기력의 극치였다. 그런 모습을 가끔씩 마주하던 아내는 다 괜찮으니 쉬라고 했다. 그러나, 그 말도 편하지 않았다.


2. 이직 준비의 시작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가 쉬라고 얘기했을 때, 그 말에 폭 안기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었다. 그래도 나에겐 일말의 '책임'이라는 것이 존재했던 거였다. 삶에 대한 책임. 특히, 자녀들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과연 지금의 시간들을 나의 아이들에게 무어라 할 것인가. '아빠는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었단다. 세상은 더럽고 불공평한 곳이야'라고 할 것인가?


결코 그럴 없었다. 나의 아이들이 시도도 하지 않고, 세상을 두려워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삶은 어려울 수 있지만, 충분히 살만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메시지를 삶으로 보여주는 게 나는 가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일에 대해 마주하고, 최선을 다해보는 모습, 그러한 삶의 태도를 아빠로써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소중한 '책임'은 차마 내동쟁이 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쯤, 나에게 두 명의 귀인이 나타났다. 모두 산위의마을교회에 다니고 있는 귀한 형제들이었다.


나와 막역한 형제 A가 다가와 말해주었다.

"낙심은 고통 속에서 길을 잃은 마음이다. 그리고 낙심은 스스로를 마비시키는 행동이다."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일어나라. 그렇게 있으면 안 된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붙잡아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약속을 붙잡아라. 그것은 지금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붙드는 믿음이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일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드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형제 A의 말이 아팠지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사실 주일 설교에 기초한 말씀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낙심의 구덩이에서 나오는데 도움이 되었다.  


형제 B와 우연히 점심을 먹었다. 형제 B가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형제 B의 모습에서 나는 읽을 수 있었다.

'저는 열심히 살고 적응하고 있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거 같아요. 이번 이직과정이 쉽진 않았지만, 지금 선하심을 맛보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Best는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대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내 마음의 눈이 번뜩 뜨였다.

마치 심폐소생술에서 마음이 살아난 사람처럼.


아직도 기억이 난다. 단순한 점심식사였지만, 형제 B와의 대화에서 내 마음의 낙심이 깨어졌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발동거린 사람처럼, 입사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3. 달음질


100미터 달리기 하는 사람처럼, 두두두두 지원했다. 그렇게 입사지원을 한지 한 달 반정도 된 지금.


지원하고 보니 95개 업체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면접을 너무 감사하게도 4군데 정도 보았고, 오늘 방금 면접 1군데를 더 보고 오는 길이다.




4. 두 가지 선택의 길


아직 이직 과정 중에 있다.

(이직을 완료하고 난 후, 성과물을 가지고 아름답게 얘기를 하면 더 좋겠지만, 지금의 느낌과 깨달음을 생생하게 적고 싶었다)


결국, 마음의 선택이었다.

마침 어제 수요예배에 기가 막힌 문장을 배우게 되었다.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잠언(23:7)은 우리의 미래가 갈망하고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정말 10000% 동의가 되는 말이다. 결국 내가 과거에 머금고 있는 생각들이 나의 미래로 가는 길을 닦아내고 있었다. 나의 낙심들은 나의 미래들을 갉아먹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형제 A, B를 만나 마음에 봄바람이 불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게 되었을 때, 나는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근거로 나의 다음 경로를 빌드업해나가게 만들었다.


목표가 생기고 나니, 100개 정도 지원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목표 달성을 위해 마구 지원했다.

누가 머라고 하건 무슨 상관인가?

나의 아이들을 위해, 나의 유업을 위해 나는 달려야 했다.

서류 탈락하건, 면접탈락하건, 거절을 받는 게 무슨 상관인가?

쓴 마음? 그게 뭐 대수인가? 유업 앞에, 나의 아이들 앞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의 다음 주자들을 위해, 그리고 내가 받을 유업 앞에 나는 일어서야만 했다. 일어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의미했다.


면접을 위해 이력서를 연신 보며 시뮬레이션했다. 수많은 이직의 내역 가운데 수치심이 들면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곱씹으며 계속 진행했다.


돌이켜 보면, 나에겐 두 가지 선택 중에 하나였다.

- 세상은 쓰다며 , 주변에 살며시 쓰디쓴 기운을 뿌리며 살 것인지

- 아니면 세상에는 그래도 기회가 있다며, 아직 하나님은 선하시고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며 계속 일어설 것인지.


순진해 보여도 후자를 선택할 때, 거짓말처럼 기회들이 열렸다.



Outro.


나는 그리 긍정주의자는 아니다.

낙심에도 쉽게 빠지곤 하는 INFP다. 꿈과 이상이라는 좁은 길을 추구하기에 낙심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삶은 MBTI와 다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리는 것처럼 결국 열린다. 특히 취업이나 이직은 Fit을 찾아 나서는 것이니까. 지금 면접을 하면서도 느끼고 있다. Fit이 맞던지, 아니면 안 맞던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직을 그래도 13번 하니까. 이 정도면 이직 전문가 반열에 들지 않을까 싶다. 아 물론, 이직 자랑이 아니다 ^^;. 나는 이직을 추진하시는 분들에게, 그리고 취업하시는 분들에게 힘을 내라고 말씀드릴 만한 근거는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해서다. 결국 마음에 달렸다. 


이번 과정을 통해서

주님은 나에게 놀라운 계획이 있으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마찬가지다)

그분의 우리를 향한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다.


그리고 그분이 얘기하는 평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마치 바람도 없고, 구름도 없는 공백상태가 아니다. 나는 주님이 얘기하시는 평안은 마치 가을 땡볕에 추수한 뒤, 오두막에 앉아 바람을 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추수를 앞둔 익은 벼들을 춤추게 만드는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힐 때. 그리고 그 시원한 바람이 이따금씩 불어와 나의 머리카락과 볼을 간지럽힐 때. 그리고, 곧 나의 가정의 품으로 돌아갈 것을 기대할 때. 그게 평안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여전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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