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재발견 #6_자원개발

by As the Deer

1년 정도 회사를 그럭저럭 다녔다. 두 번째, 세 번째 회사에 비하면 정말 오래 다녔다. 12배, 6배의 기간 넘게 다닌 것이니까.


다사다난했지만, 만족스러웠다. 회사가 작다 보니 세 번째 회사와 비슷한 게 많았지만 해외출장의 기회가 있다는 점, 특히 미국으로 진출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나의 상상을 자극했다. 캐나다로 출장도 두 번이나 다녀와서 왠지 실현 가능성이 있어 더 커보였다. 물론 조건은 '회사가 잘되면'이었다.


해외에서 멋지게 주재원 생활을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에 첫 직장에서 주재원 분이 한국에 오셨을 때 그 포스와 아우라에 사로잡힌 바 있다. '아 시차 적응이 안되는데, 시차 적응 될때쯤이면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그 말이, 참 부러웠다. 그 생활이 그냥 멋있어 보였다. 걱정없는 삶만 있을 것 같은 해외생활. 좋고 부러워보였다. 그리고, 부모님이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모습. 생각만 해도 좋았다. 네 번째 직장 1년을 잘 다닐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도 사실 이러한 기대 때문이었다.


자원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회사는 해외 파트너사와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관계를 바탕으로 회사에 좋은 기회가 왔다. 대기업과의 공동 프로젝트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나는 흥분되었다. 잘만 되면 정말 해외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표님과 자주 대기업을 방문하고 논의했다. 대표님은 항상 당당하셨다. 스타트업이라고 위축되지 않으셨다. 더욱이 그 대기업 사장님과 친분이 있다고 하시니, 미팅 때마다 내 마음속엔 '사장님 파이팅'이라는 외침이 연신 흘러나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미팅 날이었다. 대기업 실무진 측이 우리 사업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요구했다. 내용이 상당히 디테일하고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했으나, 실질적으로 우리 사업 검토에 필요한 합리적인 요구라고 생각했다. 이 난관을 어떻게 돌파해야할까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대표님이 갑자기 말씀하셨다.


"아이참, 왜 똑같은 얘기를 계속하시는 거예요~~ 왜 이리 질질 끄시려는 거예요? 혹시 하기 싫으신 거 아니에요?"


회의석상에 있는 모두 황당하고 당황했다.


'하기 싫다고? 무슨 말씀이시지?'


"아 대표님 저희 의도를 오해하신 거 같은데"


"아니 그게 아니고.. 야! 너는 왜 멀뚱하게 보고만 있어! ㅅㄲ 적어야 될 거 아냐! 정신 안차려!"


누구에게 호통을 치시는 거지? 뒤를 보았다. 아무도 없는데?


"너 말이야 너! 한심하긴! "


나? 이게 무슨 소리지?


황당했다. 대표를 뺀 모두가 당황했다. 나는 어버버버 무슨 말을 할지 몰랐고, 얼른 적는 시늉을 했다.

결국 미팅은 어색하게 마무리되었다.


얼굴이 빨개졌다. 이게 무슨 경우지? 수치스러우면서도 화가 났다. 대표님과 단둘이 있게 되자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O과장 미안해. 내가 쟤네들이 이상한 소리 해서 막느라고 소리친 거야. 신경 쓰지 마"


황당했다. 이게 방법이라고? 소리 지르고 회의를 얼버무리는 것이? 해결된 건 하나도 없는데? 뒷감당은? 화가 치밀었지만 꾹 참았다. 예의도 아니고.. 더군다나 미국도 가야 하니까.


하지만 마음은 이미 회사에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대표는 이 방법을 밀어붙였다. 요청사항에 대응하고 준비하려고 해도 하지 말라고 말렸다. 저쪽에서 불합리한 요구를 하고 있으니 하지 말라는 것이다. 동의가 되지 않았지만, 대표의 큰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대기업 실무진들도 마음이 돌아섰는지 정말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불필요한 요구사항들을 모아서 갑자기 요청하는 식이었다. 대표님은 오너와 아는 사이라고는 했지만, 보고가 올라가지 않으니 진행이 될 수 없었다.


결국 수개월만에 프로젝트는 무산되었다. 회사는 이제 어려운 지경으로 가게 되었고, 직원들 월급을 걱정해야 될 지경이었다.


나는 결국 다른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뭔가 허무했다.

열심히 했는데 허무했다.


집에 돌아오면 아내에게 불만을 털어놓기 일쑤였다. 아내는 많이 공감해 주고 위로해주었다. 그러나 회사가 악화됨에 따라 내 험담이 심해졌고, 어느날 아내는 미간을 심히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그만 얘기하지? 나도 이제 힘들다. 나는 직장 안 다녀봤니? 회사생활이 그런거잖아. 심한말을 여기서 하지 마. 힘들다 나도"


나의 어떤 험담이 아내를 건드린 거 같다. 근데 어떤 말에서 화났는지 알아보기에 이미 늦었다. 나도 화가 났으니까.


"아니 그럼 이런 얘기를 누구한테 해? 얘기할 수도 있지. 너 나 무시하는 거지?"


"뭐? 그건 또 무슨 억지야?"


"나 중소기업 다닌다고 무시하는 거지?"


"여보!"


아내가 소리 질렀다.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여보, 내가 회사 그만 다니라고 했어? 여보가 선택했지!"


"....."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화가 났다. 아내에게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말이 안 되는 말들이었다.


아내도 지지 않고 말이 안 되는 말들을 했다.


아이가 울고 있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건 내가 의도한 게 아닌데...'

나는 우는 아이 얼굴을 보고, 더 이상 아내에게 소리 지르는 걸 그쳤다.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었다. 하지만 분이 가시지 않아 잠시 후, 밖으로 뛰쳐나갔다. 현관문을 쾅 닫으며 다짐했다.


'두고 봐. 내가 보여주겠어. 반드시 성공하겠어.'


순간. 낯선 감정에 놀랐다. 이 불타는 마음은 뭐지?


약간은 벙벙한 마음이 들긴했지만, 사실 낯선 감정이 아니었다. 익숙했다. 예전부터 이따금씩 느껴왔던 감정이었고, 마치 배경처럼 내 안에 있던 감정이었다. 오늘은 단지 그 실체가 드러났다. 평소에는 발견되지 않다가 마음에서 훌쩍 튀어나와 버린 느낌. 첫퇴사때부터 차곡차곡 쌓여있던 무엇이었던 것 같다.


그래, 마음 안에 용솟음 치고 있었다.


반드시 성공해서 보여주겠다는 건

뜨겁다기 보다 서슬이 시퍼런 다짐이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라는 말과 '당신덕분입니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당연히 그렇게 하는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미덕으로 살았다. '다 니 덕분입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것과 정반대되는 감정이었다.


사실은 엄청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본색이 있었다. 니 덕분이라고 말하면서 슬며시 나도 같이 올라가있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 괜찮아 보이지만 괜찮치 않은 것이었다.


'다 여러분 덕택입니다 헤헤헤..'


'여러분 덕택입니다만.. 제가 조금 한것도 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한 것입니다'


'봤죠? 내가 한것입니다'


'내가 한것을 모두 인정하시죠'


'이건 나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못해요'


'내가 누군지 아나?'


불씨의 시작은 작았지만, 결국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


쓴마음으로 삐뚫어질 수 밖에 없는 마음이었다. 결국 시간문제였다.


어쩌면 아내는 이미 알고 있는데, 나만 몰랐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첫 직장에서부터 이미 내재되어 있던 것 일 수도 있다. 입신양명을 하려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답답한 것일 수도 있다.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초저녁이라 사람이 많았다. 다들 건강을 챙기러 나온 사람들. 연령대가 나보다는 많아 보였지만, 운동장을 한가로이 도는 모습이 평화로워보였다. 슬리퍼를 신고 나왔지만, 나도 그분들과 함께 돌기 시작했다.


뭘 그렇게 인정받고 싶은 걸까?

만약.. 인정 받고 나면 그 다음은 뭐지?

아니.. 인정을 받는 것이 충족될 수가 있나?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이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바로 그때 내옆을 아주머니 두분이 빠른 경보로 지나갔다.

"이번에 우리 아들이 드디어 취업했어. 이제 종로로 출근해"

"아이고 참 잘됐네~ 참 축하할 일이네. 그래도 노력하더니 이렇게 떡하니 되는구먼"


팔을 앞 뒤로 흔들며 박수치며 아주머니 두분이 얘기를 나누시며 지나가셨다.


부끄러웠다.

밤이라 다행이었다.


그래 맞다.


지금 나를 발견하고 자시고가 중요한게 아니다. 나는 취업을 해야한다. 나는 한가하지 않아.


나는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동장을 한바퀴 돌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