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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Q Oct 25. 2021

우리가 퇴사를 못하는 이유

중소기업 재직자를 위한 변

 제발, 퇴사해!

멋모르고 급한 마음에 입사했다가 내가 다니는 회사가 나쁜 회사임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정말 only marginally


이 경우 주변 사람들과 하는 회사 얘기는 다음 단계를 거친다.


1단계: 욕

2단계: 눈물

3단계: 침묵


1단계 과정을 거칠 때에는 친구들과 다니는 회사 을 한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자 돈을 버는 공간인데, 욕할거리는 어디나 많다.

모두가 욕할거리가 있기 때문에 사실 이때는 욕을 하며 서로의 밥벌이 노고를 치하한다.


그러나 곧 욕으로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온다.

2단계에서 우리의 몸은 정말 “리터럴리” 아프게 된다.

머리가 세고 (혹은 빠지고), 생리는 끊기며,

회사가 있는 지하철 역 출구 계단을 올라오면

머리가 핑글핑글 돌아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쭈그려 앉는다.

이 때는 눈물을 흘린다.

분노가 터져오를 때 숨어서 울고, 몰래 지원한 회사의 쏘리메일을 받고 운다.


눈물도 말라버리면 이제는 침묵 3단계이다.

친구들과 회사 얘기는 하지 않으며,

친구들의 열띤 회사 얘기도 듣기만 한다.

어떠한 재밌는 회사 에피소드라 하더라도 추임새를 넣지 않는다.

추임새 넣다가 다니는 회사 얘기를 꺼내게 되면,

“그러니까 그만두라니까! 왜 아직도 다녀! 저번에 그만둔다며!”라는

지겹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이다. 그 말이 사실이다.

이미 1단계 과정에서 퇴사 드립을 너무 많이 쳤기에

3단계에서는 퇴사한다는 말도 꺼낼 수 없다.

불면증이 시작된다.


“웬만한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나쁜 회사”를 그만두기가 쉽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쁜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사람들이 답답하고,

사실은 징징대서 그렇지 그렇게 나쁘지 않은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쁜 회사”는 “웬만한 회사”보다도 그만두기가 어렵다.


“웬만한 회사”에서 “웬만한 회사”로 옮기는 것은 쉽지만,
 “나쁜 회사”에서 “웬만한 회사”로 옮기는 것은 어렵다.


 “나쁜 회사”는 두 종류가 있다. 나쁘다고 소문난 회사와, 무명의 회사. 둘 다 이직이 어렵다.

 “나쁜 회사”의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통상 나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박봉   

(2) 과도한 업무량  

(3) (2)의 업무가 포트폴리오가 될 수 없는 잡일임

(4) 구성원들 간의 불화

(5) (1)~(4)를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


그런데 (2) 와 (3)이 함께하기 때문에 “웬만한 회사”에 지원을 하는 것조차 어렵거니와

연차는 쌓였는데 나쁘다고 소문났거나 무명의 회사에서 잡일로 쌓은 나의 이력서는

웬만한 회사 서류심사조차 뚫기가 어렵다.


영혼을 담은 구라로 서류심사를 뚫었더라도,

면접 단계에서 “웬만한 회사”의 면접관들은

“나쁜 회사” 직원의 찌든 얼굴과,

“행복하게 일하고 싶어요’ 류의 절박한 멘트,

물경력 포폴에 대한 질문을 몇 가지 던져보고 이내

“나쁜 회사”에 근무했다는 사실을 번개같이 알아차린다.

즉, 당장 경제적 이유가 문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쁜 회사”에서의 이직 혹은 재취업은 너무나 어렵다.


이직의 어려움으로 경력 공백이 발생하는데,
이는 다시 재취업의 어려움을 가속화시킨다.


“나쁜 회사”인 우리 회사로 온 경력직 직원들은 오기 전 평균 6개월의 공백기가 있었다.

그들은 그 기간이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친구들은 '몇 개월 쉬는 거 나쁜 거 아냐, 너 그동안 너무 고생했잖아.'라고  얘기해준다.

이제 더 이상 직장을 다니는 이유가 돈 때문도 아니고,

경력 때문인 것도 아닌 이상 쉬는 건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나쁜 회사에서는 이직도 어렵기에,

평생 일을 안 할 예정이 있는 것이 아닌 이상

기한 없는 공백기의 두려움은 쉽사리 사직서를 내지 못하게 한다.


더군다나 물경력으로 포트폴리오를 쌓다 보면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매우 떨어져 버려서,

소속도 없다면 다른 회사에 내보일 나의 무기는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쉽사리 퇴사를 결정할 수 없게 된다.



그래도 나갈거에요.


가족도, 친구들도 내가 왜 퇴사를 못하는지 이해를 못한다.

내가 퇴사를 못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함께 시궁창에 빠져있는 직장동료들뿐이다.


영 아닌 길인 줄 알면서도

오늘도 꾸역꾸역 걷는 직장인들이

무사히 그곳을 탈출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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