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의 진

접시닦이의 기억

by 보통직장인
한 달에 하루만 쉬고 하루 12시간 일하고 월급은 70만 원, 내일부터 나와라!


일을 시작한 지 3달이 지났다.

주방 안은 된장찌개 냄새로 진동한다. 싱크대는 온통 설거지 거리로 가득하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먹고 마셨던 그릇이며 접시가 주방 안으로 미친 듯이 몰려든다.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니 속도가 나지 않는다. 고무장갑을 벗어던진다. 무아지경에 빠져 설거지를 하다 보니 장화 속에 물이 가득 찬 것도 잊었다. 주방에 있는 온도계를 본다. 45도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오래전 땀으로 다 젖었다. 손님이 계속 들어온다.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아직 밥을 먹지도 못했다. 배가 고프지만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손님상에 갈 접시와 그릇이 부족하다.

손님이 먹다 남긴 고기를 세제 가득한 손으로 주워 먹었다. 배가 고프니 어쩔 수 없었다. 일반 싱크대보다 2배는 큰 싱크대인데 설거지거리가 가득 차서 빠지지가 않는다. 그걸 본 5년 경력의 형이 비키라고 한다. 자기가 대신하겠으니 잠깐 쉬라고 한다.

화장실로 갔다. 내 손에는 언젠가부터 습진 때문에 피부 껍질이 벗겨진다. 발은 무좀과 하루 종일 신고 있던 장화의 영향으로 퉁퉁 부어있다. 군대에서도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군대보다 더 힘들다. 과연 내가 얼마나 이걸 할 수 있을지..

사장님을 만났다. 학교 복학 준비도 해야 하고 미뤄뒀던 공부도 해야 하니 이번 달 까지만 하겠다고 했다. 거짓말이다. 힘들어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그만둔 것이다.


남자들에게 군대는 자신의 삶에 임계점을 넘는 기회이자 고난이라는 얘기를 한다. 하지만 나는 군대보다 더 힘든 경험을 했다. 바로 식당에서 접시를 닦은 것이다. 열악한 환경이 어떤 건지 눈으로 봤다. 이런 곳에서 버틸 자신이 없다.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때부터였다. 내 삶을 책임진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치열하게 노력했다. '접시닦이'는 지금의 나를 만든 최초의 기억이자 '배수의 진'이다.

#한달 #한달자기발견 #접시닦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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