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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경앤 Oct 28. 2022

코끝의 향기로 기억되는 등나무

다경앤 원고지

기억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기억은 사진처럼 장면을 기억하는 것이다.


등나무

그런데,  코끝에서 나는 향기도 기억된다는 것을 알았다.


8월 어느날 항상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갔다.  항상 보던 시선이 아닌 새로운 시선에  다른 풍경이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약간 흥분되기도 했다. 이유 모를 설렘이었다. 하지만, 8월말 늦여름 날씨에 살짝 지쳐갔다. 그래도 초록이 주는 시각적인 시원함에 기분은 좋았다.


늦여름의 초록을 만끽하며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눈앞에 펼쳐진 사진 같은 모습에 시선이 멈추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시선과 함께 발걸음을 멈추었다.  늦여름 짙은 초록이 풍성한 등나무였다. 5월에 찬란했던 꽃은 떨어지고 잎만 풍성한 등나무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등나무인지도 몰랐다. 나무 이름표에 등나무라고 쓰여진걸 보고 다시 나무를 보았다. 덩쿨을 이루고 있는 짙은 초록의 등나무였다.


그때, 갑자기 코끝에 등나무의 향기가 느껴졌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등나무 꽃이 아직 남아있나보다하며 찾았다. 떨어진 꽃이 있나하고 무의식적으로 바닥도 둘러보았다.하지만 지금은 8월 말이니 등나무 꽃이 남아 있을리 없었다.


순간 신기했다. 향기가 이렇게 정확히 기억되다니..... 사진처럼 장면이 기억되기도 하지만 향기로 장면이 기억되었다.


지금 등나무꽃 향기를 맡고 있다고 착각 할 정도로 등나무 향을 기억해 냈다.


등나무 향기


기억은 사진처럼 장면을 기억한다.
코끝에서 나는 향기가 기억되기도 한다.



어릴 때는 등나무가 많았다.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는 나무 평상이 있었다.그곳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평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짙은 초록의 등나무가 있었다. 등나무 꽃이 피는 5월이면 동네에 등나무 꽃향기가 하루 종일 은은하게 퍼졌다. 사람들은 그 향을 좋아했던거 같다. 다걍앤도 그 향을 꽤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등나무는 사라졌다. 그리고, 등나무 꽃향기도 사라졌다.


갑자기 고등학교 시절 교정에 있던 등나무 정자가 보고 싶다.

학교 교정에는 아직 등나무 정자가 있을까?


갑자기 등나무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경앤이 등나무 정자가 있는 공간에 더 이상 있지  않은 것이다. 등나무가 있던 교정도 떠났고, 등나무가 있던 마을도 떠났다. 다경앤은 성장하면서 있는 시간과 공간이 바뀐 것이다. 등나무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경앤이 등나무가 있는 공간을 떠난 것이었다.



등나무 아래 그늘에서 눈으로 느끼는 시원한 초록을 온몸으로 느꼈다. 사실 무지 더웠다.  30도가 넘는 8월 마지막 주 늦여름 날씨였다. 하지만, 시원했던 옛 기억으로 시원함을 즐겼다. 그리고, 등나무 꽃향기를 만끽했다.

이 순간만큼은 등나무 향기가 퍼지던 그 공간 그 시간 속에 있었다.  

시간 여행 떠나는 기분이었다.

내년 등나무 꽃이 필 때 꼭 이곳에 오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이제 현재의 시간과 공간으로 다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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