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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경앤 Jan 20. 2023

또 오늘임에 감사

삶의 마지막날 가장 그리운 건 일상이다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또 오늘임에 감사합니다.

                                                                                                         © howier, 출처 Unsplash


불현듯 이 순간에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려하고 특별한 걸 원했다.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는 불만이 더욱 커졌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을 읽었다. 이어령 작가가 마지막 노트에 써 내려간 글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마지막 순간도 결국 삶을 사는 일상이라는 것이다. 뭔가 화려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이 순간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평소에 항상 있는 일들이 마지막 순간에는 사무치게 그리운 순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생각해 보았다. 너무 가고 싶었던 이탈리아 여행을 갈까?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한 친구들을 만날까? 처음에는 거창한 계획을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고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생각이 깊어질수록 특별하다고 생각한 그 모든 것의 의미가 희미해졌다.


오늘 아침에 "잘 다녀와. 저녁에 보자"하며 인사하고 헤어졌던 가족 생각이 났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정수기의 시원한 물을 누르는 딸에게 오늘 아침에도 똑같은 잔소리를 했다. 아침에는 따뜻한 물을 마셔야 된다고 말이다. 그러면 짜증을 부리는 날도 있고, 못 들은 척하며 어김없이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오늘 아침에는 씩 웃으며 "엄마 나이가 되면 그렇게 할게요"라며 어김없이 시원한 물을 마시던 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주방에서 가장 가까운 방에 있는 아들이 문을 열고 나오면서 엄마 소리에 깼다며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청소기를 시원하게 돌린 남편이 "발바닥이 뾰숑하지"라며 으스대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어느 날 먹고 싶은 것이 모두 달랐던 날이 있었다. 떡볶이가 꼭 먹고 싶다는 딸,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다는 남편, 소고기가 먹고 싶다는 아들.. 보통은 메뉴를 하나로 통일시킨다. 조금 덜 먹고 싶은 사람이 양보하는 것이다. 아니면 먼저 얘기한 사람 메뉴로 정한다. 그런데 그날은 모두 먹고 싶은 사연이 있었다. 그래서 각자 자기가 먹고 싶은 걸 준비해서 모두 나눠 먹기로 했다. 부엌이 시끌시끌 복잡했다. 사실 나는 그냥 적당히 아무거나 먹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식탁 가득 채워진 음식을 보니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 본인이 먹고 싶었던 거 먹어서 좋고, 다른 사람이 먹고 싶었던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은 그 순간이 너무 생각났다. 가족과의 이런 평범한 식사가 생각났다.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한 순간에 결국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지금 매일매일 하고 있는 일상이었다. 정말 마음먹는 거에 따라서 이렇게 모든 생각이 바뀔 수 있다니 신기했다. 그리고 오늘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에 싫었던 직장 동료도 오늘 아침 어김없이 마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메일 비숫한 반찬이라고 투덜대던 직장의 점심식단도 감사하다. 매일 이렇게 건강식을 고민하지 않고 수고롭게 만들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저녁 함께 먹을 가족이 있다는 사실도 감사하다.


오늘 저녁 멤버가 어떻게 될지 연락해 보아야겠다. 힘든 일정을 마치고 집에 와서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지 물어보아야겠다. 그리고 감사한 저녁식사를 해야겠다. 마지막인 거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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