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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se Mar 28. 2021

출근길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은,

출근길마다 마주치는 사람 말고 고양이도 있다. 얼굴이 네모에 가까운 꼬리가 짧은 흰색과 노르스름한 털을 교차로 가진 고양이. 이 동네에 서식하는 길고양이 같다. 볼 때마다 꾀쬐쬐하고 이름표도 없는 것이. 나한테 오라고 한참 쳐다보며 눈빛을 보냈으나 나를 피해서 잰걸음으로 골목으로 숨어 들어갔다. 


골목을 내려가며 차들이 멈춰서 있는 걸 발견했을 땐 뛴다. 차들이 멈춰있다는 것은 내가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론 멀리서 보이는 차 신호를 보고 뛴다. 차 신호가 빨간불이면 내가 건너야 할 횡단보도엔 파란불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신호 간격이 꽤 길기 때문에 횡단보도가 파란불인 것을 알고  50m 정도를 뛰었을 땐 늦지 않고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지만, 대신 놓치면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긴 신호 간격이란 양날의 검. 


첫 번째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바로 다음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운 좋게도 다음 횡단보도의 신호는 내가 횡단보도 앞에 다다르고 3초 정도 후에 켜진다. 신호 설계 규칙상 다음으로 켜져야 하는 신호등인 모양이다. 덕분에 1분 1초가 중요한 출근길에 길바닥에서 신호를 기다리느라 1분 정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비정기적으로 두 번째 횡단보도에서 오른손에 종이컵에 커피를 쥐고 뒤에 MARVEL이 써진 검은색 롱 패딩을 입고 가는 여자를 만난다. 늘 나보다 앞서있는 발걸음 때문에 한 번도 앞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뒷모습만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2번 출구 앞에서 아침마다 비정기적으로 김밥을 팔던 아줌마는 이제 보기가 힘들다. 김밥을 파는 대신 아침에 뭘 하고 계실까? (굳이 궁금해할 필욘 없지만)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에서 바르다는 '새로운 여행지에 가는 것도 영감을 주지만,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곳은 내가 사는 이곳이에요'와 같은 말을 했는데 (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안 난다) 나도 그처럼 살고 싶다. 가끔 보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기보다, 매일 보는 것에서 더 즐거움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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