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의 중용 읽기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실함이라야 능히,
천하의 큰 질서를 세우고 천하의 큰 근본을 세우며,
하늘과 땅의 조화를 알 수 있으니,
어찌 다른 것에 의지함이 있겠는가?
(It is only he who is possessed of the most complete sincerity that can exist under heaven,
who can adjust the great invariable relations of mankind, establish the great fundamental virtues of humanity,
and know the transforming and nurturing operations of Heaven and Earth.
On what can such a one be dependent?)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에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에게 기대고, 자라서는 친구나 스승에게 의지하며, 사회에 나와서는 내가 속한 조직이나 나의 지위에 기대어 안정감을 느끼려 합니다. 이처럼 어딘가에 ‘소속’되고 무언가에 ‘기대는 것’은 우리에게 안도감을 주지만, 때로는 우리를 약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내가 기댔던 것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속절없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중용』은 그 질문에 대해 아주 명쾌한 답을 내놓습니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 즉 성인(聖人)은 “어찌 다른 것에 의지함이 있겠는가(夫焉有所倚)?”라고 반문하며, 그 어떤 것에도 기대지 않고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바로 서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는 부모의 재산이나 가문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는 스승의 권위나 명성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높은 지위나 권력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무엇을 믿고, 무엇을 발판 삼아 그 거대한 세상의 질서를 세우고(經綸大經), 사람들의 마음속에 선한 근본을 바로 세우며(立大本), 우주의 조화로운 운행(天地之化育)에 참여하는 것일까요?
그가 의지하는 단 하나, 그것은 바로 자기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지극한 진심(至誠)’뿐입니다.
그의 진심은 밖으로는 간절하고 따뜻한 사랑(肫肫其仁)으로 표현됩니다.
그의 진심은 안으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淵淵其淵)처럼 고요하고,
그의 진심은 전체적으로는 한없이 넓고 광활한 하늘(浩浩其天)과 같습니다.
이것은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습니다. 외부에서 물을 공급받아야만 채워지는 저수지와는 달리, 그는 자기 안에서 스스로 생명수를 길어 올립니다. 그렇기에 그는 결코 마르거나 고갈되지 않으며, 외부의 어떤 가뭄이나 홍수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온전함을 지킬 수 있습니다.
‘홀로 선다’는 것은 외롭고 고독한 섬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바로 설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 모든 것을 진정으로 껴안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잃을까 봐 두려워서 맺는 ‘의존의 관계’가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고 사랑하는 ‘자유의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경지는 아득히 멀게 느껴집니다. 『중용』 역시 “총명하고 성스러운 지혜를 굳건히 하여 하늘의 덕에 도달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가 능히 이를 알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그 어려움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조금씩 ‘기대는 연습’을 멈추고 ‘홀로 서는 연습’을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칭찬에 너무 의존하기보다, 나 자신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격려해 보는 것.
외부의 정보에 무작정 의지하기보다, 나 자신의 생각으로 한번 더 판단해 보는 것.
그 작은 연습들이 쌓이고 쌓일 때, 우리는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더 자유로워지며, 마침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