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 8 - 그대가 밟지 않은 땅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습니다.
“그대의 말은 쓸모가 없습니다.”
장자가 말했습니다.
“쓸모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를 말할 수 있습니다. 땅이란 넓고도 크지요. 하지만 사람들이 걸을 때 쓸모 있는 땅은 발이 닿는 부분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발이 닿는 곳만 남겨놓고 나머지 쓸모없는 땅을 황천에 이르도록 깎아낸다면 그래도 그곳을 밟을 수 있을까요?”
혜자가 대답했습니다.
“밟을 수 없겠지요”
장자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쓸모없는 땅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 분명히 아시겠지요.”
- <외물> 7
혜시가 대변하는 가치는 ‘쓸모 있음’이다. 사용가치가 있는 것, 유용한 것이 중요하다. 일종의 효용론이다. 박씨를 심었는데 너무나 커다란 박이 열려 바가지로 만들 수 없다면 그 커다란 박은 쓸모없는 것이다. 나무를 심었는데 나무줄기와 가지가 뒤틀어져 목재로 쓸 수 없다면 그 나무는 쓸모없는 것이다. 그때마다 장자는 혜시의 견해에 딴지를 건다. 박이 커서 바가지를 만들 수 없다면 배를 만들어 타고 놀면 되지 않느냐고, 나무가 뒤틀려서 목재로 쓸 수 없다면 그 큰 나무의 그늘에 누워서 편히 쉬면 되지 않겠느냐고.
장자는 혜시의 편협한 효용론을 비판하면서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 단지 그것을 쓸모없다고 보는 편견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재목으로 쓸모 있어서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베어지는 나무를 안타까워한다. 쓸모 있어 오히려 목숨을 잃게 되었다고, 쓸모없었다면 천수를 누렸을 것이라고 역설한다. 장자는 쓸모의 위험성을 경계한다.
이 세상을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나누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고도 편협한 발상이다. 그때 우리는 물어야 한다. 당신이 말하는 쓸모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쓸모냐고? 무엇을 위한 쓸모냐고? 존재를 존재 그 자체로 인정하지 못하고 도구로 바라보는 시선은, 유용(有用)한 것만 남겨놓고 무용(無用)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없애려고 한다. 그런 행위는 장자의 비유처럼, 자신이 밟은 땅만 남겨놓고 나머지 땅은 천 길 낭떠러지로 만드는 것이다. 그 결과는? 자신조차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절체절명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그때가 돼서야 뒤늦게 자신이 무용하다고 생각한 것이 유용한 것의 근거이며, 존재의 안받침임을 깨달아도 소용없다.
현대사회는 스펙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사용설명서’를 자세히 기록해놓고 쓰이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어렵사리 구한 직장에서도 다시 자신의 유용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야 한다. 철학자 한병철은 이러한 사회를 ‘피로사회’라고 명명하였다.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착취하는 시대, 피로는 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신 때문이다. 자신의 쓸모가 자신을 피로로,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장자는 말한다. 쓸모만을 추구하는 그대여, 쓸모없음을 없애고 쓸모만을 추구하는 세상은 평안할 것인가? 모든 존재를 그대로 놔두라. 오히려 쓸모의 위험성을 늘 상기하라. 그대가 밟고 간 땅은 점점 불모로 변해가고 있다. 그렇지만 그대가 밟지 않은 땅을 보라. 새가 날고,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다람쥐가 뛰논다. 존재를 따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 쓸모가 그대를 죽이고, 오히려 쓸모없음이 그대를 살릴 것이다. 그러니 때로는 쓸모없어지길 기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