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의 대화 나의 노래 Aug 17. 2023

4학년 여름방학 (2)

아이가 사라졌다

아이는 이미 도서관 앞 8차선 횡단보도까지 건너 멀찍이 가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40분도 넘는 거리. 버스를 타고 가려 했건만 아이가 저렇게 골이 나 혼자 걸어가고 있으니 뒤따라갈 수밖에.


아이는 간간이 뒤돌아보며 내가 오는 걸 확인했다. 하지만 멈추거나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아이에게 얼른 뛰어가 말은 걸지 않아도 나란히 걷긴 했을 텐데 그러기 싫었다. 아까 아이가 수첩에 썼던 ‘짜증 나는 엄마’,‘최악의 날’이 가슴에 꽂혀 있었다. 30m 정도 거리를 계속 유지한 채 아이 뒷모습을 보며 걸었다.

‘그거 한마디 했다고 이런다고? 네가 나한테 어떻게….’


4학년이 되어서도 학교 가기 전 엄마의 사랑 충전이 필요하다며 안아달라는 아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아주머니는 우리가 얘기하는 걸 보고 아이가 엄마를 바라보는 눈길이 어쩜 그렇게 다정하냐는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다. 그랬던 아이가 변했다.


6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날씨는 후덥지근했다. 다리가 아프면 아플수록 아이가 괘씸했다. 마침 길옆으로 나무가 우거진 공원 산책로가 보였다. 잠시 숲길을 걸으며 화를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심 아이를 골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이가 뒤돌아봤을 때 내가 없으면 좀 당황하지 않을까. 공원으로 들어가 나무들을 보며 터벅터벅 걸었다. 걷다 보니 아이가 걱정됐다. 5분~7분이나 지났을까. 나는 원래 길로 돌아갔다.


그런데 당연히 앞에 있을 줄 알았던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새 한참 앞서간 건가 싶어 빠른 걸음으로 내쳐 걸었다. 이쯤 가면 보이겠지 하는 지점에 다다랐는데도 아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사라졌다.


‘얘가 어디로 갔지? 혹시 엄마 잃어버린 줄 알고 내가 사라진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야?’

나는 방향을 틀었다. 이미 20분을 족히 걸었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이는 없었다. 이때부터 나를 둘러싼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내게 닥치는 건 아닐까 무서웠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집에 가면 틀림없이 와 있을 거야. 아이는 4학년이야. 길을 잃을 리 없어.’


집으로 빨리 가야 했다. 나는 달렸다. 숨이 턱턱 막혔고 갑자기 현기증까지 나 비틀거리기도 했다. 공부에 방해된다고 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주지 않은 게 처음으로 후회됐다. 아이를 따라가다 괜히 공원 산책로로 샌 것도, 도서관에서 아이를 나무란 것도 모두.


현관 비밀번호를 부리나케 누르고 집에 들어가 오늘 아이가 신고 간 신발이 있는지부터 살폈다. 프로스펙스 검정 샌들. 없었다. 아이 신발이라곤 흙이 잔뜩 묻은 운동화뿐이었다. 인기척을 듣고 나온 남편에게 소리쳤다.

“큰일 났어! 얘가 없어졌어!”


남편은 주말에 아이와 자전거 타고 도서관 갈 때 탄천 길로 다녀 아무래도 그쪽으로 올 것 같다고 했다. 찾아보겠다며 서둘러 나가는 남편을 나도 가방을 내려놓고 바로 따라나섰다. 남편은 대놓고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지만 말투와 눈빛이 냉정했다. 어쩌다가 애를 잃어버린 거냐고, 도대체 애를 얼마나 쏘아붙인 거냐고 말하는 듯.


발이 아파 절뚝거리며 걷는 나를 보고 남편은 집에 가 있으라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는 주차장으로 갔다. 아이가 사라졌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 아이를 찾아야 한다. 해 지는 시각을 검색했다. 남은 시간은 40분.


차를 끌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마음은 급한데 퇴근 시간이라 도로는 막혔다. 핸드폰을 수시로 보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비상 깜빡이를 켠 채 보도 쪽으로 붙어 두리번거리며 운전을 했다. 집과 도서관을 왔다 갔다 했지만 아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남편에게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때 개구리 소년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 아이들도 4학년이었던 것 같았다. 4학년도 얼마든지 실종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두려움이 몰려왔다. 도서관에서 우리집까지의 거리가 무척이나 광활하고 멀게 느껴졌다. 길을 오가는 사람도 좋은 사람보다는 나쁜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 나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실종신고를 하는 것뿐이라고 체념한 채 절망적인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때 아이 샌들이 보였다.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드니 눈앞에 땀에 전 아이가 서 있었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내가 너를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아냐면서 대성통곡을 했다. 아이는 벌게진 얼굴로 자기도 엄마를 계속 찾아다녔다고 말하며 엉엉 울었다.


아이는 내가 길옆으로 빠지길래 탄천 쪽으로 가는 줄 알았다고 했다. 탄천에서 엄마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결국 집으로 왔는데 엄마는 없고 가방만 있어 이번에는 동네 한 바퀴 돌며 엄마를 찾았다고. 아이는 내가 평소 자주 가는 스터디카페까지 가봤다고 했다.


“엄마는 네가 길을 잃은 줄 알았어.”

“엄마. 내가 도서관에서 집까지 오는 길을 왜 모르겠어요. 그건 당연히 알죠.”

“길도 복잡하고 꽤 먼 거리잖아. 엄마는 너 없으면 못 살아. 다음부터는 화난다고 그렇게 혼자 가면 절대 안 돼. 알았어?”

“네. 알겠어요.”

나는 아이의 알겠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듣고 나서야 비로소 사과했다.

“엄마가 오늘 기분 상하는 말 하고 이것저것 자꾸 시켜서 미안해.”

“저도 미안해요.”      


아이에게 앞으로 혼자 그렇게 가버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긴 했지만 사실 그보다는 엄마인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안다.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말을 하거나, 하나하나 통제하려 들면 안 된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나는 아이와 꽤 다정한 모자 사이라는 은근한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 이면에는 내 아이는 언제나 엄마 말을 잘 듣는 아이라 여기는 오만함도 있었다.


아이는 이제 많이 컸다. 앞으로도 내 말과 행동이 조금이라도 본인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아이는 어김없이 반발할 것이다. 그땐 아이 모습을 보고 오늘처럼 크게 분노하거나 실망하지 말아야지. 조금만 섭섭해하고 빨리 사과하기로. 쉽게 잘 안 될 테지만 그래도 매번 다짐해야지.


내가 앞장서서 아이 손을 끌고 가는 건 끝났다. 이제는 아이 뒷모습을 보며 걸어갈 때. 그것도 멀찍이 떨어져서. 건강 앱에 들어가 보니 오늘 2만보 가까이 걸었다. 늦은 밤까지 발바닥이 얼얼했다.

작가의 이전글 4학년 여름방학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