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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 아빠 Nov 13. 2022

‘서부전선 이상없다’, 묵직한 울림으로 재탄생 하다

독일어권 감독·배우 대거 등장, ‘몽타주’ 기법 오마주 하기도



“이 이야기는 고발이나 진실이 아니며, 특히 전쟁에 맞섰던 이들의 모험담은 더더욱 아니다. 전쟁에서 빠져나오려 했으나 죽어간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것뿐이다.”


작가 레마르크의 원작 소설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제1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한 고전으로 꼽힌다. 위에 인용한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은 무용담과는 거리가 멀다. 그 어떤 감정도 배제하고 독일인 특유의 무뚝뚝함으로 전쟁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 

넷플릭스 신작 ‘서부전선 이상없다’ Ⓒ 넷플릭스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져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에 올라왔다. 러닝타임이 2시간 23분으로 긴 편이지만, 감독인 에드바르트 베르거는 묵직한 울림을 만들어 낸다. 이미 1979년 영화화됐지만, 앞선 영화는 영어권 작품인데 비해 이번 작품은 독일어로 만들어져 훨씬 더 생동감을 준다. 


원작의 독일어 제목은 ‘Im Westen Nichts Neues’다. 우리말로 옮기면 ‘서부전선, 별다른 소식 없다’ 정도다. 그런데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감안해 볼 때 ‘서부전선, 별 것 없다’가 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해 보인다. 


1차 세계대전 3년째, 파울 보이머(펠릭스 카머러)는 학교 동급생들과 입대를 선택한다. 애국심 등 거창한 명분이 아니었다. 그저 동급생들이 군에 입대하는 데, 자신만 고향에 있을 수 없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군 당국은 파울을 비롯한 입대 군인들을 한껏 고무한다. “우리의 미래 독일 제국의 미래는 가장 위대한 세대 손에 달렸네 나의 친구들이여 그게 바로 제군들일세 !”라고. 입대 군인들은 환호한다. 


하지만 전선의 실상은 달랐고, 병사들은 전쟁의 공포를 이기지 못한 나머지 집에 보내 달라고 애걸복걸한다. 입대할 때만해도 적국인 프랑스 파리로 진격하겠다는 결기가 충만했는데 전선에선 집에 보내달라고 사정하니 서부전선의 실상, 아니 전쟁 자체가 ‘별 것 없는’ 셈이다. 


역사를 살펴보자. 제1차 세계대전은 19세기 식으로 서로 통첩을 주고받으며 시작했지만 전쟁 양상은 일찍이 인류가 겪지 못했던 방식으로 펼쳐졌다.


그 중요한 이유는 기관총의 발명이다. 기관총의 살상력은 그야말로 가공할 수준이어서 도무지 서로가 전면전을 벌이기 꺼렸다. 이로 인해 전쟁은 서로가 참호를 파고 웅크리고 있다가 공방을 벌이는, 참호전의 양상으로 펼쳐졌다. 


이런 식의 전쟁에선 애국심이고 뭐고 없다. 그저 서로가 다른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죽고 죽이는 것일 뿐. 실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적이 있는 작가 레마르크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 같은 전쟁의 공허함을 고발한다. 그리고 연출자인 에드바르트 베르거는 작가의 시선을 영상언어로 옮긴다. 


나는 알고 있다, 파멸로 통하는 길을

넷플릭스 신작 ‘서부전선 이상없다’ Ⓒ 넷플릭스

감독 에드바르트 베르거는 영화 중간중간 초기 영화사의 거장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 <전함 포템킨>에서 구사한 몽타주 기업을 오마주한다. 특히 베르거는 자연과 인간을 정지화면으로 대비시키는데, 이 같은 장치는 밑도 끝도 없이 살육전을 벌이는 인간 존재의 비정함을 잘 드러낸다. 


무엇보다 어이없고 충격적인 장면은 맨 마지막, 휴전 시한 15분을 남기고 벌이는 독일군의 마지막 진격전이다. 현장 지휘관 프리드리히스(데비드 스트리에소브)는 자신이 지휘관할하는 라티에르 전선이 독일 것이라며 프랑스군을 상대로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전쟁은 끝났다. 수년의 희생과 고초 끝에 이젠 보상을 기대해도 좋다. 

제군들이 여기서 이룬 모든 업적에 대한 추앙을 받겠지. 하지만 전우들이여 군인과 영웅으로 환대받고 싶은가? 아니면 정말 중요할 때 꼬리 내리는 겁쟁이가 되고 싶나? 병사들이여, 우린 전력을 다해 적을 칠 것이다.”


이 같은 비장함이 무색하게 결과는 파국적이었다. 총지휘관의 판단 잘못이 부른 희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 대목에서 독일 출신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진 시집 <전쟁교본> 첫 번째 시가 뇌리를 스쳐간다. 브레히트는 이 사진 시집에서 히틀러의 침략전쟁의 허망함을 한껏 풍자하는데, 이 시집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잠결에 이미 그곳을 달려본 자처럼, 나는 알고 있다, 운명에 의해 선택된 파멸로 향하는 좁다란 그 길은.


나는 잠 속에서도 그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대들이여, 함께 가지 않겠는가?”


이 시가 떠오른 이유는 휴전을 앞두고 파멸이 예상됨에도 병사들을 전선으로 내모는 지휘관 프리드리히스에게서 묘하게 독일을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또 한 번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히틀러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다.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독일과 전세계 관객에서 히틀러의 허망한 야욕에 파멸한 독일의 과거를 다시금 각성하게 하려했는지 모른다. 


영화 내용과 다소 무관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어리석고 완고하지만 상황파악 못하는 리더의 존재는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 영화 속 프리드리히스처럼. 


2022년 새 대통령을 맞은 이 나라도 공감 능력 없는 리더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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