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혜란 Oct 11. 2021

채식인과 육식인이 함께 만든 프로젝트 리뷰

채식인과 육식하는 사람은 매번 싸워야 할까? 답을 찾는 과정의 프로젝트

올리브 파스타 티셔츠의 시작은 애인과 커플 아이템을 구상하면서부터였다. 5년간 사귀면서도 제대로 된 커플 아이템을 맞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세상에 있는 것들이 아니라 같이 만든 커플 아이템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티셔츠였고, 문구와 그림을 정하던 중에, 우리가 좋아하는 <olive pasta>를 모토로 제작하기로 했다. 티셔츠 앞면은 i love pasta의 타이포로, 뒷면은 올리브 파스타에 필요한 재료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처음 구상했을 때의 디자인. 저작권의 문제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우리는 직접 손으로 그리기로 한다.
애인이 볼펜으로 대충 디자인하고 티셔츠에 얹혔던 것


올리브 파스타는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3년 전부터 채식을 시작했고, 육식을 하던 시기부터 사귀던 애인과는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 함께 고기를 먹으러 가던 사이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가 됐다. 지금은 타협점을 찾았고, 꽤 평화로운 관계로 지내고 있다. 올리브 파스타는 내가 채식을 하게 된 후, 애인이 만들어준 음식이다. 다양한 음식을 해주었지만 애인이 특히 자기 레시피로 만든 자신 있는 음식이다. 맛있는 올리브 파스타를 먹을 때면 나는 고기 없어도 맛있는 식사를 한다는 게 새삼 뭉클하기도 했다.


왜 지금일까?

채식과 육식, 페미니스트와 반페미니스트 등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충돌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다양한 가치관의 충돌이 벅차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충돌은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 나와 애인은 폭풍 같은 시기를 거쳐 평화의 시기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우리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전해지면 조금은 용기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티셔츠라는 수단을 통해서 이야길 전하기로 한 것이다.


애인과 함께 일하기

애인과 '일'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어서 긴장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순차적으로 일을 해내는 것에 더 집중했고, 데드라인을 넘기지 않으려고 했다. 가까운 사이와 일한다는 건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되는 일이다. 노션을 만들었고, 각자의 일을 분담했다. 애인은 조금 더 음식 자체의 그림과 레시피를 짜는 일에,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전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림은 친구에게 의뢰했다. 나와 애인은 매일 1시간 넘게 전화를 하는 사이다.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만큼은 적어도 매일 1시간의 회의 시간이 있던 셈이었다. 다행이었다. 덕분에 프로젝트는 2주 만에 준비할 수 있었다.


애인과 프로젝트하면서 처음 한 일은 노션에 공동 작업 페이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알리는 도구 선택하기

이야기를 알리는 도구로는 마플샵과 노션을 활용했다. 마플샵은 소규모 창작자도 수월하게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제작과 배송 등을 담당해주는 플랫폼이다. 도매 공장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최소 100개 단위인데, 이 경우엔 포장과 배송도 별도로 담당해야 하고,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과한 홍보를 해야 할 수도 있었다.

소비를 자극하는 프로젝트이기보다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랐다. 그래서 1개도 제작 가능한 마플샵을 이용했다. 또 마플샵에서도 상세 내용을 작성할 수 있는 구역을 마련해두었는데, 인스타그램 등에서 소개할 때 구매 링크로 바로 연결되지 않도록 노션으로 연결했다. 구매가보다는 우리의 이야기에 먼저 눈이 갈 수 있도록 말이다. 특히 노션은 디자인 없이 우리의 이야기를 예쁘게 편집할 수 있었고, 사이드 이벤트였던 올리브 파스타 레시피 공유 등을 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를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는 홍보 방식

가장 먼저 소식을 알리고 싶었던 채널은 마케터 융님이 운영하는 '사이드 프로젝트' 커뮤니티였다.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인 만큼, 나의 프로젝트를 알렸을 때 가장 응원해줄 거라 생각했다. 또 '노션 한국 사용자 모임'에 게시물을 올렸다. 노션을 제품의 상세 페이지로 활용한 예시로의 글이었다. 또 나의 인스타그램에, 채식인과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글을 게시했다. 어디에, 누가 볼 수 있는 채널이냐에 따라 글의 중심을 조금씩 달리했다.


사이드프로젝트 커뮤니티에 이야기가 게시된 후, 나의 인스타그램 친구들은 공유를 통해 적극적으로 응원해줬다. 감동!


모든 씨앗은 나에게 있다

생각해보니, 나와 애인은 이미 재작년부터 채식인과 육식인으로서 맛집을 투어 하며 평을 남기는 계정 weekend do eat을 운영해왔다.(물론 지금은 오랜 휴식기 중) 우리에게 음식 이야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지금에서야 안다. 이번 프로젝트 덕분에 내가 가진 이야길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너무 작아서 있는지도 몰랐던 나의 것을 찾는 것부터 프로젝트는 시작된다.


사적인 관계가 아닌 일 파트너가 된다는 것

사적으로 가까운 사람과의 프로젝트는 더 신중해야 한다. 알아서 해주겠지 생각하거나, 나의 의견을 무조건 따라줬으면 좋겠는 마음을 갖지 않아야 한다. 사적인 관계일 때는 어물쩍 넘어가거나, 양보하던 것들이 '일'이 되는 순간 달라진다. 서로가 만족하는 프로젝트가 되기 위해서는 의견을 주장하고 타협점을 맞춰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상대가 주장을 서로 굽히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해해서도 안되고) 나와 애인의 이번 경험은 좋은 파트너가 되기 위한 연습 단계였다. 계속해서 파트너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만들어보고 싶다.


내가 만든 물건이 쓰레기는 아닐까?

물건을 만드는 일에는 더 신중하고 싶다. 환경을 생각한다면 지구에 새로운 쓰레기는 안 만드는 게 좋으니까. 만약 새 제품을 만들게 된다 해도, 최대한 환경에 해가 덜 한 방식으로 제작하고 싶다. 또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거나 이벤트를 진행하고 싶다. 소비를 줄이는 것만큼, 구매한 물건을 오래 쓰는 것도 중요하니까. 나의 메세지를 전하겠다고 지구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말자.


알리면 알릴수록 복이 온다

융님이 운영하는 사이드 프로젝트 뉴스레터를 보고 윌로에서 인터뷰를 제안해왔다. 신기한 일이었다. 만약 내가 커뮤니티에 프로젝트를 홍보하지 않았더라면 없었을 일이었다. 인터뷰를 하고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벅찼는지 모른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해 주고, 심지어 나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는 사람들이 생기다니! 앞으로는 좋은 일들을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다. 이 행위가 어떤 행운을 가져다줄지 모르니까. 인터뷰 전문은 여기로!


올리브 파스타 프로젝트를 통해 윌로 인터뷰에 참여했고, 그 인터뷰를 통해 한 분이 리뷰를 달아주었다. 그게 큰 감동이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둘만의 이벤트가 사람들을 만나고 상호작용하면서 의미가 생기기도 한다. 나의 아이디어가 좋다고 말해준 친구들, 정말로 구매해준 친구들, 이야기가 공감된다고 말해준 사람들 덕분에 나와 애인이 있다. 앞으로도 프로젝트를 해나갈 용기가 생겼다. 계속해서 작은 이야기들을 해나가고 싶다.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새로운 용기가 되면 더 좋겠다.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공유하고 싶은 레시피도, 우리의 갈등과 고민 이야기도 전하고 싶다. 브랜드 이름은 i love olive pasta라고 짓기로 했다. 우리의 이야기가 얼마나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지 실험해보고 싶다.


애인에게짧은 후기를 물었다. 어땠어?

"협력은 정말 중요하구나! 혜란이가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했을 , 엄청 부담스러웠어. 그런데 우리가 함께 해야  것과 각자 해야  역할을 나누고  우리가 가지지 못한 능력은 외부의 도움을 았잖아. 이렇게 재미난 결과물이 세상에 나왔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데에 두려움이 없어졌고, 자신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조직 밖에서도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