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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Feb 05. 2022

두리네 곱창 : 너와 나 그리고 우리네 곱창

FACTION

 


“엄마, 나 지금 차 끌고 가고 있어.”


핸드폰 너머로 다짜고짜 전해진 다정의 말에 뭐? 갑자기? 하는 엄마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두리네 곱창이 너무 먹고 싶은데, 정우는 갑자기 회사 불려갔고. 그래서 혼자 출발했지. 저녁 먹고 집에 들렀다 갈게.”


에휴, 하고 한숨을 크게 몰아쉰 엄마가 알았으니까 운전 조심히 해!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임신했을 때는 먹고 싶은 거 다 먹어야 한다며. 괜한 변명을 덧붙인 다정이 한 손으로 볼록 솟은 배를 쓰다듬었다. 





창동에서 나고 자란 다정이 가장 좋아하는 창동 맛집은 두리네 곱창이었다. 5평은 될까 싶은 작은 포장마차에서 빨갛게 양념한 곱창볶음을 먹으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모조리 날아가는 것 같았다. 콜라와 함께 먹던 곱창을 소주와 함께 먹게 될 수 있을 때까지 드나들던 두리네 곱창에 발길을 끊은 건, 순전히 전남친 때문이었다. 

바쁜 하루를 끝내고 오랜만에 단둘이 찾았던 곱창집에서, 전남친은 느닷없이 이별 통보를 해왔다. 야. 우리 헤어지자. 곱창을 향하던 다정의 젓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      


너는 뭐 그런 얘기를 포장마차에서 곱창에 소주 먹다가 하니?     


곱창에는 죄가 없다지만 이별의 슬픔에 빠진 다정은 한동안 두리네 곱창에 가지 못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두리네 곱창을 다시 찾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창동역 일대 개선 사업으로 포장마차촌이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고백하자면 다정은 그날, 좀 울었다. 다정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최애 곱창집과 인사도 없이 이별을 해버려서. 그리고 그날로부터 1년 반 정도 지난 어느 날 다정은 전남친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010-xxxx-xxxx

2018. 08. 21. (화) 01:22

[ 다정아..자니? 나 그때 네가 데려가 줘서 자주 갔던 그 포장마차 곱창 맛이 자꾸 생각나.. 그래서 말인데 혹시 그때 그 포장마차 곱창집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알 수 있을까....? 포장마차는 없어졌고 이름은 기억이 안 나서.... ]


헛웃음을 지으며 번호를 차단한 다정은 문득 전남친의 말대로 두리네 곱창이 어딘가로 이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왜 찾아볼 생각을 안 했지? 다정은 주변을 수소문해 두리네 곱창의 행방을 찾아냈다. 창동역 2번 출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다정이 그렇게 그리워하던 두리네 곱창이 있었다.     

 


전남친의 문자 한 통 덕분에 두리네 곱창을 찾아낸 다정은 다음 날 바로 가게로 향했다. 사장님이 알아보실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사장님은 카운터 앞에 선 다정을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다정이, 맞지? 이게 얼마 만이야!”

 “이모. 오랜만이에요. 저 이모 여기로 이사하신 지 몰랐어요. 알았으면 진작 찾아왔을 텐데.”

 “어유, 아냐아냐.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이모는 고맙지. 그래, 곱창 줄까? 먹고 갈래?”

 “아뇨, 저 오늘은 포장하려고요. 곱창 볶음 1인분 포장….”     


다정의 말을 멈추게 한 건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낯선 손길이었다. 너, 다정이지? 다정이 뒤를 돌자 낯선 듯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다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정우?”     


그날 다정은 몇 년 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 정우와 꽤 오래 자리를 함께했다. 두 사람이 곱창집에서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창 사이에서 연인 사이, 그리고 부부 사이가 된 건 그 후로 몇 년이 더 흐른 뒤였다.



 

“이모. 저 왔어요!”

 “다정이 왔어? 아이고, 오느라 고생했네.”     


막 오픈 준비를 끝낸 가게 문을 열자 사장님이 다정을 반겨줬다. 불판 앞에서 곱창을 볶던 사장님의 셋째 딸도 다정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된 단골이다 보니 이제는 사장님은 물론이고 가게를 함께 운영하는 사장님의 셋째 딸까지, 다정에게는 가족처럼 친근했다.  

    

 “몸도 무거운데 혼자 온 거야? 정우는 오늘 못 왔어?”

 “네. 남편은 오늘 일이 있어서 못 왔어요. 이모, 저 곱창볶음이랑 백곱창 하나씩 주세요.”

 “응. 다정이 멀리서 왔으니까 이모가 많이 줄게.”     


결혼하고 직장을 옮기며 다정은 창동을 떠났다. 자주 가던 카페, 자주 가던 식당들은 모두 지금 사는 집 주변의 어떤 곳으로 대체되었지만, 곱창만큼은 예외였다. 다정이 먹어 본 그 어떤 곱창도 두리네 곱창의 맛을 대체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는 절대 대체할 수 없는 다정의 추억이 녹아 있었다. 포장마차부터 지금의 가게까지. 두리네 곱창은 다정의 역사를 함께 했다. 


 

“천천히 많이 먹어. 남으면 싸가고.”     


사장님이 테이블 위에 올려준 곱창 두 접시에, 다정이 젓가락을 들었다. 가게에 와서 먹는 건 오랜만이었다. 다정은 빨간 양념이 골고루 배어 있는 곱창 볶음부터 입에 넣었다. 맛있게 볶아진 야채와 꼬들꼬들한 곱창이 입안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젓가락을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드는, 아주 익숙하면서도 돌아서면 자꾸 생각 나는 그 맛이었다. 다정은 백곱창으로도 손을 뻗었다. 백곱창은 양념이 들어가지 않은 하얀 곱창으로 매운 걸 잘 못 먹는 남편 정우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였다. 바싹 구워져 바삭한 식감의 백곱창은 그대로 먹어도 맛있지만 두리네 곱창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제 소스에 찍어 먹는 게 별미였다.   

   


 “이제 거의 막달이지?”

 “네, 이모. 근데 얘는 막달까지도 곱창을 찾네요.”     


멋쩍게 웃은 다정이 제 배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애기가 엄마 아빠 닮았나 보지. 사장님도 다정을 따라 웃었다.     


 “나중에 애기 낳으면 애기랑도 계속 먹으러 와.”

 “당연하죠. 여기 저한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곳이잖아요.”     


 다정은 언젠가는 이곳이 배 속의 아기에게도 특별한 장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정에게 두리네 곱창이 맛과 추억을 동시에 안겨주는 푸근한 가게이듯이, 아기에게도 이곳이 엄마, 아빠와 함께한 추억이 담겨있는 친근한 가게로 기억되지 않을까. 항상 잊지 않고 멀리서 찾아와줘서 고맙다는 사장님의 말에 다정이 싱긋 웃었다. 제가 더 감사해요, 이모! 그 말을 덧붙이며.          






 정유진

사진 김싱싱

인터뷰 정유진 서유민 천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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