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혼자 삽니다
방배동은 나만의 작은 행성이었다.
행성을 떠나 새로운 행성으로 가는 것처럼 내 삶의 모든 짐을 두고 떠나가는 것 같아 무섭고 두려웠다.
내 인 생 전부를 방배동에서 보냈었다. 부모님은 동네에서 '방배 문방구'를 운영하셨고,
나는 단독주택 집에서 1층에는 증조, 친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았고, 2층에서는 우리 가족이 살았다.
어렸을 때 아침 일찍 일어나면 동네 친구들 집을 돌아다니며 "누구야~놀자" 하고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친구들은 부스스 일어나 같이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나는 이곳에서 사방팔방 뿌리를 내리며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부모님과 친할머니, 할아버지의 갈등도 같이 자라났다.
결국 내가 중학생이 될 때쯤 우리 가족은 본가를 나왔다. 우리는 오피스텔 원룸에서 새살림을 시작하고 그 이후 반지하, 학원 상가 등 빈번하게 이사를 하면서 10대를 보내고, 20대가 돼서야 작은 빌라에서 집다운 집을 꾸미고 살 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가 대단했다. 돈 때문에 잦은 이사를 하면서도 엄마는 집값이 비싼 방배동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가 방배동에서 버티는 동안 방배동은 나의 작은 행성이 되고 있었다. 방배동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다른 데로 떠나지 않았다. 서로가 엉겨 붙어 있었다, 방배동을 떠난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 동네가 그리워서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낡은 동네였고 번화가도 아니고 땅값만 계속 오르는데, 사람들은 이상하게 방배동에 오래오래 머물러 있었다. 익숙함이 방배동에는 짙었다. 나는 집 앞 동네에서 놀다, 서문여고 앞에서 떡볶이를 먹고, 어느덧 카페 골목에서 술을 마시는 나이가 되었다. 새벽에 잠이 안 오면 친구를 불러 집 앞 24시간 카페에서 수다를 떨었고 방배동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그때는 몰랐다. 엄마가 방배동에서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었는지를.
20대 중반쯤 엄마는 더는 못 버티겠다며 인천으로 이사를 하겠다고 선언을 하셨다. 나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더는 부모님을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나이였다. 나는 방배동에 남아 있고 싶었다. 10대 때 내 방 없이 지내서 내 공간에 대한 갈증도 있었고, 자유롭게 살고 싶기도 했다. 엄마는 나의 뜻을 쿨하게 받아주고 보증금과 방까지 구해주고 나서 인천으로 떠나버렸다. 혼자 방배동에서 살기 시작했다. 엄마가 대충 구해준 골방 원룸이었지만 내 공간을 마음대로 꾸미고 사는 것이 설레고 행복했다. 설렘은 잠시 나는 엄마 방패 없이 세상과 직접 싸워야 했다. 집주인은 작은 골방을 나에게 내주고 간섭이 이만저만이 아녔다. 어린 여자애가 혼자 사니까 얼마나 만만해 보였을까. 하지만 나는 20년 넘게 부당한 걸 보면 못 참고 잘 싸우는 엄마를 어깨너머로 보며 자라왔다. 나도 집주인이 부당하게 대하면 말싸움을 했고 집주인이 소리를 지르면 나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어린 여자 혼자 사는 삶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방배동에서 배웠다.
그러다 사당동 투룸 빌라로 이사를 했다. 방배동에서는 도저히 괜찮은 집을 구할 수 없어서 그 옆 동네로 넘어간 것이다. 나도 엄마처럼 방배동에서 버티기 시작한 셈이었다. 두 번째 집은 직접 발품을 열심히 팔아 좋은 집주인을 만났고, 집주인아저씨는 월세를 한 번도 올리지 않은 덕택에 나는 8년 정도를 방배동에 더 머무를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방배동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친구들은 떠나가기 시작했고, 나도 얼마 못 버티겠다는 생각을 서서히 하고 있었다, 이제 동네의 욕심보다는 내 공간에 대한 욕심이 더 생겨났고 책임져야 할 고양이 2마리도 생겼다.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하고 싶었지만,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주인 아저씨가 찾아와 아무래도 집을 수리해서 월세를 올려 받고 싶다고 했다. 나는 몇 년 전 큰 계산 없이 김포 아파트를 샀었는데, 서울에서 더 이상 갈 데가 없으니 김포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엄마가 인천으로 떠났을 때처럼 나도 결심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 아저씨 저 곧 김포로 떠날 거니까 몇 개월만 더 살다가 갈게요"
막상 결정하니 새로운 곳에 간다는 설렘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다. 내가 방배동을 떠난다니,
김포에서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그래도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는 설렘에 도배 집도 알아보고, 인테리어 용품을 신나게 구매하다가도 어느 날은 술을 먹고 김포로 가기 싫다고 엉엉 울기도 했다. 익숙한 방배동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미련은 남아있었다.
어느덧 이사 날짜가 다가오고 난 방배동에서 방을 빼야 했다. 물건을 거의 버려서 가서 짐은 용달차 한대에 단출하게 실렸다. 8년 된 집과 함께 마지막 사진을 찍고, 나의 작은 행성 방배동을 떠났다. 그렇게 아쉬움을 가득 찬 나는 김포가 나에게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다줄지 생각지 못했다.
변화된 거 한 개를 먼저 얘기하자면, 나는 김포로 이사 와서 머리숱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