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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Mar 13. 2024

그깟 털 너 다 가져 집사! 모든걸 초월한 고양이.

인생무상을 알려주는 고영희.

집안에서 하얀 눈발이 폴폴 날린다. 그 눈발을 보며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를 느낀다. 마음속 다짐도 한다.' 이번엔 잘 밀어야지.' 아니, '대충 밀어야지.'라고 말이다.


공기청정기를 24시간 연중휴무로 돌려도 소용없다. 계절이 바뀌고 2월, 3월 봄이 다가오면 집 안에 날아다니는 눈발은 점점 더욱 심해진다. 옷은 세탁을 하나 안 하나 허옇고 굵은 눈덩이를 항시 때때로 붙이고 있다.


결국 아이가 먼저 터졌다. 눈물, 콧물, 비염에 목구멍까지 칼칼. 열도 한번 찍어 준다. 저녁때즈음 나의 목도 칼칼하다. 밖에선 괜찮은데 집안에 들어오면 목이 쐐하면서 칼칼하다. 남편도 목이 껄껄하다고 한다.


요가하는 도중 레깅스에도 흰털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의 털은 요가원에까지 번져 있군. 정말 밀 때가 다가온 거야.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


부엌 뒷정리를 마친 후 거실에 누워 자고 있는 녀석을 발견했다. 맘먹었을 때 해치우자.


이아이 전용 서랍장에서 목 칼라를 끄집어냈다. 자고 있는 놈을 휙 낚아채서 욕실로 들어갔다.  

어? 이상하게 얌전하다. 면도기를 발견한 코코는 집사 니 맘대로 해라라는 심정인듯하다.


모든 걸 내려놓은듯한 보살의 눈빛이다. 목칼라를 채울 필요도 없을 만큼 얌전하다. 아예 체념을 한체 벽을 보고 앉았다. 덕분에 등부터 윙~~~ 깎기 시작했다. 짜증 나는 눈빛이지만 그냥 몸을 나에게 맡긴다. 마치 그깟털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눈빛이다. 그깟 털 집사 너 다 가져라는 태도다. 미안하지만 고맙다.


미안해 코코야. 우리가 이 집에서 동고동락을 하기 위해선 너의 희생이 필요하단다. 모든 걸 내려놓은 부처 같은 코코를 보며 혼자 조급증이 났다. 빨리 하고 '츄르 먹자'는 말을 기계처럼 계속 내뱉는다. 그 말을 코코가 분명 알아들은 듯하다. 츄르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귀가 한번 쫑긋해진다. 어설픈 집사는 우선 너도 살고 우리도 살기 위해 택한 방법은 이길밖에 없다는 의지를 품고 빠른 손놀림드로 대충 밀었다.


작년에 애견 미용삽에서 처럼 털을 야무지게 밀고 싶어 시도하다 코코 살에 면도기 상처가 났다. 그 상처를 볼 때마다 손이 벌벌 떨렸다.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는지 그 뒤로는 코코 털을 밀지 않았다. 한해 겨울이 지나고 올해 다시 시도했다. 그래서 대충 밀었다. 눈발 날리는 집안에서는 우리는 함께 할수 없는 운명이었다.


코코는 겨울에 이쁘다. 털이 뽀숑뽀숑, 부들부들하다. 한 뭉치 털이 온몸을 휘감아 덩치 큰 개 한 마리가 집안을 어슬렁 거리는 것 같다. 이젠 그 털과 작별 인사를 해야 할 봄이 다가왔다.


코코의 초월한 태도 덕분에 무려 15분 만에 후다닥 끝이 났다.


코코는 츄르를 아주 맛나게 흡입했다.


미안해 코코야. 그리고 고마워!!! 난 너한테 항상 고마워. 그걸 알랑가 모르겠다. 너~~^^



by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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